지구가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라는 '가이아 이론'이 있다.
지구가 무기물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생명 유기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46억 년이나 지구가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생명체처럼 끊임없는 자기 조절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유기체로서의 지구의 자기 조절능력은 공기 중의 산소비율과 바다의 염분비율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설명하는 이유로 든다. 인간이 자신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것처럼 지구도 에이즈나 천연두와 같은 병으로 인류의 수를 일정하게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은 결국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지구의 자정(自淨) 노력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무엇을 자정 하려 했는지는 더 많은 세월이 흐르면 인류도 그 답을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생명체를 안고 있는 지구는 자신도 이미 생명을 갖게 된 것이리라. 인류의 나이는 대략 350만 살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46억 대 350만.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지구를 인정하면,
46억 살이나 되는 지구는 인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350만 살 밖에 되지 않는 인류는 지구의 삶으로 치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1억 도, 일천만도 살지 않은 인류가 46억 살의 지구의 나이를 계산했고 지구를 탐구하고 있다. 우리가 지구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구라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리라. 인류는 지구를 제대로 알아낼 수 있을까. 지구가 보는 인류는 우리가 보는 개미처럼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고, 생겨났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일 것 같다. 개미가 아무리 코끼리의 몸을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코끼리의 몸 전체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인류는 지구를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지구도 이럴진대 우주에 대해서라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아니 장님 지구 만지기 쯤 될까.
안다고 생각하는 그 앎이 사실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전체에서 보면 모르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다. 우리가 지구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바다의 모래 한 알 정도를 알았는데 바다를 다 안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지구나 우주 같은 것은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바다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350만 년 동안 바다의 모래알보다 많은 사람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과 순간을 살다 간 수많은 작고 여린 생명들이 움직였다가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없어져 흔적 없이 영원히 사라졌고 또 앞으로 그보다 더 많은 생명들이 사라질 것이다. 수많은 생명이 지구라는 생명 위에서 공존하고 있다. 지구 또한 그 오랜 기간 살아오면서 변했고 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살아있는 것은 끝이 있다. 46억 년의 끝은 어디일까. 350만 년의 끝은 언제일까. 우리 모두는 아직 시작도 안 했을지 모르는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지구는 인류의 탄생을 지켜보았고 지금 이 순간의 인류를 아는 것처럼 앞으로 인류가 어디로 가는지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지구 위에서 매일매일 사라지고 또 만들어지며 지구의 하나가 되고 있는 인류를 지구는 지켜보고 있다.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미미한 인류의 시간, 그리고 그 인류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시간은 또 얼마나 찰나와 같은가. 없는 데 있다고 하는 것 같은 존재가 지금의 나의 시간이다.
나의 삶에 내가 매몰되어 갈 때 풍선처럼 내 안에 나로 인해 가득 찰 때 또 반대로 그 작은 것에서 더 작아지고 있는 나를 볼 때 그럴 때 나는 인류와 지구의 시간을 생각한다. 인류와 지구의 상상할 수 없는 그 오랜 시간이 티끌보다 작은 나와 나의 시간을 가만가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