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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un 02. 2023


뻐꾸기의 탁란

누가 뻐꾸기 모자(母子)에게 돌을 던지랴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을 울린다. 뻐꾹뻐꾹. 

고요한 5월의 하늘에 뻐꾸기가 운다.


자기보다 작은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낳는 어미 뻐꾸기의 탁란보다 더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것은 알에서 깬 새끼 뻐꾸기. 알에서 나오자마자 아직 눈이랄 것도 없는 검은 눈을 뜨지도 못한 새끼는 털도 없는 벌건 맨살로 두 날갯죽지를 팔처럼 펼쳐 제 한 몸 가눌 수도 없는 사력을 다해 뒷걸음질 치며 다른 알을 하나씩 등에 지고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온몸으로 힘겹게 세상에 나와 처음 하는 행동이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없애는 모습이라니. 무릇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새끼는 그 부모와 무관하게 지고지순해서 호랑이 새끼도 고양이 새끼와 구별이 안 되는 법인데 뻐꾸기 새끼의 잔혹하고 이기적인 행동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악의적이다. 그 후로 오롯이 혼자 둥지를 독차지하고 온몸이 입이 되어 가짜 어미의 먹이를 받아먹는다. 거의 다 자란 새끼 뻐꾸기는 둥지가 작아질 만큼 몸이 커져 밖으로 나와서도 일주일 정도 자신보다 3~4배는 작은 남의 어미에게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는데   자신의 새끼를 죽인 원수의 입에 쉴 새 없이 먹이를 날라다 주는 지친 뱁새어미가 우물 같은 새끼 뻐꾸기의 입안으로 먹이와 함께 잡아 먹힐 것만 같다. 상황을 모른다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주는 것으로 오해해 고놈 참 효자일세 할 만큼 누가 어미인지 새끼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그 모습에 다 큰 아이를 먹이는 늙은 부모를 연상한 사람들은 자식을 뺏은 원수를 키우느라 혼신을 다하는 가련한 어미뱁새에게  빙의되어 뻐꾸기 모자(母子)를 욕하며 순진하게 이용당하는 뱁새를 동정한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애꿎은 뻐꾸기시계의 판매량이 줄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뻐꾸기와 그 새끼의 영악함에 분노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치를 떨게 만드는 흡사 나쁜 인간의 사악함을 닮은 것 같은 뻐꾸기 어미와 새끼의 이기적인 행동. 그러나 이들이 저지른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련의 행위들은 미리 계산된 계획이 아니라 뻐꾸기는 다리가 짧아 알을 품을 수 없어 스스로 알을 키우지 못한다는 본능, 뱁새는 새끼의 빨간 입에는 누구의 새끼든 상관없이 무조건 먹이를 넣어 줄 수밖에 없다는 본능, 어미가 품어주지 못하여 남의 둥지에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새끼 뻐꾸기의 생존 본능의 합작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본능만으로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뻐꾸기 어미와 새끼의 행동은 치밀하고 잔인하다.


      

그럼에도 뻐꾸기에 의해 새끼가 전멸당한 뱁새가 멸종했다거나 희귀종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들 사이에 인간이 모르는 다른 무엇이 있는 듯하다.      

사실 뱁새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숲 속에 뻐꾸기가 나타나면 뱁새를 비롯한 숙주의 새들은 일제히 뻐꾸기를 경계하며 공격하기도 한다고 한다. 행여나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고 가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또한 뱁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의 알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은 듯하다. 뱁새의 알은 원래 푸른빛이라 푸른색의 뻐꾸기 알과 구별하기 어려웠으나 점점 흰색의 알을 낳기 시작했다고 한다. 뱁새는 뻐꾸기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고 알의 색깔을 바꾸며 살아남기 위해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계속 당하고만 살 수 없기에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진화하고 있는 뱁새. 진화의 결과로 뱁새가 더 영리해져서 자신의 알의 색을 바꾸고 더 이상 뻐꾸기에게 속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신의 알을 키울 수 없는 뻐꾸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앞으로 뻐꾸기의 멸종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드높은 하늘 오월의 어떤 날, 어느 둥지에 알을 낳고 그 어미가 눈치챌까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새끼에게 무슨 말을 하는 듯이 숲에 울리는 어미 뻐꾸기의 뻐꾹 소리가 구슬프다. 어미 뱁새에게 지은 죄를 생각하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를 짓고 그 죄책감에 눈물짓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새끼로 인해 죄 없이 죽은 뱁새 알의 원혼을 위해 기도하는 듯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조용한 아침이나 해질 무렵 신록의 봄을 흔든다.  그렇게 뻐꾸기가 우는 때는 온 산과 들은 침묵 한다. 언제나 하늘을 긋던 그 많은 날짐승들과 풀벌레들도 모두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어딘가에서 숨죽여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한 어미 뻐꾸기의 뻐꾹 소리는 죄 많은 어미라도 잊지 말라고 새끼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뻐꾹뻐꾹 온 숲에 가득하면 다른 새들도 그들의 애잔한 운명을 위해 잠시 처연해진다. 새로 태어난 어린잎들이 깨어나는 숲 속, 오월의 청아한 푸른 하늘에 어울리지 않게 공명하는 뻐꾹뻐꾹 소리는 언제라도 밤처럼 구슬프다. 


     

누군가의 철저한 희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삶이란 것도 있다는 것을, 대가 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또 다른 생명의 잘잘못을 비난할 수 없는 삶. 그런 삶을 받아들이는 자연의 지대한 섭리를 인간의 냉철한 머리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뻐꾸기의 노래   

  

내가 여기 있어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어

말할 수 없는 영혼들의 눈물이 

아카시아 꽃바람을 타고 

잘 지내라

나는 항상 네 옆에 있어

맘껏 품어주지 못해

가까이 가지 못해

미안해     

눈앞에 두고도 다가갈 수 없어

내 목소리가 들리니

지난 시간들 

그대로 여기 있단다.        


  

지지배배 조잘대지 못하는 뻐꾸기의 슬픈 운명을 하늘이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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