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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un 07. 2023

하루의 해



주택으로 이사 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햇볕에 이불을 내놓는 일이었다. 어릴 적 두꺼운 솜이불이 주던 그 묵직한 포근함은 맨살에 닿던 홑청의 서늘함과 함께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신생아들을 겉싸개로 꽁꽁 싸매는 것이 불안한 상태의 아기들에게 심리적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데 아기도 아닌 나는 아직도 몸이 눌리는 듯한 무거운 이불을 좋아하는 편이다. 묵직한 이불은 심신의 안정뿐만 아니라 더 깊은 숙면을 준다. 요즈음 이불은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날수록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옛날의 목화솜이불은 외풍이 심한 한옥에 적합해 자는 머리맡에 자리끼가 얼 만큼 추운 방에서도 두꺼운 솜이불은 겨울밤을 포근히 잠재웠다. 방안의 자리끼가 얼어도 이불속은 방바닥의 구들장이 까맣게 타도록 뜨거운 열을 솜이불은 잘 덮여주었다. 어릴 적 해가 좋은 날이면  장롱을 가득 채웠던 두꺼운 이불들은 마당으로 나왔다.   


   

하루의 해를 받아 사각거리는 홑청은 밤이 되면 낮의 햇살이 되살아나는 듯 빳빳하고 생기 있는 푸름이 온몸에 닿는다. 아파트에서 살 때 해를 보지 못하고 장롱 안에서만 잠들어 있던 이불들은 왠지 해를 보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럴수록 더 자주 세탁하게 되고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이불들은 진이 빠지는 사람처럼 더 녹초가 되어갔다.   장롱 속에 고이 접어두는 이불들, 방충제에 숨이 막혔던 철 지난 옷들, 그리고 가끔은 도마나 행주 같은 부엌용품들을 짱짱한 해 아래 일광욕을 시켜준다. 햇빛 아래에 누워있는 그것들을 보면 나까지도 몸이 나른해지고 노곤해지는 것이다. 하루종일 태양 아래서 몸을 말린 세간살이들은 구석구석 해의 냄새가 배인다. 그 빠닥빠닥한 해의 냄새.          


     




햇볕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동이 트기를 기다린 생명들이 잠에서 깨는 소리가 햇살 속에서 분주하다. 밤새 잠들지 못했던 슬픔과 걱정, 불안도 마지막 한숨처럼 한 줄기 빛을 기다렸을 것이다. 한 줄기 빛에 밤이슬을 말리는 풀잎들, 아침의 해는 젖어있는 꽃잎을 말리고 배고픈 새에게 먹이를 준다. 오전의 햇살은 갓 깨어난 대지를 따뜻이 데워주는 온도로 그 아래에 있으면 몸이 노릇노릇해지며 토스트처럼 알맞게 구워지는 기분이다. 그 따뜻함 속으로 누군가 찾아올 것도 같은 설렘을 기대하게 한다.     

  

한낮의 머리 위의 햇살은 뜨거운 빛으로 나쁜 것들은 다 죽일 것 같은 정의감마저 든다. 그런 날이면 집 안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 어둠을 먹고사는 것들을 모조리 다 발가벗겨 밖으로 데려오고 싶다. 어둠에서만 사는 밝음을 모르는 알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숨어있던 어리석은 생각들도 한낮의 해는 다 치유해 줄 것만 같다. 낮의 해 아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되어 무언가라도 꺼내 놓아야 될 것 같은 강박감이 든다. 태양 앞에 아무것도 내어줄 것이 없는 날은 그들을 대신하여 내 몸뚱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만 같다.    

  

햇살 좋은 오후에 소풍을 나온 집안 세간들을 핑계로 나도 하늘의 천연 살균소독기 아래 잠시 몸을 뉘었다. 병든 닭처럼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음이 왔다. 오래전 이국땅에서 살 때 겨울이면 한국의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온돌이 그리웠다. 따뜻한 바닥에 누워 몸을 지글지글 끓이듯 온몸을 감싸던 그 온기가 없는 이국에서는 겨울에도 전기히터가 공기를 데워줄 뿐 근원을 알 수 없는 몸의 한기를 덥혀주지는 못했다.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여주던 그 온돌이 그리웠던 것은 만나지 못하는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리라. 온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낮의 해 아래에 누워있으면 그 비슷한 노곤함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외국사람들에게는 일광욕이 우리가 온돌에서 느낀 따스함과 편안함 같은 것의 대체물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모두 그런 따사로움을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모양이다. 온돌처럼 금방 몸을 데워주지는 못하지만 오후의 해는 서서히 뜨거워져 오래 있으면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뜨거워져 주의가 필요하다. 해 아래에 내놓은 내 마음도 물건들처럼 소독이 되었으면 좋겠다. 옷장 안에 묵혀둔 오래된 이불처럼 해묵은 생각들, 축축한 마음들도 햇볕에 다 말리고 저녁이면 뽀송뽀송한 마음으로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분명 해는 그렇게 해 줄 것만 같다.     


저녁에 산 위로 넘어가는 해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온몸의 기운을 잃고 하루종일 불탔던 벌겋게 달구어진 몸으로 힘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애처롭다. 붉게 죽어가는 빨간 해를 보면 더 이상 뜨겁지 못하고 식어가는 몸에 하루종일 달구었을 그 불탔던 기억들을 안아주고 싶어 진다.  안쓰러운 빨간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 진다. 붉은 피를 저녁하늘에 쏟은 노을이 말없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늘의 인간이지만 해를 사랑하는 다른 내가 있다.  사랑이라고 할 만큼 뜨겁지 않으니 아마도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하루를 사는 해를 생각한다. 내가 잠들 동안 내가 있는 곳의 반대편에서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해를 기억하며 잠자리에 든다.       

구름이 많은 날 하늘에 해가 보이지 않는 날, 그럼에도 밤은 아니므로 어딘가에 있을 해를 생각한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해는 나의 반대편 누군가에게 나의 어제 같은 해가 되어 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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