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에는 생감자냄새가 난다
만날 수 없는 끝과 끝에서
땅 아래 애감자
하늘 위 그리움으로
서로 등을 대고 모르는 사람처럼
감자꽃으로 피었다
초록 잎에 얼굴을 묻고
햇살 아래에서 어두운 땅 속을 잊었다
꽃으로 살아갈 수 없는 꽃의 시간으로
감자는 땅속을 견딘다
꽃으로 살았던 순간들은
알알이 단단한 속살로 채워
흐드러진 얼굴이 허물어질 때까지
당신에게 닿고 싶은 그 한 가지 붙들지 못하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들 꽃이 되지 못하랴
감자를 위해 꽃이 된 감자꽃에는
생감자냄새가 난다
감자가 피었다 (2020.5.25.)
3년 전 주택으로 이사 와서 처음 심은 것이 감자였다. 그리고 감자꽃을 처음 보았다. 꽃의 향기를 기대하였으나 감자냄새가 나는 꽃이라니. 순간 어두운 땅속의 감자가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감자는 3월 말쯤 봄꽃들이 차례로 피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심는 농작물이다. 심어두기만 하면 그다지 자주 물을 준다거나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잘 자라는 편이고 수확 또한 땅속에서 보물을 캐는 듯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하는 덕에 농사에 문외한인 텃밭 농부들도 선호하는 작물이다. 씨감자를 심고 두어 달 후 5월 말경에 나지막한 화초 같은 잎과 대 사이로 쪼글쪼글한 별 같은 하얗고 소박한 꽃이 핀다. 투박하고 굵은 알의 감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기같이 작고 예쁜 꽃들을 사람들은 오래 놓아두지 않는다. 꽃이 피어있을수록 감자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탐스럽게 웃는 꽃송이를 자를 때 잠시 꽃이 된 감자를 생각했다. 감자는 감자가 아니라 꽃으로 피어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감자를 위해 꽃으로 피어났고 감자를 위해 꺾어져야 하는 감자꽃.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피었지만, 흐드러지게 필 수 없는 감자꽃이 올해도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