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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Aug 14. 2020

매일 덕질하는 게 직업이라고요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12

[김하나 작가와의 만남 당첨 안내]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엊그제 온 당첨 문자. <말하기를 말하기>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은 사회자로 섭외된 김민철 작가님을 통해 먼저 정보를 입수했다. 며칠 지나 출판사 콜라주에서 북토크 신청 이벤트 페이지가 열렸음을 알렸고, 예스24에서 책을 샀지만 알라딘에 들어가 열심히 신청 댓글을 달았다. 질문을 써야 한다는 미션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 순간의 진심으로 뽑아 달라는 간절함을 담당자에게 전한다(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난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에 행사장까지 선선히 걸었다. 입추가 지나고 온도가 바뀐 바람에 기분이 좋다. 아니다, 바람만이 이유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작가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설렌다. 두 분이 오래 알고 지낸 시간만큼 책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기대감에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오늘의 행사장은 출판사들이 종종 북토크를 여는 곳이었는데 나는 처음이었다. 소극장 분위기에 100석 규모인데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를 지키며 한 좌석씩 비워두니 대략 45~50명 석이 되었다. 무대는 스크린을 띄울 수 있어 현수막 대신 이미지 한 장으로 대체하면 되고, 의자와 테이블만 두고 심플한 구성이 가능하다. 조명과 음향 담당 직원이 한 분 있구나. 출판사에서는 마케터 두 명, 대표님 한 분이 진행하러 나왔네. 다음에 담당 책의 행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 나도 모르게 매의 눈으로 체크하다 ‘그만 일해’라는 내적 외침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지그재그 사이사이로 앉을 수 있도록 한 주최 측의 좌석 배치는 어디서도 작가님들이 잘 보이는 터라 만족스러웠다. 지정 좌석으로 도착한 순서대로 앉도록 안내를 하니 독자들의 입장도 순조롭고 빨랐다. 고정 팬층이 있는 작가님들의 행사는 이렇게 해야 대부분 불만을 갖지 않는다(한편 전에 마케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동진 작가님 행사를 할 때 2시간 전부터 와 기다리던 사람들을 배려해주자고 ‘영화 시사회’처럼 좌석 배치도를 두고 선착순대로 원하는 좌석을 고르게 했던 나의 진행 방식을 떠올렸다. 일찍 왔는데 가장자리로 배치되는 억울함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선택’을 앞두고 적게는 5초 늦게는 1분씩 걸리는 바람에 입장을 지체시켰다. 진행요원인 나의 정신없음도 더해졌고. 다시는 고집 부리지 않겠습니다...).


두 작가님들이 입장하기 전, 앉아 있는 독자들을 둘러본다. 마스크를 써서 잘 보이지 않지만 성비는 남성 3명 빼고 모두 여자. 나이대는 대략 2540쯤. 대학생들이 방학이라서 그런가. 코로나 시대에 행사에 오는 사람들은 여간 적극적인 독자들이 아니다. 기획안을 쓸 때마다 책의 핵심독자층을 쓰는데, 내 눈앞에 <말하기를 말하기> 핵심독자층이 앉아 있다. 제가 가장 많이 상상하는 여러분들이군요.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는데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


드디어 사회자 김민철 작가님과 주인공 김하나 작가님의 등장. 늘 그렇듯이 귀여우시다(꺅! 언니~ 여기 봐주세요!!! 제가 왔어요~!). 김하나 작가님 서른 살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후배 김민철 작가님. 김하나 작가님이 책도 먼저 내고 뒤따라 책을 내게 된 김민철 작가님. 한 아파트 옆 라인에 살면서 김하나 작가님 산문에도 종종 등장하는 사이니 그간 두 분 사이의 시간들이 스르륵 열리며 즐거운 추억들이 쏟아진다.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고 다정한 두 분의 기운이 관객으로 앉아 있는 독자들에게까지 전달된다. 최고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어제의 덕질 현장. 출판사 담당자분의 사진에 크게 찍혀 기록되었다.


특히 준비왕 김민철 작가님이 몰래 준비한 스피드 OX퀴즈는 김하나 작가님이 진행자로 있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핵심 코너를 반대로 적용하면서, 관객들의 웃음이 쏟아졌다. 업무로 지친 하루의 피로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즐거움! 1시간 반이 찰나처럼 지났고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서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온 분들의 리뷰는 sns에 올라오겠지. 한 공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리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편집자가 되고 나서 직업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책을 읽고 너무 좋다, 고 생각하면 만남을 제안하고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가님들과의 인연은 대체 어디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책을 읽고 팬심을 담아 메일을 쓰는 것부터 시작했다. 메일 주소를 알아내는 것은 출판사 편집자 동료들끼리는 흔히 교환된다. 그럼 그 다음은 회신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단계다. 아니면 보통의 독자들처럼 이렇게 모두에게 열린 행사가 있을 때 평범한 독자인 척(아니 실제로 평범한 독자 맞다) 먼저 작가님을 뵙고 어떤 분인지 힌트를 좀 더 얻고 메일을 쓴다. 그때 그 행사에 저도 거기 있었어요, 라는 말로 내가 관심을 갖고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되니까.


김하나 작가님의 첫 책이 나왔던 출판사를 다녔던 나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도 작가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힘 빼기의 기술』이 나왔을 때,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에 출연한 인터뷰를 들으며 어떤 분인지 더욱 잘 알게 되었다(그러고 보니 그 방송을 듣게 된 건 제현주 작가님의 팬이어서였다. 열심히 좋아하는 건 다음 좋아하는 걸 물어다준다. 정말 신기하게도 다 연결되어 있다. 제현주 작가님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는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기웃거리다 작가님이 주최하는 독서모임 멤버로도 몇 달 간 참여했다. 히히). 김하나 작가님은 차곡차곡 회사 밖 커리어를 쌓아갔고 말씀하시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던 터라 추후 담당한 도대체 작가님의 북토크 행사에 사회자로 섭외까지 이어지며 뒷풀이에서 맥주를 한잔할 기회까지 얻었다. 현재는 「책읽아웃」 애청자로 작가님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중이다.


김민철 작가님의 팬이 되었던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모든 요일의 기록』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였다. 와 이런 분이 다 있었다니, 이 책이야말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책이야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담당 편집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후 『모든 요일의 여행』까지 나온 뒤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고 그 마음을 참을 수 없어 나의 SNS 어딘가에 리뷰를 올렸더니 전 직장 선배가 자기가 알고 지내는 분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당장 선배에게 연락해 메일 주소를 얻었다. 짝사랑 전문이라는 작가님은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낯을 많이 가리시면서도 다리를 놓아준 선배의 멘트(‘너의 메일 주소를 000출판사 편집자인 후배에게 전달해도 돼?’ 정도였으리라 짐작한다) 덕분이었을지, 담당편집자님의 허락을 받고 오셨다며 미팅을 한 번 했던 기회가 2016년에 있었다.


그 이후로 작가님과 나의 생활 반경인 망원동에서 (주로 술집에서) 종종 마주치기도 했고 작가님의 sns를 팔로잉하면서 새로운 소식들에 귀를 기울였고, 바자회를 한다는 소식에 달려가 작가님이 직접 구운 그릇을 샀다. 소소한 인연이 어쩌다보니 자그마치 4년이 되었고 이제는 함께할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싶은데 편집자인 나란 존재가 작가님께 서서히 스며들어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신뢰를 얻게 된 고마운 시간의 힘이다.


“이따금 제 인생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좋아했을 뿐인데, 그것들이 지금 제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요.”
정지혜,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 p.31


기획을 어떻게 하면 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나는 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의외로 편집자는 ‘혹시 책 한번 써보시겠어요?’라는, 누구라도 혹할 만한 제안을 마음껏 던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에게 관심과 환심을 살 만한 열쇠를 이미 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내 세계는 점점 넓어진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라고 세상이 등을 밀어주는 덕업일치가 가능한 편집자라는 직업만큼 좋은 직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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