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시간 어때?”
오랜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화면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 답장을 적는다.
“그날은 좀 어려울 것 같아.”
일을 쉬며 불어난 체중이 부끄러워, 나는 자꾸만 약속을 유예한다.
친구가 보고 싶은 것은 나의 안부이지, 내 살들의 안부가 아닐 텐데 말이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잘 안된다.)
언제부턴가 타인을 만나고 무언가를 행함에 있어 ‘준비된 상태’라는 강박이 나를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서….”
“나보다 뛰어난 이들이 너무 많아서….”
“아직은 더 연습이 필요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본질은 소통과 사랑, 그리고 생생한 경험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실전보다 훨씬 긴 준비운동에 매몰되어 있다.
(그게 대체 무슨 운동일까?)
준비를 완벽히 마친다고 하여 반드시 삶이 성공 궤도에 오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게 대체 무슨 준비인데?)
우리는 존재하고 나누는 행위에 자꾸만 가혹한 전제조건을 붙인다.
하지만 타인과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있어 완벽함은 결코 필수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 결여된 상태일지라도,
그 자리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만남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며 오늘을 미루는 일은,
결국 가장 소중한 ‘지금’이라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결핍조차 삶의 한 조각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준비운동이 아닌 진짜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내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친구에게 연락했다.
"내일 시간 어때 ? 오랜만에 커피한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