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호스피스 간호사 입니다.
환자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매일의 순간을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서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어요.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환자분이 계십니다.
말기암이라는 무게를 지녔음에도, 그는 누구보다 쾌활하게 병원 생활을 이어가십니다.
치료진은 물론, 다른 환자의 보호자, 식당 여사님, 청소 여사님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네십니다.
그 인사는 가볍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인사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해야죠.”
불편한 다리로 병동을 분주히 오가시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직접 하시려 합니다.
낙상이 우려돼 우리는 늘 그 뒤를 따르며 말립니다.
“환자분, 넘어지면 큰일 나요. 저희가 해드릴게요.”
그러면 그는 언제나 똑같이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아이고, 괜찮아. 아직은 거뜬해요.”
그리고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그 걸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느 날,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느림의 미학’이란 바로 이런 걸까.
조금 느려도 괜찮아.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의지와 삶의 태도니까.
나도 그 환자분의 걸음처럼 살고 싶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조급해하지 않고, 의미 있게 한 걸음씩.
어느 날,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계셨던 날이 있었습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추워서 더 열도 나는 것 같아요...”
그러자 환자분은 가볍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좀이 쑤셔서 침대에 계속 있을 수가 없네요.”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여쭸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에너지가 좋으세요? 아프고, 힘드실 텐데…”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시던 환자분은 조용히 입을 여셨습니다.
“힘들죠. 아프기도 하고요.그래도 전 지금 이 시간이 살면서 제일 좋아요.
밖에서 일할 땐 웃을 새도 없이 바쁘게만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때 처음 생각했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그리고 그 답은 아주 단순했어요.
사람들에게 인사 한 번 더 건네고,
더 자주 웃고,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그걸 더 자주, 더 많이 하고 싶더라고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말은 조용했지만, 너무도 크고 깊게 울렸습니다.
“내 힘이 닿는 한,”
그분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울고, 웃고, 사랑하며 살고 싶어요.”
그날 밤,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삶에 정답이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답이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저 역시 자신 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주 좋은 여행이었어. 마음껏 웃고, 울고, 사랑했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