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과 소통 사이

by 현현


도덕경을 예찬하던 시대


성경에서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는 기독교의 문자주의는 오래 전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예수에 관해 전승되어오던 이야기의 다양한 판본들이 오늘날의 성경으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오랜 세월에 걸친 논의가 있었다. 정경(正經)에 들지 못한 외경(外經)과 위경(僞經)이 정경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논의 과정의 복잡함을 말해준다. 사실 위경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더라도 기독교가 지금보다 더 많은 교파로 분열되거나 어리석은 일을 더 많이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지닌 성경이 그러한데, 2,500년 전 이름도 분명치 않은 한 늙은이의 말을 전하는 두루마리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는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노자가 썼다는 도덕경 역시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노자가 주나라를 떠날 때 국경을 지키던 사람이 노자를 알아보고 글을 청하자 5,200여 글자를 남겨주었다고 사기(史記)에서 전한다. 상편은 도(道)로 시작하고 하편은 덕(德)으로 시작하기에 ‘도덕경’이라 불린다.

도덕경 역시 성경과 마찬가지로 판본마다 차이가 있다. 도덕경의 대표적인 판본은 왕필본이다. 성경 주해자로 치면 토마스 아퀴나스에 버금가는 인물인 왕필은 서기 234년 17세 무렵에 이 주해서를 쓴 천재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왕필본의 원본으로 인정되는 백서본은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말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이한 점은 덕경이 도경 앞에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인 셈이다. 오늘날 도덕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승 과정에서 첨삭 여부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비단에 쓰인 백서(帛書)본보다 백 년 정도 앞선 판본으로 추정되는 곽점본은 대나무에 쓰여 있는데, 2천 자밖에 안 되는 분량임에도 백서본에 없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에는 추가된 내용이 많을 뿐더러 문장도 더 깔끔하다. 옮겨 적는 과정에서의 오류와 옮기는 과정에서 주석이 본문으로 들어간 오류 등이 확인되고 있다. 판본들의 차이로 볼 때,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것처럼 노자가 함곡관을 넘으면서 5천여 자를 남겼다는 것은 전설에 가까우며,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다양한 사상들이 섞여 들어가면서 백서본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도덕경 중 도경은 우주론, 덕경은 치세론 또는 처세론의 관점에서 주로 해석된다. 정치술수와 처세술, 양생법에 가까운 덕경의 말들은 도경과 충돌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때문에 덕경은 여러 사람의 가필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은 예로부터 양생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 신선을 꿈꾸는 이들이 둥지를 틀곤 했다. 우리나라 계룡산과 지리산에 도사들이 둥지를 트는 것처럼. 중국의 민간신앙인 도교는 샤머니즘과 도가사상이 합쳐지면서 중국 특유의 현세적인 사상으로 민간에 뿌리를 내렸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도덕경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춘추전국 시대와 유사한 개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 ‘하면 된다’를 부르짖던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지나친 작위에 지친 이들에게 무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노자의 가르침이 어필했던 것이리라. 도덕경을 가르침과 배움을 키워드로 다시 풀어쓴 『배움의 도』가 교사들에게 많이 읽힌 것도 교육 과잉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교사들이 느낀 자괴감과 회의에 기인하지 않을까.

도덕경은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이웃마을과도 왕래하지 않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로 여기지만 실제로 그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는 아니다. 서로 왕래는 하지 않았지만 대신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부족사회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내부의 긴장을 외부로 돌리기 위함이다. 그럴 수 없는 경우 부족 내부의 갈등이 폭발하여 집단이 와해되기 십상이다. 외부와 단절된 부족사회에서는 온갖 기행과 퇴행 현상이 일어난다. 노자를 숭상하며 신선을 꿈꾼 도가들의 기행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뉴에이지 바람과 수련 열풍


20세기말 노자가 한국인들의 주목을 끌던 시기에 서쪽에서 불어온 뉴에이지 바람은 이른바 도(道)판에 부채질을 하는 효과를 낳았다. 서구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명상과 인도 구루들의 사상(?)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지구촌을 휩쓸었다. 60년대 말 유행한 히피와 아나키즘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뉴에이지의 근원은 19세기 말 유럽 사회의 일부 엘리트들이 만든 신지학협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상적 뿌리를 찾아보자면 그리스·로마 시대의 영지주의에 그 맥이 닿아 있다. 힌두사상과 선불교의 사상이 가미되면서 기독교에 회의를 느낀 서구인들에게 어필하면서 60년대 히피들의 정신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라헬리언 무브먼트나 사이언톨로지 같은 신흥종교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신과학이라 불리기도 하는 유사과학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접어들어 소개되기 시작한 뉴에이지는 90년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이후 영성 붐을 타고 세를 확대했다. 심신치료법으로 명상이 유행하고 단학선원, 마음수련 같은 많은 수련 단체들이 세를 확대한 것도 이 무렵이다. 21세기 들어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돌보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망이 커지면서 요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련의 방편으로 받아들여진 요가는 여성들의 다이어트 욕구와 결합되면서 학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전통적인 선도(仙道) 사상에 기초한 ‘단학’은 도가와 맥이 닿아 있다. 선도의 양생술에 기초한 체조와 호흡법을 체계화하여 대중에게 맞게 계발한 유사학문으로 볼 수 있다. 일지선사가 교조인 단학선원은 뉴에이지 바람을 타고 90년대 이후 급격히 세를 확대했다. ‘뇌과학’이라는 과학의 외피를 입고 과학과 유사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중들뿐만 아니라 지식인들 속으로도 파고들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세계화 바람을 타고 ‘단월드’로 이름을 바꾸어 전 세계에 지부를 개설하여 세를 확장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음악 분야에서도 뉴에이지 음악이 유행했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명상음악으로 유명한 엔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여서 자신의 노래가 뉴에이지 음악으로 불리는 것을 마땅찮아 했지만, 소비자들의 취향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신교 신자인 조지 윈스턴 역시 내한 인터뷰 때 기자가 자신의 음악을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지칭하자, "한 번만 더 자기 앞에서 뉴에이지 운운하면 인터뷰를 끝내겠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뉴에이지에 비판적인 인물로 리처드 도킨스, 제임스 랜디 같은 이들이 있다. 진화생물학자이자 ‘전투적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도킨스는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같은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또한 마치 인간의 유전자(gene)처럼 스스로 번식하면서 대를 이어 전해지는 문화적 구성요소인 밈(Meme) 개념을 처음 제시하여 인문사회과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13년 영국 월간지 <프로스펙트>가 공개한 ‘올해의 세계 사상가 65인’ 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술사인 제임스 랜디는 이른바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유명한데, 유리 겔라 등 초능력자를 자처하는 사기꾼들의 행태를 폭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하지만 뉴에이지 흐름까지 사기로 보기는 힘들다. 리처드 도킨스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6살 조카에게 “산타가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한다면, 산타의 썰매가 내는 소닉붐 소리에 너는 잠도 못 잘 거다”라고 말했다 해서 ‘동심을 파괴하는 잔인한 과학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과학이 비록 중요하지만 인간에게는 신화와 동화의 세계도 필요하다.


‘신과 나눈 이야기’와 ‘시크릿’


뉴에이지 바람의 끝자락에 등장한 세기말 베스트셀러 『신과 나눈 이야기』와 뒤이어 등장한 『시크릿』은 영적인 성숙과 세속적 성공을 잇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 이러한 메시지는 좌절감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고 성공을 위한 주문처럼 받아들여졌다. 『신과 나눈 이야기』가 대중을 위한 심리상담서라면, 『시크릿』은 자기계발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대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과 나눈 이야기』의 저자 닐 도날드 월쉬(Neale Donald Walsh)는 다섯 번의 이혼 끝에 9명의 자녀 양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날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인가’ 하며 신을 원망하는 글을 쓰다가 문득 신의 대답을 듣게 되어 그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뉴에이지 열풍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고, 고차원의 영적 존재와 소통한다는 채널링이 유행하기도 했기에 그의 주장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저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판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정작 기독교계에서는 성경에 반한다는 이유로 터부시되었다.

월시는 죽음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홍보역을 맡은 적도 있고, 목사이자 영적 지도자로 이름난 테리 코울-휘테이커 박사의 홍보담당자로 일한 적도 있는 만큼 이 분야의 책을 쓰기에는 가장 적격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전인적 삶> 잡지 편집인,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이기도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런 ‘썰’을 풀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뉴에이지와 동양사상 그리고 현대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고 연역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의 문답이 설령 자기 자신과 주고받은 혼잣말이라 할지라도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저 표현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류가 전승해온 지혜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아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다. 한 사람이 집필한 책인 만큼 몇백 년에 걸쳐 편집된 성경보다 일관성이 있고 메시지도 알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주석서들이 나오고 있고 스터디모임도 세계 곳곳에서 꾸려지고 있다.

생각과 감정은 그것을 실체화하는 원동력이 되며, 강한 생각은 비슷한 기운을 끌어당긴다는 것, 이 세상의 1%만이 알고 있었다는 부와 성공의 비밀을 알려준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시크릿』.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시크릿’의 의미를 희석시켜버렸지만, 비밀스런 느낌의 표지 이미지와 제목은 이 책을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을 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 불황과 자기계발 바람이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같은 문학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시크릿』의 애독자였는지, 우주의 기운이 자신을 돕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사이비 교주 스타일의 최태선 목사 같은 사람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신념의 뿌리는 상당히 깊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신념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503호실에 수감되어 있는 것 또한 어쩌면 더 깊은 의미에서 우주의 기운이 그를 돕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통과 소통


명상과 요가, 마음공부 같은 각종 심신수련법들이 유행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잘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교의 영향을 받은 ‘도 닦는다’는 표현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지만 소위 ‘도판’은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한소식 했다’는 도사들도 적지 않다. 도판과 종교판은 경계가 애매하다. 자칭 재림 예수인 사람과 도사의 경계 역시 애매하다.

모든 심신수련은 결국 소통의 방편이라 할 수 있다. 내면과 소통하는 목적도 외부와의 소통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 가까운 이웃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신과 직통 채널로 통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성서 구절도 이런 뜻일 것이다. 소통에 서툰 사람들이 마음수련을 한다고 해서 금방 소통을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무문관에 들어가 홀로 결가부좌를 하고서 면벽수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축구나 농구를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40여 년 동안 합기도를 수련해오고 있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은 무도 수련의 근본 목적 또한 커뮤니케이션 감도를 높이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태극권처럼 홀로 하는 무도보다 합기도나 유도처럼 상대가 있는 무도가 소통 능력을 기르는 데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수련을 할수록 자기중심적이 되고 주변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수련을 잘못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내면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려 애쓰면서 이웃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채식을 하고자 노력하면서 숲을 망가뜨린다면 그런 수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대체로 소통을 잘하는 것은 다양한 주파수를 수신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기 때문일지 모른다. 뇌과학은 멀티 능력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위가 여성들이 더 발달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여성들은 굳이 수련을 하지 않아도 웬만큼 수련한 남자들보다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 각종 수련에 남자들이 더 열심인 까닭도 그만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은 요란하게 깨달음을 추구하지만 여성들은 조용히 주변과 소통하면서 삶을 살아낼 따름이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여성 붓다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은 어떤 점에서 한 번에 하나의 채널만 수신할 수 있는 라디오와 비슷하다. 동시에 여러 채널을 수신하면서 송신 기능까지 갖춘 멀티미디어 성능을 남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런 태생적 난관을 극복하고 어렵게 소통 능력을 계발한 남자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남자들을 돕기가 더 수월할 수 있다. 세상에 남성 구루들이 더 많은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이 영적으로 더 수준이 높거나 진화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여성이 소통에 능한 것은 아니다. ‘불통’ 꼬리표를 달고 다닌 그 누구처럼, 여성으로서 타고난 소통 능력이 성장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었거나 선천적으로 부족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소통이 안 되는 사회였음을 반증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이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같은, 소통이 원활한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시크릿 류의 세계관은 도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주와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자기 발아래 두고 싶어 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솔깃할 만한 아전인수의 세계관일 따름이다.

사회적 소통 능력은 단순히 개인의 자질 함양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자기계발에 올인한다고 해서 청년 취업난이 해결되지 않듯이, 영적 수행으로 사회적 소통 능력이 길러지지는 않는다. 자기계발이 강조되면서 사회구조적 문제가 가려지는 것처럼 마음공부나 영적 수행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소통의 문제를 개인의 자질 문제로 축소시킨다. 남녀 간의 소통이 어려운 경우 가부장적 문화가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합리화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문화나 제도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덮어서는 곤란하다.

개인의 변화로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는 문제라면 마음공부나 수련이 도움이 되겠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공동체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집단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들의 말대로 일이 흘러가기 십상이다. 흔히 마음수련 하는 이들은 대체로 선한 사람이어서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변화하려 애쓰는 편이다. 이런 태도가 소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다.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개인의 수양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문제의 차원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도통(道通)의 본질은 소통이다. 도와 통했다는 것은 곧 스스로 길이 되었다는 뜻이리라. 예수가 말했듯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아는 그 경지는 ]나'가 사라진 무아의 경지다. 원효가 저잣거리에서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면서 각설이처럼 춤추며 돌아다녔듯이 걸림(碍)이 없는 경지다. 예수가 창녀와 세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처럼 진정한 도통은 이웃과 통하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와 통하는 것이리라. 사이비와 진짜의 경계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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