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비슷하지만 아닌

반지성주의

by 현현


사기꾼 감별법


‘옷이 날개’라는 우리 속담이나 ‘좋은 옷은 모든 문을 연다’는 서양 속담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옷이 신분을 상징하던 오랜 역사적 경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뇌가 진화해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신분제가 생겨나기 이전 선사 시대부터 인간은 낯선 존재가 위험한 존재인지 아닌지 순간적으로 잘 판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옷으로 사람을 판단함으로써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기 때문에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을 것이다.


옷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소품이다. ‘의식주’라는 표현이 성립하는 것도 사회생활에서 옷이 식과 주에 앞서기 때문이다. 생존만 놓고 보면 식-의-주 순서가 맞겠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옷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음식과 주거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옷은 드러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옷을 구하지 못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거의 없다. 화학섬유는 인류를 기아의 공포에서 해방시켜준 화학비료 못지않게 인류사에 한 획을 그었다. 화학이야말로 인간의 의식주를 획기적으로 바꾼 주역이다.


우리는 옷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때로는 감추기도 한다. 자신이 의도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심하게 옷을 고른다. 대충 아무거나 입는다는 사람도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셈이다. 청바지에 검정 폴라넥을 유니폼처럼 입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스타일에 엄격했던 사람이다. 아이폰 스타일은 그의 패션 스타일의 연장이다. 삼성전자 사장도 제품발표회 때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하지만, 그 행동은 갤럭시가 아이폰을 흉내 낸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옷에 대한 경험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기꾼에게 옷은 마술사의 모자만큼이나 유용한 소품이다. 옷을 대충 차려입는 사기꾼은 없다. 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사람이 보여줄 알맹이가 없을 때 손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옷이다. 대부분의 교주들은 옷으로 사람들을 제압한다. 사이비들일수록 옷을 그럴듯하게 차려입는다.


생활한복은 세태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이들의 정신세계가 외화된 패션으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한복은 사기꾼들이 선호하는 패션 중 하나가 되었다. 이른바 대안을 추구하는 비주류판은 검증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사기꾼이 끼어들기가 수월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되는 장사에는 사기꾼이 꼬이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시민운동과 대안교육운동이 구축해놓은 사회적 신뢰도에 편승하려는 이들에게 생활한복은 적절한 소품이 되어준다.


예전에 사기꾼 감별법 중 사장실에 브리태니커 사전 전질이 꽂혀 있고 태극기가 걸려 있으면 십중팔구 사기꾼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게 중에 더한 사기꾼은 사전 케이스만 꽂아놓기도 했다.) 인터넷 때문에 백과사전의 수명이 다한 오늘날 사기꾼들이 새롭게 찾아낸 소품 중에 생활한복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고급 외제 승용차가 실리에 밝은 이들을 상대하는 사기꾼들이 선호하는 소품이라면, 생활한복은 명분에 약한 사람들에게 먹히는 위장술이다.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티는 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재활용품 파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생활한복 차림으로 매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주의해서 살피라는 주의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의외로 질 나쁜 손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뒤로 그이는 생활한복을 입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생활한복은 순진한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서 패스포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일반 사람들한테는 순수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있어 보이는’ 티를 내는 사람일수록 내실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학교 교장실에도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소품들이 있다. 교장의 회전의자 뒤편에 태극기와 교기가 좌청룡 우백호처럼 서 있고, 진열장 속에 온갖 트로피들이 늘어서 있으면 일단 교육자이기보다 교육행정가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공교육 체제 속에 있는 학교라면 그런 행정가가 필요할 수 있지만, 그에게 교육자적 자질까지 기대할 일은 아니다.


사기의 세계에서 프로와 아마의 경계는 흐릿하다. 사기꾼들 중에는 스스로 사기를 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대개 신념에 차 있는 사람들 중에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사기꾼을 감별하기란 쉽지 않다. 종교계나 교육계, 예술계에 그런 이들이 적지 않다. 검증하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림 대작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한 유명가수도 스스로 사기꾼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때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은 사실상 공인된 사기꾼들이다. 소비자를 홀리는 광고 카피를 쓰는 유능한 카피라이트 역시 공공연히 사기를 치는 셈이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점당 십만 원의 수고비를 주고 제작한 대작 그림에 자기 사인을 해서 천만 원에 판 가수와 그를 변호한 변호사는 사기극의 공모자일까 아닐까. 학교를 엉망으로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인생을 잡아먹는 사람은 교육자일까 사기꾼일까.


나도 속을 수 있다


대검찰청의 2018년 범죄 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2014년까지는 절도가 1위였는데 이후 사기범죄 건수가 더 앞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0년 이후 사기 고소가 수월해진 데다, 전자상거래 관련 사기 둥 인터넷을 통한 신종 사기가 급증한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형사고소가 쉬워졌어도 ‘꾼’들의 사기 행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주식회사 같은 법인은 한정책임을 지므로 부도가 나도 법인 대표에게 배상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사기꾼들은 이런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법인을 세우고 자금을 끌어들여 유용하다가 문제가 터지면 법인을 해체하고 또 다른 법인을 세우는 식으로 사기를 친다.


경제사기범이 가장 흔하지만, 사기꾼들의 먹잇감은 도처에 늘려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교육, 예술, 의료 등 인간사회의 모든 영역에 촉수를 뻗는다. 바퀴벌레처럼 조그만 틈새도 파고드는 그들의 놀라운 능력 덕분에 사회제도가 조금씩 더 완비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사기꾼은 인간사회에서 매춘 못지않게 역사가 오랜 직업이자 모든 직업이 사라져도 꿋꿋하게 건재할 마지막 직업일 거라 한다.


사기 행위는 대체로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금전사기의 경우 처음 몇 번은 잘 갚다가 나중에 큰 돈을 빌려서는 잠적하기도 하고, 계속 조금씩 돈을 빌리면서 먼저 준 돈을 받기 위해 수렁에 빠지듯이 점점 깊이 빠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수사관의 말에 의하면, 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부유한 사람보다는 돈이 궁한 사람들이며, 궁하다 보니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몸이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 솔깃한 제안을 해오면 누구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암환자들 중에 기치료비로 수백만 원을 버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른바 심령치료는 대표적인 후진국형 의료사기다. 사기꾼들은 궁벽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더욱 궁벽하게 만들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들을 홀리는 후진국형 사기꾼들은 곧잘 허세를 부린다. 학력이나 경력을 과장하거나 유명인과의 친분을 내세우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물 간 수법이지만, 저학력에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통하는 수법이다. 외양을 그럴듯하게 꾸미고 화려한 언변으로 ‘솔직히’ 같은 표현을 남발하는 사람은 조심할 일이다.


사회심리학자 마리아 코니코바는 사기꾼들의 공통된 심리적 특성으로, 공감능력이 없고 보통사람들과 감정의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자신은 특별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나르시스트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반면에 사기 당하는 사람의 유형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누구나 사기에 걸려들 수 있다고 말한다.


보이스피싱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 되었지만 피해자가 끊이지 않는다. 피싱 수법이 점점 진화하고 있기도 하지만, 뻔한 수법에 당하고서 어이없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나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사기를 당하지 않는 비결 중 하나라고 한다. 자신도 언제든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겸허함이 우리를 지켜준다. 심지어 사기꾼들을 많이 상대하는 변호사들도 사기를 당하는 세상이다.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범죄에 연루되거나 피해를 당하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사이비와 진짜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안목만으로 사이비에 속지 않기란 어렵다. 어떤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숲이 큰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듯이, 흔들릴 때 붙들어줄 수 있는 친구나 동료가 있으면 실족을 피할 수도 있다. 교육은 그런 동료를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기도 하다. 배운 사람은 잘 속지 않지만, 주변에 배운 사람들이 있으면 자칫 속아 넘어갈 상황에서도 그들이 붙들어준다.


사이비 능력자들


사이비(似而非)는 ‘비슷하지만 아닌’이란 뜻이다. 하지만 사이비와 진짜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짝퉁 가방도 분간하기 힘든 세상에서 사이비 종교와 진짜 종교를 누가 재단할 수 있을까. 면죄부를 팔아먹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사이비로 지탄받는 신흥교단의 차이가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에는 재림 예수가 열 명이 넘는다. 그들의 ‘뻥’이 통한다는 것은 그런 이야기에 굶주려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대집단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호모사피엔스 종의 독특한 능력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통찰은 사이비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들의 이야기 솜씨는 탁월하다. 환타지 문학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끌어 모으듯이, 인간은 어떤 황당한 이야기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동정녀 마리아 이야기는 믿으면서 재림 예수 이야기를 못 믿을 이유는 없다.


사이비들의 속임수가 통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속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이다. 1980년대에 유리 겔라가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린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불기 시작한 뉴에이지 열풍 덕분이기도 하지만, (초인적인) 힘을 갖고 싶어 하는 보통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무렵 영매니 채널링이니 하는 심령술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라즈니쉬 같은 인도산 구루가 서구인들을 사로잡고, <사랑과 영혼> 같은 영화가 인기를 끈 것도 그 즈음이다.


유리 겔라가 형상기억합금으로 장난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여전히 속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쟈니 카슨 쇼에 출연해 숟가락을 구부려 보임으로써 유리 겔라의 사기극을 폭로한 마술사 제임스 랜디는 어떤 초자연 현상이든 자신에게 입증해 보이는 사람에게 백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몇십 년이 지나도록 상금을 탄 사람이 없다.* 초능력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단지 뛰어난 마술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랜디의 주장이다.


제임스 랜디는 아프리카 여행 중에 환자를 치료한다는 심령술사의 사기극을 보고 초능력을 빙자한 사기극을 폭로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환자에게 돈만 뜯는 게 아니라 제때 치료 받을 기회와 시간까지 앗아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며.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같은 곳에서 유행하는 심령치료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기다. 우리 사회에서도 한때 기치료 같은 것이 유행했다. 일부 교회와 기도원 등에서는 아직도 비슷한 사기 행각이 벌어지고 있다. 인체의 생체 전자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플라시보 효과처럼 믿음이 치료 효과를 보이기도 하기에 이런 일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초능력 사기꾼 헌터’인 랜디와는 다르지만, 중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쉬샤오둥은 중국 전통무술의 고수라는 이들이 사기꾼에 가깝다는 사실을 대전을 통해 판판이 증명하면서 ‘무림고수 헌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실 중국 전통무술은 양생법이자 수련의 한 방편으로 전승되어온 것이지 실전용 격투술이 아님에도 무협소설이나 영화에서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중국인들의 ‘국뽕’에 상당히 기여했다. 굴기를 외치는 중국 당국이 국뽕에 찬물을 끼얹는 그를 곱게 봐줄 리 없다 보니 최근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진정한 무공비급은 뉴턴역학이다.” 무술의 세계에서 춤의 세계로, 다시 ‘명상적 걷기’로 넘어오면서 이십여 년 수련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의 말이다.** 무술인의 능력이 초능력 같은 신비한 뭔가가 아니라 중력가속도와 관성력, 작용 반작용 법칙 같은 물리 현상을 적절히 활용하는 기술이라는 얘기다. 맨몸으로 기관차를 끄는 차력술 같은 것도 뉴턴역학을 활용한 기술의 하나이지 다른 신비로운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네를 미는 요령과 기관차를 끄는 요령이 같다. 반작용의 힘, 관성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다.


영약이나 비급, 초능력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상 꼼수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을 추구한다 해서 나무랄 수는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솔깃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뒷돈을 챙기는 자들은 악질 사기꾼들이다. 사기극의 배후에는 면죄부 같은 종잇조각이나 돼지 뼈다귀로 만든 조잡한 성물(聖物)이 아닌 현실적인 이익을 얻는 누군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가 이익을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현상의 배후에 있는 진실을 엿볼 수 있다.



* 린트겐이라는 의사가 딱 한 번 상금을 탈 뻔했데, 그는 클래식 LP레코드판 표면을 보기만 하고도 어떤 곡이 담겨 있는지 알아맞췄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레코드판 홈의 미세한 차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을 뿐이라며 초자연적인 능력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초능력에 가까운 놀라운 시력에 더해 클래식 덕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이기현, 『그래비톨로지』, 퍼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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