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잘 뛰는 건데?

첫 번째 러닝의 기록

by 안보라

첫 러닝을 시작했다. 문득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고, 그냥 달릴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의선 숲길로 나갔다. 내가 깊은 동굴에 머물러 있을 때 간간이 산책하며 사색하던 그 길로.


나는 뛰고 있다. 신기했다. 걷는 것도 싫어하던 내가 달리고 있다니. 그동안 산책하며 러닝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내 곁을 스치며 달려 나가 건강한 바람을 가져다주곤 했다. 나도 언젠가 뛸 수 있을까, 숨쉬기가 운동인 줄 아는 내가 과연 내가 뛰기는 할까. 바람을 흘려보내며 곱씹던 그 게으른 이가, 드디어 달리려 첫 발을 뗐다.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KakaoTalk_20251017_150957906.jpg 첫 러닝의 기록

1시간을 달렸다. 거리 8.39km, 평균 페이스 7'15''/km, 평균 심박수 166 bpm. 처음치고 나쁘지 않다. 이제와 보니 조금 더 달려 8.5km를 채울 걸 그랬나 싶다. 이렇게 자꾸만 욕심이 나는 게 운동의 특성이라지? 다들 러닝에 재능이 있다며 칭찬을 해주는데, 정작 나는 어리둥절하다. 그냥 달려야 할 것 같아서 달렸고, 숨이 차지 않아서 계속 달렸을 뿐이다. 나 왜 잘 뛰는 건데?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걷는 건지, 뛰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슬로 조깅을 했다. 때로는 땅을 박차고 숨이 턱 끝까지 닿도록 달려보고 싶기도 했지만, 과욕은 늘 참사를 부르기에 욕망을 억누르고 평균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렇게 천천히 달리다 보니 3km를 달렸다. 경의선 숲길을 걷는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들이 보였다. 행복해 죽을 것 같은 연인들, 홀로 사색하는 젊은이들, 산책 나온 어르신들, 나와 같이 달리거나 걷는 사람들. 각양각색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저들 중 한 명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바람을 가져다주고 있다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오늘의 러닝 도전으로 나는 산책도 하고 러닝도 하는 부지런한 이가 되었다. 어제와 다른 내가 된 것이다.


5km를 달렸을 무렵, 경의선 숲길에 나의 5kg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뼈말라'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살 정도는 정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 너는 내게 5km를 주고 나는 네게 5kg을 주마. 숲길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고즈넉한 가을밤을 채워주는 친구가 있으니, 분명 내게 해줄 말이 많을 터이다. 나는 그 말들을 다 들어야겠다.


8km를 달렸을 무렵, 며칠 전 끓였던 보리차가 생각났다. 보리차가 화락 끓고 나면 찌꺼기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노랗고 구수한 보리찻물이 우러나면 물병에 조심히 따라낸다. 여기서 한 번 흔들리기라도 하면 가라앉았던 찌꺼기들이 다시 일어난다. 그럼 기다려야 한다. 지저분한 생각들이 저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나는 한 번 끓었던 보리차다. 동굴 속에서 찌꺼기를 가라앉히고 조심히 조심히 세상 곁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다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는 달리기로 했다. 더 단단한 잔이 되어 나의 세상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