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여섯 번째 러닝의 기록

by 안보라

여섯 번째 러닝.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러닝이 힘들었다. 슬로조깅을 하느라 안 그래도 속도가 느린데, 유독 더 더딘 것 같았다. 달린다고 애를 쓰는데도 계속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러닝이었다. 귓가에는 음악이 흐르지만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얼마나 뛰었지?' 물음표가 리듬처럼 요동쳤다. 얼마 못 가 워치를 보고, 자꾸만 기록을 체크하게 되었다. 당연히 멀리 갔을 리 없다. 오래 뛰었을 리 없다. 러닝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멈추기는 싫었다. 오기라고 해야 할까. 꾸역꾸역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이제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걸음을 멈추나? 러닝은 양쪽 귀에서 떠드는 천사와 악마의 대결 같았다. 초기에만 의욕이 넘치고 얼마 못 가 지레 포기하고 마는 의지 박약아로 낙인을 찍어버릴 악마 편에 설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 발이라도 더 뛰어보자는 용기를 북돋워 줄 천사의 편에 설 것인지.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오늘 유달리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욕심 때문이었다. 같은 길을 달린다는 이유로 초면의 누군가를 넘어서고 싶은 무거운 욕심. 내 위치보다 50미터는 더 멀리 달리고 있고 싶다는 헛헛한 욕망. 나만의 페이스로 호흡을 고르며 달려도 벅찰 일인데, 다른 사람의 속도와 호흡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보 러너라는 사실을 잊었다. 내가 마치 실력자인 것처럼 땅을 박찼다.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은 욕심이 내 숨을 더 가쁘게 만들었다. 실력을 차분히 쌓으며 계단처럼 올라야 할 그 위치를 나는 단번에 뛰어오르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균형을 잃었고, 벅찬 숨을 가쁘게 내쉬며 어긋난 욕심을 잠재우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욕심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그것은 어제의 나였다. 지난 다섯 번의 러닝보다는 잘 뛰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이 나를 더 앞으로 달리도록 내몬 것이었다. 문제는 아무도 내게 어제보다 오늘 더 잘 달려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압박의 대상은 곁을 달리는 아무개도 아닌, 달리기를 응원해 주는 가족도 아닌,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야 할 나 자신이었다. 욕심의 근원을 깨달은 순간, 깊은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선수할 것도 아니고 대회를 나갈 것도 아닌데 기록을 단축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그저 오늘을 즐겁게 달리면 되는 것인데. 더군다나 지금은 기록을 단축할 때가 아니라 나만의 페이스를 찾을 때인데.


나만의 생각 속에서 욕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보폭을 줄이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듯했지만 멈춰 서지는 않았다.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 뻔했던 데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라도 멈출 수 없었다. 속도를 신경 쓰지 말자, 보폭을 줄이자, 스마트워치를 보지 말자, 그저 한 발만 내딛자.


어쩌면 러닝은 나의 인생과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내게 누구보다 앞서라도 내몰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저 오늘을 잘 살아내면 되는 것인데,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스스로를 욕심으로 옭아매는지 모르겠다. 욕심 그득했던 오늘의 하루를 반성하며, 내일은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가리라.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가벼워져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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