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다섯 번째 러닝의 기록

by 안보라

다섯 번째 러닝은 늦은 시간에도 홀로 집에 있어주는 아이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의 러닝은 우리 딸에게 바친다.


아이가 8살이 되면서 많은 것들을 홀로 하고 있다. 하교 후에 혼자 학원 가고, 학원 끝나고 혼자 집으로 온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올 때까지 아이는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 7살 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집에 혼자 둔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꿨는데,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저도 이제 8살이니까 혼자 있을 수 있어요."

"정말? 엄마는 아직 널 혼자 둘 준비가 안 됐는데?"

"근데... 난 준비 됐는데?"


아이는 훌쩍 자라 있었다. 8세의 당찬 독립 선언에 어버버 하며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설마 얘가 혼자 있을 수 있을까 싶어 근무하면서 몰래 CCTV를 보고 옆동 친구 엄마에게 부탁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썼던 것 같다.


내가 눈물을 글썽였던 순간은, 아이가 4시 반에 셔틀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공동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고,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온 뒤, 불을 켜고,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아, 간식을 꺼내 먹던 때다. 엄마아빠 없이 휑했던 공간이 낯설었을 법도 한데, 아이의 첫 독립은 당당했고 넉넉했다. 팔뚝만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부모 손 없이도 많은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니.


아이는 본인의 독립에 제법 만족해했다. 간식을 챙겨 놓으면 혼자 우유를 꺼내 야무지게 먹는가 하면, 전자레인지도 돌려 따뜻하게 데워먹기까지 한다. 이제 내가 아이에게 가르칠 것은 달걀프라이나 라면 끓이기 같은 뜨거운 요리들이다. 이 것만 마스터하면 엄마가 외박(?)도 가능할 것 같다.


이 정도면 아이에게 1시간 정도는 러닝 타임으로 요청해도 되겠다 싶었다. 기특하게도 엄마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당장 나가서 달리란다. 자기는 숙제 잘하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내 표정에 티가 나도록 감격할 무렵, 아이는 눈치를 쓱 보더니 쭈뼛 묻는다.


"공부하면서 IVE 노래 들어도 돼?"


암만. 그래도 되지. 야호.

뻔한 응답이 오간 뒤, 감동 끝에 작은 씁쓸함이 걸렸다. 이제 부모보다 아이돌이 더 좋아지는 때가 오나 보다. 시나브로 그런 날이 내게도 오는 중인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건강을 위해 더 달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게 아이를 위한 길일 것이다. 선배들의 조언처럼 내 인생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도 이제 조금씩 아이에게서 독립할 때가 찾아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달리다 보니 1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