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보니 10km

네 번째 러닝의 기록

by 안보라


오늘 러닝은 무려 10km를 뛰었다. 평균 페이던스 173에 평균 페이스 05'25''/km. 엄청난 기록이다. '10km를 달려야지' 마음먹고 달린 게 아니다. 달리다 보니 10km를 넘었다. 이 날은 스마트 워치도 차지 않고 달렸기에 중간중간 나의 페이스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달릴 뿐이었다. 슬로 조깅을 추구한 덕분에 숨이 가쁘게 차오르진 않았다. 하지만 기록은 숨이 가빠야 정상인데... 오류가 난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기록이 잘 나왔다.


멀리 내다보고 달리지 않았다. 멀리 보니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10m 앞만 보고 달리기로 했다. 그렇게 10m, 10m 더, 20m... 달리게 됐다. 러닝의 자세를 조금씩 바꿔보며 몸의 어느 부분에 힘이 모이는지 집중했다. 사뿐사뿐 뛰어도 보고, 땅을 박차기보다 누르며 부드럽게 나아가기도 하고, 땅과 발과의 거리를 좁히며 보폭을 조금씩 넓혀 뛰기도 했다.


누가 나를 앞지르든, 내가 누구를 앞지르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경의선 숲길을 뛰다 보면 러너들을 많이 만난다. 어떤 이는 나보다 느렸고, 어떤 이는 나보다 빨랐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넘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같이 뛰고 건강해지고 싶은 또 다른 나일뿐이다. 내가 그들보다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내 속도를 높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내 페이스를 잃으면 러닝을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러닝은 어쩌면 타인을 앞지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스스로의 균형을 찾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러닝 중에 플로깅을 하는 할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할머니는 허리가 잔뜩 굽어 있었다. 굽은 허리의 깊이만큼이나 고된 삶을 사셨을 텐데도 이 추운 밤에 쓰레기를 주우러 나오셨구나. 새삼 존경스러웠다. 할머니의 굽은 허리에서 지난 세월을 보았고, 한평생 굽은 등으로 살던 우리 할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의 허리는 왜 'ㄱ'자인지를 묻곤 했다. 가슴 아픈 질문을 참 해맑게도 했었더랬다. 우리 할머니도 여자였는데, 가슴이 못내 아팠으리라 짐작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도 높은 삶은 끝내 할머니의 허리를 굽게 만들었겠지. 그래서 플로깅 할머니에게 더 눈길이 갔다. 날이 부쩍 쌀쌀해져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졌는데도 할머니는 날씨는 아랑곳없이 봉지와 집게를 들고 경의선 숲길을 청소하고 있었다. 연로하신 할머니도 저리 열심히 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더욱 힘껏 땅을 박찼다.


그렇게 발을 구르다 보니 10km를 넘겼다. 다시 뛰라고 하면 못 뛸 것 같지만, 기회가 된다면 또 달리고 싶은 것이 러닝의 매력인가 보다. 다음에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릴 생각이다. 달리다 보면 내가 목표로 하지도 않았던 거리를 뛰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는 목표가 없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한 발씩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오늘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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