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전역하다
내가 일 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방범순찰대를 떠날 때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경찰청 대변인실을 지원해 놓은 상태였다. 당연히 마루는 방범순찰대에서 대원들과 행복하게 살 것을 기대했다.
"저희가 마루를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행정소대장이 이번 인사에 우리 부대 경찰관 12명 중에 8명이 전출을 가게 됐고, 새로 전입하는 중대장을 비롯한 경찰관들이 부대에서 개를 기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에 마루는 정리를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냈다. 주인을 특정하지 못하면 유기견을 입양시키지 못한다는 유기견 분양소 직원의 말이 더욱 이해가 됐다.
"마루를 잘 보살필 분이 데려가시죠"
당시 우리 집은 좁은 아파트에 길냥이 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어서 마루를 입양할 형편이 못됐다. 마루는 견종이 셔틀랜드쉽독인데 부대에서 엄청 잘 먹어서 그런지 몸무게가 20킬로그램 나간다. 운동량도 상당한 대다 가끔씩 짖을 때의 웅장함을 몸으로 느껴본 사람이라면 입양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누군가 시골 부모님 댁에 가져다 드린다고 했는데 하루종일 쇠목줄에 묶여 살아야 한다는 소리에 그곳으로는 마루를 도저히 보내고 싶지 않았다. 동물을 좋아하는 와이프가 '당신이 입양을 결정했으니 끝까지 책임지는 게 맞다'며 마루를 우리 집으로 데려 오라고 했다.
"마대원 7개월간의 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렇게 마루와의 새로운 동행이 시작됐다. 마루가 전역하고 큰 아들이 의경으로 입대했는데 의경들 사이에서 용산서 방순대에 반려견이 있었다는 전설(?)을 들었고 당시 반려견을 키우기로 결정한 중대장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떠돌아다닌다는 소리를 했다.
마루는 우리 집 두 마리의 고양이의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방울이(9살)와 동키(5살)의 막내로 처음에는 고양이들 특유의 뺨 때리기로 마루를 서열아래로 굴복시키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루가 몸무게로 서열을 다시 정리했다. 서열이 정리된 이후로는 고양이랑 아주 잘 지낸다.(내가 보기에는)
마루 때문에 바뀐 삶 마루는 실내에서는 배변을 하지 않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래서 하루에 세 번 산책을 해야 한다. 마루가 집에 오고부터 지금까지 우리 식구들은 세 번 산책을 번갈아 책임지고 있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마루를 훈련시킨 게 아니라 마루가 우리를 훈련시킨 것 같다. 주인을 하루에 세 번이나 끌고 나가는 인간조련사 마루. 덕분에 내가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 살도 좀 빠지고 고지혈 수치도 낮아지고 건강해졌다.
"마루야 양평 갈까?"
마루는 이소리를 들으면 뱅글뱅글 돌면서 좋아한다. 평소 우리 식구가 고양이를 만지면 ‘멍’ 짖으며 시샘을 하는 녀석이 ‘양평’이란 소리를 들으면 우리가 고양이를 끌어안아도 가만히 있는다. '양평'이란 소리에 한없이 착한 개가 된다. 그래서 나의 이중생활의 시작은 마루다.
마루 때문에 가게 된 시골생활에서 마루 너머의 자연을 보게 됐다. 꽃 이름이라고는 장미꽃 밖에 몰랐던 내가 이제 웬만한 꽃의 이름이 입에서 줄줄 나오고 복숭아, 매실, 자두, 대추나무를 구분할 줄 알고 나무로 새집을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사는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맨발로 마당을 걸으며 지구와의 접지(Earthing)를 통해 자연을 배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마루도 들에 핀 꽃도 다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