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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Nov 09. 2023

어쩌다 이중생활

경의중앙선을 타는 순간 지하철은 지상철이 되고, 나는 자연인이 된다.

금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직장 유연근무를 신청해 7시 출근 4시 퇴근한다. 서대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탄다. 경의중앙선을 타는 순간 지하철은 지상철이 되고, 나도 경찰관에서 자연인이 된다. 양수역에서 내린다. 분당에서 양수역까지 차를 가지고 온 와이프, 차량 뒷자리에 있는 반련견 마루와 기쁘게 조우한다. 두 집 살이를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나는 서대문 경찰청에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이다.

< 시골의 밤 >

전원주택이나 요트는 소유하는 것보다 소유한 친구나 지인을 아는 게 최고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5년 전 이 집은 친누나가 소유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누나 집일 때 더 편하게 왔던 거 같다. 여름철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잡초를 뽑지 않아도 되고  겨울철 난방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어쩌다 운명처럼 이 집이 내게로 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뭔가에 홀려 대출을 받고, 뭔가에 끌려 이 집을 소유하게 됐다. 그 뭔가가 바로  반려견 마루다.


'반려견 때문에 집을 산다고?'


<마루는 행복해>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장만하는 이유는 텃밭에 상추나 고추도 심고 저녁이면 가족과 함께 바비큐 파티도 하고 밤이면 쏟아질 듯 별을 보면서 음악도 듣고 이런 시골생활을 하고 싶어서 전원주택을 선택한다고 하는데 나는 마루 때문에 전원주택을 선택했다. ‘싶어서’가 아니라  ‘때문에’ 한 결정인데 결과는 대만족 심지어 '이 집을 안 샀으면 내 인생 어쩔 뻔'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부터 나의 두 집 살이의 이야기를 여기에 풀어놓으려고 한다. ‘두 집 살이’라는 표현보다 ‘이중생활(Dual life)’이라는 표현을 해 보려고 한다. ’두 집 살이’는 장소의 이동에 방점이 있다면 ‘이중생활’은 장소가 달라지면서 삶의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바뀌는 모습에 방점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내가 글로 쓰고 봐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주중에는 경찰관이고, 주말에는 자연인으로 살아간다. 신기한 건 서로 다른 두 삶이 각각의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는 것이다. 쓰는 근육과 달라서 그런 거 같다. 주중에는 오른손을 쓰고 주말에는 왼손을 쓴다고 해야 하나 주중에는 정신활동을 하는 대뇌를 사용하고 주말에는 신체활동과 운동조절을 하는 소뇌를 사용해서 그런가? 과학적 원인을 모르겠지만 결과는 확실히 두 삶이 만족도가 올라갔다.


< 주말에는 목수가 되기도 한다>

주말에는 휴대폰을 던져 놓는다. 한나절이 지나도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현대인은 휴대폰과 모바일 기기의 노예로 살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직업이 경찰관이어서 더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이제 알았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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