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랑 Nov 08. 2023

이중생활(Dual life)의 시작은?

관계의 시작은 만남이다.

 돌이켜 보면 마루와의 만남이 이중생활의 시작인 것 같다. 2017년 나는 용산경찰서 방범순찰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의경부대에서 나는 의경 120명, 경찰관 12명과 함께 근무했다.


"중대장님 우리 부대에서 반려견 키우면 안 되나요?"


대원들과 면담을 하는데 몇몇 대원이 반려견을 키우자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유기견을 분양받을 생각으로 유기견 분양소에 전화를 걸었다. 


"저는 의경들과 함께 근무하는 경찰관인데, 저희가 반려견을 분양받고 싶어서요" 

"그럼 유기견의 주인이 누군가요?" 

"네?… 저를 포함한 120명의 의경인데요"

 "그렇게는 안 되는데요" 


주인이 120명이라는 건 아무도 주인이 아니라며 분양할 수 없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맞는 말이라 인정했다. 여기저기 반려견 분양하는 곳을 알아보다 누군가의 소개로 경기도 소재 반려견 분양소를 찾아갔다. 의경 두 명과 함께 갔는데 다섯 마리 강아지 중 잘생긴 세 마리는 분양이 됐고 두 마리가 남아 있었다.

함께 간 의경들이 모두 흑갈색 모발에 활발히 움직이는 강아지를 데려오자고 했는데 내 눈에는 사람의 눈을 피해 뒤로 숨어 버리는 지금의 마루가 보였다.


 "아니야 난 얘가 마음에 들어" 


그게 마루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부대에 와서 대원들을 모여 놓고 이야기했다.


 "마루는 내 반려견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식구다. 마루 사료랑 예방접종은 내가 할 테니 너희는 산책을 시키고 각자의 방식대로 돌봐 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마루가 처음 부대에 온 날


개를 싫어하는 대원도 있을 것을 생각해 2층 생활실에는 가지 못하게 했다. 그날부터 내 방이 마루의 집이 됐다. 나는 방 문을 열어두고 퇴근했다. 마루와 놀고 싶은 대원들은 언제든지 내 방에 들어갔다. 전역한 대원들이 가끔 부대를 방문하는 데 중대장 방에 아무나 쑥쑥 들어가도 걸 신기해했다. 

행정 소대장이 내게 와서 방문을 잠그고 퇴근할 것을 권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전역을 앞둔 대원들의 sns에 내방을 배경으로 마루와 함께 찍은 인증샷을 보곤 했다. 

마루는 소심해


의경을 대원이라고 하는데, 마루+대원 줄여서 ‘마대’가 마루의 수많은 별명중에 하니다. 마루는 의경 기수로는 1087.5기다. 부대 전입이 1087기 보다 늦고, 1088기보다는 빠르다고 해서 선임대원들이 마루를 1087.5기라 불렀다. 


"마대원 님 잘 주무셨습니까?"


마루보다 전입이 늦은 대원들은 장난 섞인 어투로 매일 아침 마루에게 문안 인사를 하기도 했다. 마루는 대원들과 한강둔치에서 축구도 하고, 순찰을 갈 때면 차에 타고 함께 순찰을 나가기도 했다. 대원들과 행복한 생활을 보내면서 마루의 소심한 성격도 바뀌었다. 지금도 마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세 번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해야 배변을 한다. 방범순찰대 대원들과의 산책이 배변의 루틴이 돼 버렸다.

마루를 보면서 많은 대원이 행복해했다. 마루는 부대에서 단 한 건의 말썽이나 민원 없이 행복하게 지냈다. 아마도 의경부대에서 현역으로 7개월을 근무한 유일한 반려견일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