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블루온’을 아시나요? 아마 익숙한 이름은 아닐 것 같지만 47년 현대자동차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을 모델입니다. 2010년 ‘국내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시됐던, 말 그대로 ‘국산 전기차의 조상님’이거든요.
정부를 대상으로 소량 생산되었던 모델이라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들다는 ‘블루온’의 오너인 ‘라라클래식’ 김주용 대표를 만났습니다. 14년 전, 현대차가 만든 첫 양산형 전기차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기차 개조 및 소형 전기차 제작 사업을 하고 있는 김주용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자동차 기술연구소에 근무했었는데, 이제는 직접 자동차를 만드는 일까지 하고 있네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클래식카를 기반으로 박물관 운영과 전시 등의 문화 사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블루온을 구입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굉장히 오래된 모델이고, 훨씬 좋은 전기차가 즐비한 시대인데요.
클래식카 관련 사업을 하다 보니 자동차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생각도 그쪽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점에서 전기차도 클래식카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외 기준으로 보면 최소 20년이 지난 모델부터 클래식카로 분류되는 자격을 얻게 돼요. 이후 연식에 따라 더 세부적으로 나뉘기도 하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기차라 해도 1-20년 뒤에는 클래식카로 인정받는 모델이 나올 겁니다. 블루온이 출시 20년을 바라보고 있고, 세계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양산형 전기차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으니 전기차가 클래식카로 분류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국 자동차의 역사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블루온을 구매했습니다.
블루온은 정부 지급용으로 제작된 모델이라 당시에는 일반인이 구입할 수 없었어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공매를 통해 일반인도 구입할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매물 수도 극히 적고 상태가 좋은 차량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아무래도 활용가치도 낮기 때문에 상당수 차량이 폐차된 것으로 압니다. 지금 이 차도 거의 1년을 기다려 겨우 구입했죠.
말씀대로 블루온은 현재까지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드물 것 같습니다. 오너로서 직접 경험한 블루온의 특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블루온은 유럽 전용 경차 ‘i10’을 베이스로 제작됐습니다. 내연기관차 플랫폼을 활용했기 때문에 요즘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제작된 모델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보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실제로 주행해보면 경차 베이스 전기차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주행감각이 좋습니다. 구동계 자체의 성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차체가 작아 힘있게 몰아붙이는 전기차 특유의 감각이 살아 있죠.
충전은 급속과 완속 모두를 지원합니다. 요즘과 달리 급속 충전구와 완속 충전구가 서로 구분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겠네요. 완속은 전면부 그릴의 현대자동차 로고에, 급속은 연료주입구 자리에 있습니다. 완속 충전구의 경우 현대자동차 로고를 옆으로 젖혀 커버를 여는 방식인데, 디자인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별도의 커버 구조를 따로 설계한 것이 굉장한 성의라고 할 수 있죠.
계기판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들이 있어요. 파워 게이지는 현재 전기차와 시각화 로직이 유사합니다. 출력과 회생 제동 게이지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방식이죠. 작동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로직의 토대가 당시에 이미 완성돼있었던 겁니다. 다양한 차량 정보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 승용차 중 가장 큰 TFT 컬러 디스플레이를 계기판 내에 배치한 점도 이 차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특히 블루온에 탑재된 VESS(Virtual Engine Sound System,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은 시대를 앞섰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모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에 경고음 발생 장치가 탑재되고 있지만, 블루온이 출시된 시기에는 가상의 소리를 외부로 내는 기술이 의무사항이 아니었거든요. 조용한 전기차의 특성이 보행자에게 위험 요소가 되리라는 걸 개발 단계에서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상당히 많은 클래식카를 소장 중이신데, 오래된 차를 복원하고 관리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전기차는 복원 과정에서 별도의 방법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클래식카의 관리 방법은 소유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차를 일상적으로 운행하기 위한 것인지, 박물관 전시를 위한 것인지, 경매에 내놓기 위한 것인지 등 목적에 따라 관리 방법도 다르죠. 예를 들어, 일상용으로 타고 다니던 차를 박물관 전시용 수준으로 복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상 주행을 통해 발생하는 부품의 노후화와 손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또한 박물관에 전시하거나 경매에 내놓는 차는 출고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일상용 차량은 작동에 문제가 없도록 유지하는 정도로만 복원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박물관 전시용 수준의 복원은 가급적 제작 당시 사용된 페인트, 재료, 기술 등을 고증해 진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의 수성 페인트 대신 해당 시기의 페인트를 구하고, 실내 내장재로 사용된 나무 소재를 복원하기 위해 똑같은 소재의 우드 비니어를 찾는 등 출고 당시의 제작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거죠. 이런 복원 작업은 1~2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고, 비용도 수천만 원에 이르기도 합니다.
전기차 복원의 경우, 화학 반응에 의한 배터리 열화를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습기가 많은 장소를 피하고 정기적으로 충방전을 해야죠. 그 외의 부품들은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방법으로 관리하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복원 과정을 거치고 있는 블루온의 작업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일단 주행에 필요한 주요 부분은 정상적으로 복원했습니다. 하체 로어암이나 부싱 같은 기계적 부품도 모두 교체했어요. 운전석 쪽 리어 휠에 센터 캡이 없었는데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부품을 구해서 복원을 거치는 중입니다. 파워트레인, 서스펜션 등은 비교적 좋은 상태예요.
이 외에 외부에 흠집이나 찌그러진 부분들이 있어서 외형 복원에 공을 들일 계획입니다. 참, 블루온에 부착된 고유의 데칼을 함께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순정 데칼을 구하기 어렵다면 프린팅으로 새로 제작해 붙이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의 전자적 부분은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배터리 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매물을 구할 때도 배터리가 85~90% 성능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하고 구입했죠.
블루온 출시 12년이 지난 2022년,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E-GMP 플랫폼을 활용한 아이오닉 5를 선보였습니다. 이 외에도 코나, 아이오닉 6 등 다양한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데 요즘 전기차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시대를 앞서가는 전기차라는 생각입니다. 잘 만든 전용 플랫폼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짧은 시간 고도의 성장을 이룬 현대차의 기술력이 전기차에도 반영됐다고 느꼈어요. 현대차보다 긴 역사를 가진 글로벌 브랜드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요. 아이오닉 5와 6가 다수의 글로벌 시상에서 ‘올해의 차’에 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현재의 현대차가 이룬 성공에 블루온의 역할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사실 전기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어요. 최초의 전기차는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지금과 비슷한 방식의 현대적인 전기차도 이미 90년대에 개발과 상용화를 마친 브랜드들이 있었죠. 일반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컨버전 키트가 상용화되기도 했었고요.
한국에서는 91년 현대차가 Y2 쏘나타로 전기차를 개발한 것을 비롯해 꾸준히 전기차 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2010년에 최초로 양산형 전기차 블루온을 내놨는데 그것만으로 큰 성과였어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것을 섣불리 예상하기 힘들었던 당시 상황 속에서 전기차 양산 기획을 실행에 옮긴 모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전기차 제도나 문화 등에 대해 희망사항이 있을까요?
과거에 폭약으로 쓰이던 니트로글리세린은 무척 불안정하고 위험한 물질이었지만 다이너마이트 개발 이후에는 위험도가 현저히 줄어들었죠.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도 결국 지금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현재의 단점을 보완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전기차의 보급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겠죠.
전기차의 보급이 늘어날 수록 내연기관차와의 공존 방안도 중요해질 겁니다. 언젠가 내연기관차 사용에 제약이 따르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는 내연기관차를 이동수단이 아닌 문화적 요소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겠죠. 저도 그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