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컨설턴트)
자동차 교육 및 컨설팅 업체 '풀드로틀 컴퍼니'의 대표이자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처음 현대자동차 ST1을 봤을 때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에 놀랐다. 2021년 4월 공개된 스타리아의 앞모습과 평소 택배용 1톤 트럭에서 보던 뒷부분의 카고 적재함 때문이었다. 이름도 특정한 의미를 가진 영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ST1이라는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을 사용했다. ST1은 서비스 타입1(Service Type 1)의 약자로 ‘서비스’를 차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설정했다. 기획단계부터 특정한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과 구조를 갖춰 만들어진, 목적기반 모빌리티(PBV)에 걸맞은 차인 것이다.
ST1은 다양한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플랫폼을 뜻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하나의 자동차로 한정지은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플랫폼은 구획된 땅이라는 ‘Plat’과 형태라는 ‘Form’이 합쳐진 단어로 기차가 들어오는 선로와 나뉘어진, 승객들이 모인 장소를 말했다. 본래 목적인 기차를 기다리는 것 외에 먹을거리나 책 등도 팔게 되면서 플랫폼은 다양한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여 각자가 원하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부르는 말이 되었다. ST1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플랫폼이라는 말만큼 이 차를 잘 정의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ST1의 어떤 부분이 플랫폼으로서 장점이 될까? 우선 택배로 대표되는 근거리 물류의 배송이다. ST1은 160kW의 최고출력과 350Nm의 최대토크를 내는 모터를 차 앞에 달고 앞바퀴를 굴린다. 효율이 좋아진 것은 물론 800V 고전압 시스템을 쓴 카고 모델은 1회충전 복합 주행가능거리가 317km나 된다. 짐을 싣지 않은 상태에서 100% 충전을 하면 400km 이상의 주행가능거리가 나타나는 것도 볼 수 있어 그간 실제 주행가능거리가 200km 정도였던 전기 트럭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택배 차의 하루 평균 운행거리는 53.8km다. 주말에 100% 충전하고 5일 동안 운행한다면 일주일 동안 100% 완충 한 번, 혹은 30분 정도 짧게 두 번 충전이면 충분히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활용성이 크게 좋아지는 것이다. 편도 150km 이상의 중거리 운송에도 불안감이 없다. 배송 후 빠르게 충전하면 복귀가 가능하니 업무 효율도 올라간다.
사용성을 높일 장비들도 가득하다. 스톱앤고(Stop&Go)를 지원하는 스마트 크루즈컨트롤이나 차로 유지 보조는 운전 피로도를 확 낮춘다. 일반적인 1톤 트럭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화물실 바닥은 타고 내리기도 편하다. 1,700mm인 짐칸 높이는 허리를 편 상태로 작업이 가능하다. 전동식으로 열리는 옆면의 파워 슬라이딩 도어나, 간단하게 잠그고 열 수 있는 리어 도어도 편리성을 높여 준다.
사실 ST1을 타며 가장 놀랐던 부분은 짐을 싣지 않았음에도 꽤 괜찮은 승차감이었다. 캐빈의 기본이 된 스타리아의 시원한 개방감과 승용차 수준의 넓고 푹신한 시트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전면 윈드실드는 물론이고 옆유리까지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쓴 것도 조용한 실내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운전자보다 앞에 있는 모터와 구동계의 소음도 잘 억제되어 전체적인 주행 만족도가 꽤 높았다.
카고 냉동이라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직접 관리가 가능한 냉동기 제어 기능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내연기관차에 달린 냉동기는 엔진에서 발전해야 하는데 ST1은 주행용 배터리에서 바로 높은 전압의 전기를 쓸 수 있다. 여기에 패널의 단열재를 보강해 전기를 적게 쓰면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별도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온도기록을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어 더 꼼꼼하게 관리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승용차에 익숙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용도에 맞춰 개조되거나 특수한 장비를 단 차들은 아주 많다. 소위 특장차라 불리는 종류다. ST1은 특장용으로 샤시캡 모델을 판매한다. 구성하기에 따라 캐빈 높이인 2,005mm에 맞춰 더 낮은 짐칸을 달거나 좌우에 슬라이딩 도어를 달 수도 있다.
기본형인 ST1 카고 모델은 전고가 2,230mm로 최근 지어진 건물이나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높이인 2,300mm보다 여유가 있다. 그럼에도 지역에 따라 높이가 더 낮은 주차장도 있으니 적재공간을 줄이더라도 적재함 높이를 낮춘 저상 카고나 저상 냉동탑차를 만드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본이 되는 샤시캡을 만들면서, 외부 업체가 개조 작업을 할 때 얼마나 잘 지원해줄 수 있는지다. 단순히 뒤에 올라갈 차체를 어떻게 만드냐를 넘어 전기장치 사용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ST1 샤시캡 모델은 운전석 대시보드 아래와 리어 프레임 뒤쪽에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의 외부 커넥터가 있다. 이 커넥터를 통해 12V 배터리 전원, 실내 인테리어와 카고의 룸램프, 보조제동등,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등 다양한 조명을 켜고 끌 수 있다. 캠핑카로 개조할 경우, 실내 조명부터 12V 전원을 이용한 다양한 장비를 사용할 수 있으며, 파워뱅크 등 보조 배터리도 충전할 수 있다.
또한, 적재함 도어를 리모콘으로 열고 닫을 수 있어 편리하다. 낮은 카고나 냉동탑차를 만들 경우, 한 번에 모든 도어를 잠그고 열 수 있다. 실내 AVN 모니터에 연결할 수 있는 후방 카메라 케이블도 있으며, CAN 통신을 통해 다양한 제어가 가능하다. 여기서 현대차의 역할이 커진다. 사용자가 ST1으로 하려는 비즈니스에 맞춰 차의 주행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운행이 가능해진다. 운전자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면 회생제동 시스템 사용 방법을 조언하거나, 비용 절감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ST1을 보면서 새학기를 시작하며 노트를 준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본형인 카고 모델도 좋지만, 샤시캡을 활용해 내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맞춤형 차량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어 차고를 낮춰 주차 편리성을 높이고, 지방으로 업무를 다닐 때 필요한 장비들을 고정할 수 있도록 화물칸 벽과 바닥에 앵커 포인트를 추가하고 싶다. 여기에 가끔 경량 바이크를 싣고 다니면 어떨까. ST1의 낮은 카고 바닥은 혼자서도 쉽게 바이크나 자전거를 싣는 것이 가능하다. 지방 출장지에 도착해 ST1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경량 바이크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바이크를 내린 카고 바닥에는 야전침대를 펼쳐 차박이 가능하다. 실내 천장에 모기장을 달면 우아한 침실이 된다. 비가 오면 문을 닫으면 되니 텐트나 타프를 설치하는 번거로움 없이 자연을 더 즐길 수 있다. 벽을 따라 주방을 꾸미거나 수납공간을 마련하면 더 완벽해진다. 공간이 넉넉하여 캠핑용 장비들을 실어놓아도 괜찮다. 220V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V2L 기능을 이용하면 재미가 더 커진다. 아, 급한 업무도 노트북을 펼쳐 바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면 강원도로 달려가 눈을 보며 일하거나, 따뜻한 남쪽 바다를 앞에 두고 커피 한잔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프렁크에 스노 체인을 넣어두면 마음이 편하다. 여름에는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편하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에어컨 송풍구를 연결하면 시원한 바람을 실내로 가져올 수도 있다. 아마 좌우와 뒤쪽에 작은 창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즐거운 상상은 멈출 줄 모른다.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 ST1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다. 흔히 여러 신화 속의 신이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은 상상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한다. ST1은 상용차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며, 개인에 따라 다양한 아이디어를 더해 레저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의 관점에서 봐도 이런 특장차는 매우 중요하다. 제조사는 기본이 튼튼한 모델을 내놓고, 외부 업체가 무한에 가까운 상상력을 더한 차들을 만들면 된다. 이는 시장을 확장하고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신의 한수가 될 것이다. 1년쯤 지나 ST1을 활용한 다양한 차들이 나오기를, 새 학년이 되었을 때 노트가 가득 차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