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해 12월부터 캐스퍼 내연기관 모델을 타고 있습니다. 아, 물론 캐스퍼 일렉트릭이 2024년에 출시되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자세한 제원이나 가격을 알 수 없었고 당장 차가 필요해 캐스퍼를 계약했습니다. 나흘 만에 차를 인도받고 지금껏 잘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등장한 캐스퍼 일렉트릭을 보니 ‘그냥 8~9개월 정도 기다렸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캐스퍼 일렉트릭은 캐스퍼와는 다른 부분이 많거든요.
우선 차를 사는 과정에서부터 운용단계까지 비용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경차급에서 비용은 매우 중요한 요소니까요. 우선 캐스퍼는 취득세가 전액 면제됩니다. 반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취득세(201만3900원)에서 140만원을 감면받아 61만3900원을 내야 합니다.
연비와 전비에 따른 연간 연료비도 알아봐야겠죠. 캐스퍼 터보 인스퍼레이션(17인치 타이어)의 연비는 12.3km/L입니다. (리터 당 1680원 기준) 연간 1만5000km 주행을 가정하면 205만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경차는 연간 30만원까지 유류지원금이 나오니 175만원 정도 유류비가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캐스퍼 일렉트릭(17인치 타이어)의 전비는 5.2km/kWh입니다. 똑같이 연간 1만5000km를 주행하면, 총 충전비용은 84만원(급속 50kW 이하, 291.20원/kWh 기준) 정도로 예상됩니다. 유류비는 확실히 전기차가 유리합니다. 또한 전기차 특성상 캐스퍼 일렉트릭은 도심 연비(5.7km/kWh)가 더 높고 캐스퍼는 도심 연비(11.0km/L)가 낮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가격의 문제만은 아니죠. 캐스퍼 일렉트릭, 실제 타보면 어떨까요? 우선 실내에 앉으니 캐스퍼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릅니다. 우선 운전대가 다르네요. 아이오닉 5에서 가져온 운전대가 전혀 다른 차의 분위기를 냅니다.
운전대 너머로 보이는 클러스터는 커졌을뿐만 아니라 풀 LCD를 사용합니다. 와우, 센터 디스플레이도 10.25인치나 되네요. 더 큰 모니터로 내비게이션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으니 벌써부터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변속기가 있던 자리에는 스마트폰 무선충전기가 생겼습니다. 굳이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자잘한 소품을 넣어 다니기에도 좋아 보입니다. 또 동반석 도어 암레스트에 고리가 있어 작은 가방이나 우산도 걸어 놓을 수 있네요. 모두 캐스퍼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캐스퍼 일렉트릭을 개발하면서 캐스퍼 오너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캐스퍼 일렉트릭에만 있는 건 아직도 많습니다. 가장 부러운 건 오토홀드입니다. 캐스퍼는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가 아니라 정차 시 브레이크를 꼭 밟고 있어야 했거든요. 캐스퍼 일렉트릭이 가진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의 장점은 또 있습니다. 스탑앤고 기능을 포함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이 적용됩니다. 오토홀드와 스탑앤고는 한번 쓰면 다시 돌아가기 힘든 기능들이죠.
또 스마트폰으로 도어를 열고 시동도 걸 수 있는 디지털키2, 운전석뿐 아니라 동반석에서도 도어를 열 수 있는 터치 센서 클로저 시스템, 동승석 통풍시트, 그리고 서라운드뷰 모니터와 후측방 모니터 등도 캐스퍼 일렉트릭에만 있는 편의 및 안전 사양입니다.
페달 오조작 방지 시스템도 있습니다.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오인했을 때 스스로 제동을 거는 시스템인데요. 이는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니지만, 부럽기는 합니다. 오조작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아! 캐스퍼 일렉트릭은 대용량 배터리를 넣기 위해 휠베이스도 늘렸습니다. 덕분에 뒷자리 무릎공간도 넓어졌는데요. 사실 이 부분은 기존 캐스퍼 오너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캐스퍼 인스퍼레이션 트림에도 2열 슬라이딩 기능이 있거든요. 다만 캐스퍼 일렉트릭은 길어진 휠베이스만큼 뒷문도 약간 넓어져 타고 내리기가 더 편해지긴 했습니다. 부럽지 않으려 했는데 부러워지네요.
편의 및 안전장비도 중요하지만, 제가 캐스퍼 일렉트릭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소음과 진동이었습니다. 경차는 특성상 엔진 소음 및 진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소음과 진동의 원인이 되는 엔진이 없습니다. 단점이 사라진 셈이죠. 실제로 캐스퍼 일렉트릭은 정말 조용합니다. 당연히 진동도 없고요. 도심 주행 시 모터 소리가 약간 들리기는 하지만 확실히 엔진 소리보다는 작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쾌적함이 배가 되네요. 실내가 조용하니 음악도 더 잘 들리는 듯합니다.
진동이 줄어든 실내는 승차감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잔진동이 캐스퍼에 비해 확실히 줄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캐스퍼 일렉트릭은 캐스퍼에 비해 거의 300kg이나 무겁습니다. 그만큼 노면을 더욱 무겁게 누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무게 차이는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도 줄여줍니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승차감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엔진룸에서 엔진을 들어내고 차체 바닥에 배터리를 깔았습니다. 그러면서 차체가 무거워졌고 무게 밸런스도 달라졌죠. 따라서 주행질감도 약간 다릅니다. 캐스퍼보다 확실히 진중하고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차체가 무거워졌지만 차체 반응성 자체는 여전히 경쾌합니다. 전기차는 터보 엔진보다 토크를 빠르게 뽑아내니까요. 오히려 가속페달 반응성은 캐스퍼 일렉트릭이 훨씬 빠릅니다. 덕분에 시내 주행에서 톡톡 치고 달리면서 스트레스 없는 주행을 만들죠. 시내 주행만 놓고 보면 캐스퍼보다 캐스퍼 일렉트릭이 더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캐스퍼 대비 앞이 가벼워진 대신 뒤가 약간 무거워졌습니다. 이런 밸런스 변경은 주행 감성에도 영향을 줍니다. 앞이 가벼워지면 휠슬립(차량의 바퀴가 헛돌거나 미끄러지는 현상)이 나기 쉬운데 웬걸요. 휠슬립 없이 안정적인 주행을 보여주면서도 노즈 움직임은 한결 가볍고 산뜻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무게 및 파워트레인 변화에 따른 하체 강화 덕분입니다.
강화된 하체 덕분에 고속에서도 안정감이 생깁니다. 사실 일반 캐스퍼는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엔진 소리가 주는 압박이 있습니다. 반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조용합니다. 진동도 없고요. 운전대도 전혀 흔들리지 않아 안정감도 높습니다. 고속 주행에서 캐스퍼 일렉트릭의 주행감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캐스퍼 일렉트릭은 캐스퍼이면서 캐스퍼가 아니었습니다. 파워트레인도 다르고 차체 크기도 다르니까요. 이에 따른 주행성능이나 질감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더불어 편의장비도 훨씬 더 많고요. 물론 가격이 조금 더 비싸기는 하지만, 가격 이상의 충분한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캐스퍼 오너 입장에서 캐스퍼 일렉트릭을 경험해 보니, ‘조금 더 기다렸다가 캐스퍼 일렉트릭을 구매할 걸 그랬나?’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실제로 부러운 부분이 많거든요. 무엇보다 캐스퍼 일렉트릭이 가장 부러운 건 소음과 진동이 훨씬 적다는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캐스퍼 일렉트릭은 거주성이 월등히 좋아집니다.
그렇다고 지금 타고 있는 캐스퍼가 싫어진 건 아닙니다. 캐스퍼는 운전과 주차가 쉽고 편하면서 다양한 경차 혜택까지 있으니까요. ‘캐스퍼'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지만, 두 차는 완전히 다른 차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나에게 어떤 차가 더 어울릴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결국 시승이 답입니다. 현대닷컴 혹은 마이현대 앱에서 두 차 모두 경험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둘 모두 시티카로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