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교차로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오전이지만 날이 뜨거워 바닥을 보며. 그러다 뭔가 시선을 끌었다. 까만 머리끈. 여자들이 흔히 쓰는 까만색 머리끈이었다.
머리끈은 대체로 열개, 스무 개씩 왕창 산다. 헤프게 쓰는 물건 중 일등이 아마 까만 머리끈일 거다. 손목에 차고 있다가 점심시간 동안 긴 머리 동료에게 빌려주기도 하고, 묶고 있다가 풀면 가방이든 침대 머리맡이든 어디든 아무 데나 둔다. 그저께는 소파 사이에서 네 개의 머리끈을 찾았다. 이러니 도대체 머리끈은 사도사도 없어진다고들 하지.
볼펜도 그렇다. 사무실에서 종종 나누던 수다의 소주제. 대체 그 많은 볼펜들은 다 쓰기도 전에 어디로 사라지는가, 이다. 볼펜을 끝까지 쓰기란 당최 어려운 일. 쓰다 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사무실에서 볼펜이란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인 것, 내 책상 위에 있다 회의실 책상 위에 있기도 하고 그러다 조직개편으로 대대적 공간이동을 할 때면 책상 뒤에서 사라졌던 엄청난 볼펜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릴 때 이사하던 날이 기대되었던 이유, 장롱 밑의 동전처럼. 이삿날이 오기 전 엄마에게, 엄마 엄마 이삿날 나오는 동전은 나 다 줘요 응? 응? 하고 물으면 짠순이 엄마는 그때만큼은 웃으며 허락을 해주었지. 오백 원 짜리라도 나오는 날엔 잭팟이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구석에서 찾아낸 머리끈과 손에 익은 볼펜도 여전히 반갑긴 반갑다.
나이가 들 수록 친구가 달라진다. 꼬맹이 땐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절친이었다가, 학창 시절엔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짝꿍이 된다. 대학교 때는 같은 취미로, 직장인이 돼서는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당끼리 또 친구가 된다. 나이가 들며 어린 시절 친구보다는 근래의 공통점이 많은 사람을 더 자주 만난다. 중학교 동창은 일이 년에 한 번 볼까 싶지만, 그만둔 직장에서 사귄, 성향이 비슷한 친구는 적어도 육 개월에 한 번은 만난다.
결혼하면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들 한다. 결혼식에 당연히 올 줄 알았던 사람이 말도 없이 오지 않고, 내가 한 축의금보다 훨씬 적은 축의금을 하고, 상부상조 참석하는 친구인데도 생색을 낸다거나, 배우자의 살림살이가 크게 차이가 나면 그것대로 자연스럽게 갈리기도 한다. 주양육자가 되기 마련인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으면 관계는 더 달라진다. 직장 다니는 딩크 친구보다는 동네 아기 엄마가 더 가깝기 마련이다. 살림살이 비슷하고 비슷한 친구들끼리 점점 소그룹화 되어 친목을 다진다.
남자는 의외로 다른 경향이 있다. 중년이 되면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찾는다. 회사에서 형님, 아우님 하던 선후배보다 학창 시절 친구를 더 반가워한다. 사회생활에서 만난 친구는 서로의 계급을 안다. 정글에서의 내 위치를 안다. 내가 지난번에 물먹고 제대로 한풀 꺾여있다는 걸 안다. 그런 마음을 들키는 게 싫다는 걸 상대도 아니까 그럴 때는 오히려 잠시 거리를 두거나, 만나도 에둘러 위로한다. 반면 학창 시절 친구는 내 직함이나 알지 나의 사회인으로서의 기능은 잘 모른다. 넥타이 풀고 취해도 되는 친구는 어린 시절 어울리던 철부지 친구들이다.
합이 맞아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는 실제로 거의 없다. 여러 명이 단짝으로, 오랜 시간 절친으로 지내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어쩌다 한 번 그런 사람이 보이면 보는 나는 주눅이 든다. 저 모습이 장상이고 나는 비정상 같다. 그럼 나는 뭘 잘 못 살았나, 내가 어디가 이상한 데가 있나 하고 내면을 돌아보거나 아니면 나는 친구 필요 없어!라고 스스로를 속이거나 세상 놈들 나한테만 이 지랄이지, 하고 비뚤어진 마음을 갖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주고받는 마음의 크기가 다를 때도 서운하다. 나는 저를 이렇게 챙겼는데 고작 나는 이 정도구나. 그래 알았다, 싶어 연락을 뜸히 하거나 안보기로 결정한다. 세월이 흘러 달라지는 상대를 보며 당황하기도 한다. 아예 관심사가 달라져버리면 더 이상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몇년 전, 아주 어린 시절 부터 수십년 된 친구가 멀어졌을 때, 인생의 가치관 부터 흔들렸다.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고 서운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친구가 서운했을 법한 지점이 짐작이 되었다. 너 힘들었겠구나. 이제는 생각한다. 그러나 더이상 자책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부모도 배우자도 자녀도 내 인생의 처음과 끝을 모두 함께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게 도움을 주고 내가 도움을 주고. 시기가 끝나면 헤어진다. 죽음으로 갈라서기도 하고 아니면 강제적으로 연을 끊기도 한다. 보통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죽을 때 까지 우리들은 절친이다!는 무협 영화의 판타지인 동시에 로맨틱 코미디가 보이는 허상이다. 어릴 때 옆집에 살던 아줌마, 나와 동갑의 딸이 있었나. 매일 같이 우리집을 드나들었고 이사를 간 후에도 한 동안은 연락이 됐었던. 그러다 어느 순간 번호가 바뀌고 이제는 알 길이 없지.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 은 옆에 살 때 이야기고, 죽을 때 내 장례식에 찾아오는 건 멀리 살던 사촌이다. 모든 관계는 1년이 되었든 10년이 되었든 70년이 되었든 기한이 있다. 끝난 기한을 서글퍼하며 자책을 해보았자 다시 이어 붙일 수 없다.
외로운가?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외롭다. 우리 엄마도 외롭고 우리 아빠도 외롭다. 우리 남편도 외롭고 우리 강아지도 외롭다. 그래서 글을 읽고 주말 약속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자손들에게 고약해진다. 우리 모두는 외롭다. 엄마의 탯줄에서 끊어지는 순간 영원히 모체에서 단절되는 순간 영원한 고독은 시작되었다. 뱃속에서의 완벽한 에덴은 지구상에 없다. 어쩌겠나. 태어나버렸는데.
기대한 만큼 실망한다. 누구도 내 마음을 나만큼 알 수는 없다.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할 때 마다 서운하지만 그 서운함은 일시적이어야 한다. 나라고 그에게 서운하게 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자신한다면 진심으로 치료가 종교나 의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때가 오래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외로움이 보였다. 본인이라고 그렇게 힘든 인생을 살고 싶으셨을까. 성정에 부딪히는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다 보니 그렇게 울퉁불퉁해진 거지. 아버지의 외로움이 보이는 순간, 아버지에게 매일 전화하기 시작했다. 딸의 전화를 한참은 불편해하셨지만 점차 나아졌다. 어느 순간 나는 다는 아니지만 작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조금만 친절하게 말씀해주시겠어요?라고. 아버지는 노력하겠다고 하셨다. 처음이었다. 인정하시는 건.
아버지의 인정을 끌어낸 것은 내가 매일 전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의 외로움을 읽었다는 것 까지는 모르시겠지만, 비슷한 어떤 덩어리를 내가 느껴 알고있다는 걸 아버지도 느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온전한 화해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아버지가 달라지기 보다 내가 아버지의 외로움을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 속에 있는 거 내 속에도 있어, 내가 알아, 당신 마음 알아, 여기까지가 나의 목표다. 내 남편, 친구, 선후배에게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실수한 건 바로잡고 상대의 마음을 더 헤아려야지. 급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늘도 나의 관계는 목적지로 느리게 유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