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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수 Mar 14. 2020

괴로운 밤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잠시 한국에 나와있을 때였다. 어깨가 너무 아파 팔을 들기가 어려워 정형외과에 갔다. 병원은 유명했으나 낡았고 의사는 젊었으나 교만했다. 대기실에 별 기대 없이 앉아있는데 천장에 달아놓은 텔레비전에 눈이 갔다. 인간극장일까 동행일까, 뭐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이었다.


젊은 여자는 방에 누워 살았다. 근육이 소실되는 병 중의 하나를 앓고 있었는데 이미 많이 진행돼 있었다. 여자가 말했다. "저 창문은 세상이에요. 저는 저 창문으로 하늘을 봅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만) 이 말을 듣는 순간, 당황스럽게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거실에 누워 지내던 4년 반 동안, 내게도 그런 창문이 있었다. 미세먼지가 없어 파랗다 못해 새파란 일본의 하늘이, 그 하늘을 보여주는 작은 창 하나가, 내게는 세상이었다.


고통에 잠겨있을 때, 사람은 질식하지 않는 데에만 온 신경을 쓴다. 고통이 조금 잦아들면 비로소 생각이 고개를 든다. 내게는 그것이 '고통의 이유는 무엇인가',였다. 고통을 통해, 고통을 통과한 인간은 어떤 모양이 되는가, 는 나중이었다. 아니, 고통의 이유 또한 나중이었다. 통증이 있던 모든 날에는 고통을 견디는 것에만 집중했었지. 내 몸에 주어질 오늘 하루치의 통증을 겪는 것에 온통 집중했었다. 그래서 꽤 건강해진 지금, 과거를 찬찬히 살펴보고 아픈 기억도 끄집어낼 생각이다. 경험 중의 하나로 묻어놓지 않고, 고통의 무게와 형태와 성질을 샅샅이 파헤쳐 볼 계획이다.

고통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라면, 어쩌면 흥미로운 글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려면 나는 십 년 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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