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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수 Sep 23. 2020

시골 촌놈 서울촌놈

오래간만에 외식을 했다. 코로나 19로 자영업이 힘겨운 요즘에도 연일 성업인 집이었다. 체온을 측정하고 큐알코드를 찍고 사방 옆 테이블은 띄워놓고 앉아야 하는 달라진 풍경이었지만 오래간만이라 기대가 됐다. 제주도 흑돼지를 덩어리째 구워주는 집, 아저씨들로 바글바글한 집, 그래 제주도 여행은 요원한 것 같고 식도락이나 즐겨 보자 하고 고기가 구워지는 긴 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고, 친구들 모임 혹은 회식으로 나 하나를 제외하곤 백 프로 남자였다. 진짜 맛있는 집이구나, 먹기도 전에 설득되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뭐야 이 집. 실망, 실망, 그런 실망. 평생 먹어본 고기 중 그렇게 맛없는 고기도 드물었다.


태어나진 않았지만 대대로 시골에서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 덕에 명절이 되면 민족 대이동에 합류했다.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고된 일정이 끝나면 늘 바비큐 파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명절에는 동네에서 늘 돼지를 잡았고 몇 집이서 고기를 나누었다. 도축한 지 얼마 안 되는 고기를 장작을 때어 구워 먹었다. 고기가 신선할 때, 고기를 먹는 가장 맛있는 방법은 직화로 구워 소금만 찍어먹는 것이다. 그냥 먹기가 지겨워지면 남은 고기는 고추장 양념을 해서 마저 굽는다. 그러면 빵빵하게 먹은 줄 알았는데도 또 고기가 들어간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자랐다. 도시보다는 촌이 주였다. 생수 한통과 밥, 김치, 삼겹살을 들고 들로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다녔다.

 적당한 돌을 달궈 돼지비계로 닦아내고 씀바귀 등을 뜯어 그 자리에서 씻어 쌈으로 먹었다. 우리 집의 외식은 거의 실외에서였다. 꼬맹이였지만 잔심부름을 하다 보니 불도 제법 잘 피우고 고기도 꽤 굽게 됐다. 불을 피워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늘 마음이 평온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뭇가지로 만든 젓가락까지 몽땅 태우고 나면 (물이 모자랄 땐) 아버지는 불이 꺼진 재 위에 오줌을 쌌다. 그리고 휘휘 져서 남은 불씨가 없나 두어 번 더 확인을 하면 그날의 일정은 끝. 아버지에게도 아버지 친구분들에게도, 나에게도 친구분들 자녀들에게도 모두에게 꽤 귀한 추억이다.


케베스에 들어가서 피디 아저씨들의 이야기에 늘 경청했다.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늘 즐거웠다. -아버지 친구분들인 해군 아저씨들은 이 바다 저 바다 온 세상의 썰을 퍽 재미지게 풀어놓으셨었다. -하나라도 더 들어서 배우고 싶었다. 듣다보면 출신지 자부심이 있구나,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우리 집은 서울 사대문 안에 3대 이상 거주한 진짜 서울 사람이라거나, 우리는 TK라거나, 우리 아파트에 거물 누구누구가 산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뿌리나 고향, 뼈대라고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나는 조용히 앉아 먹기만 했는데 맛있는 식당의 메뉴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별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삼합 같은 걸 먹으러 가면 영 재미가 없었다. 이 화장실 냄새나는 걸 왜 먹는 거람. 이해하지 못했다.


음식으로 촌놈이냐 아니냐를 농담처럼 가리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홍어를 먹으러 가면 '애'를 먹을 줄 알아야 하고 전복을 먹을 때도 내장을 따로 챙겨야 한다거나, 참치를 먹을 땐 눈알의 액을 따로 모아 먹어야 한다 등등 모르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구나, 도시의 어른들은 이런 걸 먹는구나, 먹는 것도 대충 하지 않는구나, 이십 대의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어느 날 김훈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자전거 여행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훈의 언니의 폐경을 읽으며 잉? 여자가 이렇다고? 하는 지점이 많았지만 나야 한미한 어린 방송작가일 뿐이니 그런 가 보다 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 남한산성 마저 베스트셀러가 되자 자전거 타는 아저씨들이 더 늘기 시작했다. 케이블에서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주야장천 방송되기도 했다. 김훈은 아저씨들의 워너비이자 아이돌이었다. 김훈이 되게 멋있나 보네, 암튼 그러고 말았다.


회식에 가면 주로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다. 보통 삼겹살과 목살을 장작이나 숯불을 피워 굽는다. 기름이  불꽃에 떨어져 불꽃이 올라오고 그을음이 비계에 묻는다. 좀 덜 익어도 맛나게 잘 먹는다. 야외의 식사란 최고의 메뉴니까. 내 나이 서른이 넘고 어느 날 불을 못 피우는 아저씨들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저 서울 남자들은 여럿이 모여도 불 하나를 못 피우네, 하고 픽-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편과 같이 간 캠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호기롭게 산장을 빌렸는데 종이로 숯을 피우려고 했다. 저리 가, 내가 할게, 남편을 불가에서 멀리 치우자 불은 금방 붙었다. 내가 고기를 구웠고 남편은 맛있게 먹었다.


잘 모르면 아는 척하고 싶어 진다. 나도 안다고 모르지 않는다고 아는 사람 틈에 끼고 싶어 진다. 잘 모르지만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다 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부족한 사실을 진실로 믿게 된다. 엄마의 말, 묵은지가 뭐가 맛있니, 못 먹어치운 김치를 묵은지라고 하는 거지. 김장은 일 년이 지나면 맛이 떨어져, 라는 말을 듣고 실제로 해를  넘긴 김치로 음식을 해보니 영 맛이 떨어지는 걸 알게 됐다. 김치의 섬유질이 아직 덜 죽고 양념이 과숙성되기 전, 한 해가 제일 맛있구나, 뭐 내 입맛은 그렇다.


나는 여전히 홍어가 맛이 없고, 어려서 부터 그 깊은 맛에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라면 전라도 바닷가 사람처럼 홍어를 즐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들 맛있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인데요,라고 혼자 손들기엔 용기가 필요하기는 하지. 그래도 잘 모르면 잘 모른다고 하는 게 훨씬 멋있다. 아는 척 무슨 척, 척척 만큼 후진 거도 별로 없다. 제주도 흑돼지 한끼에 9만원이 나왔는데 그 가격이면 소고기를 먹겠다는 것이다. 나를 속인 이 서울 아저씨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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