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아니 비움(노트)

by 강가

리미널리티 (liminality). 인류학자 빅터 터너가 규정한 개념이라 한다. 리미널리티는 특정한 지점들 사이의 틈, 공간을 일컫는다. 여행은 일상성과 비일상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성으로 돌아간다. 일상성과 비일상성 사이 그리고 비일상성과 일상성 사이 모호한 틈이 발생한다. 그 틈 사이에서 도파민 그리고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 발생할 것이다. 그 틈은 매우 빠르게 채워진다. 하지만 명상은 다소 다른 듯하다. 그 변화의 틀은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명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일상적 활동에 속하지만 그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내적인 혹은 마음적인 변화의 상태가 여행과는 크게 다르다.


미국 유학 준비를 모두 마친 후 머리를 식히고자 떠난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복귀하였다. 서울 자취방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무엇인가 변화를 알리는 듯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차곡차곡 쌓이고 널브러진 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글을 적었다.


“무엇을 버린다는 건 쉽지 않다. 소중히 여기는 종류의 것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없어진다는 것에 무언가 손해를 입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소유에 대한 집착도 한몫을 한다. 때때로 이러한 것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조그마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미련이 생기고, 언젠가 다시 필요하겠지 라는 막연한 의식이 행동을 잠시 지배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타협이 쌓이고 쌓인 후엔, 널브러진 쓰레기처럼 그 속에 빠진 동전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잠시 동전을 찾는 사이, 의식은, 미련이 남는 물건에 또 손을 뻗친다. 혼란스럽고 분산된다. 잘 비우지 못하면 잘 채우지도 못할 것 같다. 욕심, 집착, 그리고 미련이 새로운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진하는 발목을 잡기도 한다. 매우 강렬하게. 그러므로, 명명백백하진 않더라도,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음에 공감한다. 그럼, 더 홀가분해짐을 느낄 것이다.”


쌓여 있던 불필요한 책들을 모조리 처리해 버렸다. 소심했던 성격을 고려하면, 아주 과감했던 결단이자 행위였다. 또한 마음 상태의 변화를 대변하는 일이기도 했다.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단순해지고 가벼워진 것. 나름 큰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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