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우연을 가장한 필연
예술가가 선물해 준 실 팔찌를 맨 체 미얀마로 이동하였다. 태국은 사실 새로울 게 많이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었으므로. 그러므로, 근접 국가인 미얀마를 가 보기로 하였다.
양곤, 바간을 거쳐, 만달레이에 왔다. 한 여행자 숙소에 머물렀다. 옥상에 멍하니 앉아 주변 여행객들을 관찰하였다. 젊은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허나, 더 이상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곧 떠나야 함을 직감으로 느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양곤으로 향했다. 그리고 새벽에 도착한 곳은, 양곤의 국제 명상 센터. 그렇게, 생애 첫 10일 명상 수행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점차 미묘하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양곤으로 향하기 전, 만달레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우베인 다리에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라고 한다. 그 후, 근처 미얀마 최대 수도원이라 불리는 마하간다용 수도원에 갔다. 대규모 탁발 행렬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승려로부터 명상을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소개받았다. 가는 방법을 메모지에 적었다. 다음날쯤 그곳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를 모색하였다. 주변에 사가잉이라는 지역을 알게 되었다. 사가잉은 미얀마 불교의 중심지라 한다. 큰 다리를 하나 지나니 사가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러 곳을 방문하고,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 명상 센터. 건물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입구를 지나니, 마침 평범해 보이는 한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자연스레 명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본인의 명상 체험을 공유해 주었다. 술주정뱅이였는데, 명상을 배우고 인생이 크게 변했다는 것. 그리곤 특정한 묘사를 하였다.
본인의 손바닥을 가리키며, 돋보기를 통해 태양 빛이 한 곳으로 모아지면 강렬한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 말인즉, 명상의 집중력을 이야기한 것 같다. 모여진 빛은 강렬한 에너지 발생하며 대상을 태운다. 물론, 물리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마음을 모아서 특정한 지점에 집중하면, 집중 대상이 된 마음의 상태 혹은 번뇌가 태워짐을 (혹은 사라짐) 비유한 것으로 이해했다.
평범해 보였던 첫인상과 다르게 비범한 사람 같아 보였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곤 한다. 틀린 말이 아님을 느꼈다. 전에는, 미얀마는 저개발 빈곤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미얀마 사람들을 알게 되면 될수록, 그러한 이미지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국가의 경제적 위치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이고 친절하다. 또한, 가난한 국가이므로, 사람들이 무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 배울 점이 많고 자비심으로 넘치는 사람들이다.
그와 이야기 후, 명상을 배우고 싶다는 확신이 섰다. 그에게 명상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그곳에 거주하는 스님들에게로 데려다주었다. 두 명의 스님이 나왔다. 그가 스님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양곤에 있는 국제 명상 센터를 제안을 해주셨다. 그곳에서는 외국인들도 많고, 영어로 안내도 하고 설명도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정보를 입수하고 만달레이 시내로 되돌아갔다.
사가잉에서 만달레이 시내까지는 약 30km의 거리다. 차를 타고 가도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과감한 도전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다. 그곳의 거리가 30km 정도 되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야간 버스를 타고 양곤에 도착하니 새벽 4시~5시 정도였다. 다행히도, 버스 터미널에서 소개받은 명상 센터까지는 멀지 않았던 터라, 어렵지 않게 도착하였다. 예약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갔지만, 운이 좋게도 곧바로 입소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되었던 것처럼 척척 맞아떨어졌다. 배정받은 방은 외국인 요기들로 구성된 숙소였다. 이미 7~9명 정도의 한국 남자분들이 계셨다. 이렇게 이 한국 사람들과 크지는 않지만, 작은 그룹이 형성되었다. 한국 여성분들도 4~5분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상은 비교적 자율적인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특별히 감시하거나 시간을 지켜야 하는 부담감은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특정한 날이 되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한국어를 미얀마어로 통역해 주시는 분이 한국 수행자들과 명상 지도자 분과의 의사소통에 있어 가교역할을 하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