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명실공히 수행의 고장이다. 요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다. 명상 수행의 요람지이기도 하다. 또한, 수많은 성자들을 배출하고 아직까지도 수많은 수행자들이 수행을 하는 곳.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는 인도의 성자로 잘 알려진 님 카롤리 바바를 만나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 그러나,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하였고, 인도를 맨발로 방황했다고 한다. 영감이 필요했던 영국의 유명 밴드 비틀즈 역시 인도를 선택했다. <<사피엔스>>저서를 집필한 유발 하라리 또한 인도에 명상을 하러 종종 방문한다고 한다. 여행난이도가 높다고 정평이 나있지만 인도만큼 신비한 점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수행, 영성 등의 분야에 관심이 생겨 자연스레 미국에서 바로 인도로 오게 된 것 같다.
수행의 고장이라는 인도에서도 리시케시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마 아버지 같은 히말라야와 어머니 같은 강가 (강물)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리시케시 주변에서는 오직 채식만이 허용이 된다. 그리고 아쉬람과 요가를 배울 수 있는 장소가 즐비하다. 신성함이 물씬 풍기는 장소다.
인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가의 성지라 불리는 리시케시로 곧 향했다. 특별히 갈 장소는 정해두지 않았다.
리시케시에 도착할 때쯤, 차로 옆에 위치한 한 요가 아쉬람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그곳은 크리야 요가 아쉬람. 요가난다의 저서 <<어느 요기의 자서전>>을 통해 크리야 요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겼다. 갈 곳을 정하지 않았으므로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쉬람에 도착하니, 이미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영국인을 비롯, 러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동양인 같아 보이지만 코가 높고 날카로운 중앙 아시아인 청년, 나이는 지긋이 있어 보이는 수행자로 보이는 남성 등. 소정의 금액을 내고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저녁 종교 행사에 참여하였다. 신성하고 경건함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한 남성 수행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쩌렁쩌렁 함에 비범함이 드러났다. 그의 목소리가 돔 형태의 내부 아쉬람 사원에 울려 퍼졌다. 구루였다. 그와의 첫 대면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그가 무심코 했던 말이 각인이 된 것. 솔직히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속으로 새겨졌다. 그것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마음을 이미 모두 파악이라도 한 것 마냥 느껴졌다. 수행력이 높은 수행자는 사람의 마음도 읽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가 말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에고다.”
그 당시, 메모지로 열심히 기록하던 참이었다. 나중에 글을 모아서 책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마음을 알고 있던 것 마냥 그렇게 말을 하였던 것. 물론, 정확한 인과성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지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려는 것도 에고의 부산물. 그렇다 에고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떻게든 드러내려고 한다. 그것이 직업이든, 지위든, 부유함이든, 글이든 말이다. 수행력이 높은 수행자나 요기들과의 조우는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세속적인 삶. 생존에 중점을 둔 삶에서는 그러한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먹고 사느라 바쁘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에고가 필요하다.
그는 호흡에 대해서도 말했다. 호흡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고 하였다. 들숨. 날숨. 그리고 들숨과 날숨 사이의 틈..
아쉬람에 도착하자 며칠은 내리 뻗었다. 미국에서 인도까지의 고단한 여정이기도 했고 시차 적응 등 그동안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중에 갑자기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에 요가 아사나 자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강렬한 에너지에 의해서 그러한 행위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가늠해 본다.
결국, 크리야 아쉬람을 떠났다. 남쪽 케랄라의 요가지도자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예약을 하고, 곧 리시케시를 떠나게 되었다. 조금은 상업적인 느낌이 들던 리시케시를 통해 인도 역시 현대화는 불가피하다는 인상을 받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