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프만 (Goffman)의 프런트 스테이지 (무대)와 백 스테이지 (무대 뒤편). 연기자는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자신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곤 한다. 연기를 맡은 배역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대에선 자신의 생각, 감정, 본능, 가치 등을 포기하고 역할에 전념하게 된다. 하지만, 무대 뒤편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문제는, 무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무대 뒤에서 조차 그 역할을 이어 나가는 것.
빠하르간지. 뉴델리역으로 오가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잠시 머무는 장소다. 자연스럽게 여행객에게 필요한 호텔, 상점, 식당 등 없는 것이 없다. 편리했다. 한 곳에 필요한 것들이 종합적으로 모여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빠하르간지 외, 다른 곳은 가볼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용기가 없었다기보다는, 안락함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빠하르간지 일대를 누비던 중 길을 잃어버렸다. 복잡한 골목길을 헤매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인도의 골목길은 악명이 높다. 대부분의 일본 길거리처럼, 바둑판같이 남과 북으로 잘 정열 된 길은 인도에선 찾기 힘들다. 아마도, 인도의 골목길은 대부분 꼬불꼬불하게 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특히, 전설보다 오래되었다는 바라나시와 같은 곳은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지도가 없던 터라, 직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며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한번 들어왔으니 상황을 즐기자는 무데뽀 심보였을 것이다. ‘길 한번 잘못 든다고 뭐 크게 잘 못 되겠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서 걷고 걸었고, 결국 스스로 길을 잃어버리는데 일조하였다. 길을 찾기는커녕 길을 잃어버리는 것을 계속 방관했던 것.
그런데, 길을 잃어버리면 버릴수록, 중심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전개되어 갔다. 길을 잃어버릴수록, 오히려, 인도다운 모습으로 변해간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으나, 조금은 흥미로웠다.
‘잃어버릴수록 진짜가 나타나는가?’
‘여기가 진짜 인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집집마다, 신을 섬기는 작은 사원이 즐비했다. 관광객이나 상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이 지역 주민 같아 보였다. 인도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사는지 느낄 수 있었다. 중심가에서 먼 곳에 위치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인도 현지인들이 사는 곳인 듯해 보였다.
어찌 이렇게 가까운 두 곳에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일까?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안락함에 빠져, ‘진짜 인도’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인도의 진정한 무대 뒤편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은 잃어버려도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