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위빠사나 명상

by 강가

인도 보드가야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장소인 둥게스와리 석굴사원. 붓다가 깨달음을 얻으시기 전 6년간 고행을 한 장소라 한다. 한 인도 가이드에 따르면, 붓다는 석굴에서 달빛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고행을 포기하고 수자타가 건네준 죽을 마시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명상 후에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전해진다. 위빠사나 명상을 통해서 말이다. 붓다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많은 성인들을 배출시켰다고 전해지며, 약 2,600여 년의 전통으로 이어왔다고 한다. 그러니 명성이 자자할 수밖에. 인도에 수많은 성자들이 배출되었겠지만, 그중 가장 많은 성자를 배출해 온 성자라면 붓다가 꼽힐 것이다.


인도에는 위빠사나 명상 센터가 무수히 많다. 특히나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유명했던 <<사피엔스>> 의 저자 유발하라리는 위빠사나 명상 수행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 그의 스승인 고엔카에게 바친다고 명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그는 위빠사나 명상 수행 없이 그 책을 집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고엔카는 미얀마에서 태어났지만 인도계통이었다. 그는 두통의 치료를 위해 우연히 미얀마의 명상 센터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체험한 후, 위빠사나 명상을 널리 알리는 존경받고 유명한 명상 티쳐가 되었다. 고엔카 계열의 위빠사나 명상 센터만 인도에 100여 개가 넘었다. 사실 히말라야 근처와 같은 특별한 장소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체험하고 싶었으나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몇 달은 기다려야 참석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데에는 일절 참석 비용이 필요하지 않은 파격적인 조건도 한몫했을 것이다. 참석에 따르는 모든 비용은 자발적인 기부를 원칙으로 한다.


곧 고엔카 스타일의 위빠사나 명상 체험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비교적 자리에 여유가 있던 센터로 선택하였다. 라자스탄에 위치한 곳이었다. 라자스탄 하면 사막이 떠오른다. 인기가 없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곳까지 찾아가는 길이 녹록지 않았다. 접근성이 좋지 않았던 것. 또한, 한적한 곳에 텅 하니 놓여 있었다. 그래도 가까스로 찾아갈 수는 있었다.


도착하고 방을 배정받았다. 같은 방을 배정받은 한 친구가 며칠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프로그램을 포기한 것이다. 10일 코스였지만 어느새 명상 센터의 참여자들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갔다. 고엔카 위빠사나 명상 스타일을 흔히 스캐닝 방식이라 한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자유로운 흐름 (free flow)라 하지 않을까. 메모지에 적어둔 표현이었다.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에 도달하는 것이 순탄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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