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시작되다

by 강가

미국 유학 준비를 모두 마친 후 머리를 식히고자 떠난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복귀하였다. 서울 자취방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무엇인가 변화를 알리는 듯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차곡차곡 쌓이고 널브러진 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글을 적었다.


“무엇을 버린다는 건 쉽지 않다. 소중히 여기는 종류의 것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없어진다는 것에 무언가 손해를 입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소유에 대한 집착도 한몫을 한다. 때때로 이러한 것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조그마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미련이 생기고, 언젠가 다시 필요하겠지 라는 막연한 의식이 행동을 잠시 지배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타협이 쌓이고 쌓인 후엔, 널브러진 쓰레기처럼 그 속에 빠진 동전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잠시 동전을 찾는 사이, 의식은, 미련이 남는 물건에 또 손을 뻗친다. 혼란스럽고 분산된다. 잘 비우지 못하면 잘 채우지도 못할 것 같다. 욕심, 집착, 그리고 미련이 새로운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진하는 발목을 잡기도 한다. 매우 강렬하게. 그러므로, 명명백백하진 않더라도,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음에 공감한다. 그럼, 더 홀가분해짐을 느낄 것이다.”


쌓여 있던 불필요한 책들을 모조리 처리해 버렸다. 소심했던 성격을 고려하면, 아주 과감했던 결단이자 행위였다. 또한 마음 상태의 변화를 대변하는 일이기도 했다.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단순해지고 가벼워진 것. 나름 큰 변화였다.


사실 변화란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매 순간이 변화한다고 하지 않나.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몸도 매 순간 변화한다고 한다. 그 변화를 가시적으로 잘 인식하지 못할 뿐. 변화에도 규모가 있을 것이다. 미세한 변화, 작은 변화, 큰 변화, 거대한 변화. 작은 변화를 보통 효과라 부르고 큰 변화를 영향이라 하기도 한다. 분명 그 변화는 영향 이상이었다. 또한, 변화에는 방향도 다르다. 동일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변화 그리고 방향이 전환되는 변화이다. 이를 표현하여 180도 변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 변화는 또한 흘러가던 흐름에서 역행했던 아니 또 다른 흐름을 탔던 변화였음이 확실했다. 삶의 추구와 가치관이 크게 변했다.


변화의 일환으로 미국 유학을 포기하였다. 약 1년 동안 나름 힘들게 준비했던 미국유학을 포기한 것이다. 한 곳에서 입학 허가서가 나왔지만 포기하고 한국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입학 허가서가 나온 곳은 미국 공립대학교 순위 10위권 이내의 대학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시골 촌놈 공고 출신에 지방대생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자신으로서는 그 포기가 나름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명상 수행을 하기 전이었다면 말이다. 명상 후에 왜 그러한 과감한 결단을 내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직감에 의한 결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결정은 사실 신의 한수이기도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로 도시 생활을 청산했다. 2018년 4월 4일 4:44분, 방을 보러 가던 중이었다. 동시성. 그 시간대가 의식에 자리 잡혔다. 매우 미세한 타이밍에 말이다. 어떠한 계획이나 의도 없이 그냥 한 순간에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는데 정확히 4월 4일 4:44분이었다. 사실, 미얀마에서 명상수행 체험을 하기 전부터 숫자 4에 대한 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태국 치앙마이 한 한국인 여행자의 초대로 그의 방에 방문했는데, 방 번호가 404호였다. 당시에는 매우 흠칫했다. 숫자 4는 죽음을 의미하는 '죽을 사'자와 동일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관습에 의해 각인된 잘못된 반응이었다.


방을 보러 가던 2018년 4월 4일 4:44분 후, 그 방에 결국 2년여간 머물게 된다. 한적한 시골 그리고 산 중턱에 위치한 보금자리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채식을 하게 되었다. 채식을 하게 된 정확한 이유와 원인은 잘 모른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명상을 하고 난 후 채식을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력이 발동했을 것이다.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자신에게는 의외의 변화였다. 어머니도 종종 말씀하시곤 한다.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네가 어떻게 채식을 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한국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고 위빠사나 명상을 최대한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명상을 했다. 위빠사나 명상을 할 때면 생각이 명료해지고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다음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졌다. 잡음이 사라지니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명상은 정신적 활동을 주로 하는 대학원 생활에 매우 귀중한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머리가 복잡하고 스트레스로 가득 찰 때면 위빠사나 명상을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명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고요해지고 평안한 자신을 발견하였다. 복잡한 생각이 단순해졌다. 스티브 잡스와 유발 하라리가 왜 명상에 심취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단 10일의 명상 수행이었지만 인생에서 경험한 어떠한 변화보다도 그 폭이 너무나도 컸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에서 시작이 된다고 한다. 명상수행 관련 책에서 읽은 한 글귀에도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켜려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에서 온다고 하였다. 본인 스스로가 변화하면 다른 것도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본인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외부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 명상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이었다. 여기에서의 내면이란 외부활동과 몸의 작용을 최소화하고 호흡에 초점을 맞추며 정적으로 마음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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