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자유의지란 있을까? 이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이다. 자유의지란 자신의 행동과 의사결정을 본인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을 의미한다. 이 주제는 주요 철학 논쟁 중 하나라고 한다. 또한, 철학적인 관점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관점도 있다. 특정한 종교적인 측면에서, 자유의지란 신으로부터 주어진 하나의 산물과도 같을 것이다. 혹은, 이미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유의지란 다른 말로는, 삶이 이미 결정되어 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 (운명론)와도 연결이 되어있다.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도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좀 막막할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므로, 굳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동양철학자인 조용헌 칼럼니스트는 이를 9:1로 보았다. 삶의 9할 (90%)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1할은 자신의 의지로 개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1할을 매우 작은 수치로 보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매우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와도 같다고 본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파레토의 법칙 (Pareto principle)이라는 것도 있다. 이는, 8:2의 법칙이다. 8의 결과는 2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즉, 20%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는 매우 작은 수치 같지만 나머지 80%를 결정한 다는 것이다. 또한, 운칠기삼 (運七技三)도 있다. 운이 7이고 기가 3이라는 것이다. 정해진 운명이 70%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견 및 주장이 있다.
사람은 매우 복잡한 생물체이다. 몸도 있지만 마음의 작용도 있다. 지구상 다른 생명체와 비교하면 사람의 마음의 작용은 매우 다양하다. 단순히, 생각, 감정, 본능 등의 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3등분을 했을 뿐이지 이 각 영역에서 다양한 마음의 작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관점에서 자유의지에 대해 논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원자의 수준에서, 원자는 자유의지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원자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로 구성이 되어있다. 원자는 마음의 작용이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이를 단순히 표현을 하면 존재한다고 한다. 원자는 그저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다. 사물도 비슷하다. 가장 기본적이라고 여겨지는 4 원소 (지수화풍)의 경우 역할이 주어진다. 물의 역할이 있고, 불의 역할이 있다. 땅의 역할이 있고 바람의 역할이 있다.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간다. 물은 서로 응집하려는 작용이 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생명체에서부터 그 작용이 복잡해진다. 좀 더 세상에 존재하려는 작용이 복잡해진다. 생존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생존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마음적 작용이 나타나기 시작을 한다. 사람에서부터는 이미지의 상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사물을 기억하고 이를 언어화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관점에서 이러한 다양한 활동은 자유의지에 기반한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간다.
자유의지가 좀 더 관여되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영역이다. 즉, 먹고, 마시고, 숨 쉬고, 휴식을 취하고, 태양 에너지를 받는 등의 활동이다. 우리는 보통 무엇을 먹을지를 결정할 수 있다. 언제 먹을지도 결정할 수 있다. 완벽하게 통제는 불가능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생존과 관련된 과정에는 비교적 선택을 할 수 있다. 또한, 보통은 몸으로 움직이는 영역이 통제가 용이한 편이다. 자세를 바꾸기도 하고 어디를 가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비교적 쉽게 선택을 한다고 표현한다.
반면, 미세한 영역일수록 통제가 어려워진다. 몸에서도 미세한 영역은, 내부 장기의 작용이다. 무엇을 먹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먹은 음식을 소화하고 배출하는 것은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그것이 들어가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식도, 위장, 소장, 대장, 그리고 항문 등을 거쳐서 그 영양분이 쏙 바진 음식이 반드시 밖으로 배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이 소화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간접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직접적으로는 의문이다. 더 나아가, 본인의 몸의 구조인 장기, 세포, 분자, 및 원자 등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보통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몸의 다음은 마음이다. 마음은 몸 보다 더 미세한 영역이다. 즉, 이러한 통제는 내적인 영역으로 갈수록 어려워진다. 감정이나 본능 등의 작용은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잠재적인 의식 수준은 거의 통제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어느 순간에 특정한 감정의 상태가 올라오기도 한다. 이렇게 올라오는 잠재적 수준의 마음 작용은 본인의 의지로 통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아울러, 사람과의 관계가 통제가 힘들어지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를 다른 말로는 인연 (因緣)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느 순간에 보니 특정한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이 가족을 선택하였다고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태어나고 보니 특정한 가족과 연결이 된 것이다. 어떠한 인연은 노력하지 않아도 성사되고 어떠한 인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사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자유의지가 관여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