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종류의 클럽으로 샷을 구사한다. 각홀 티잉그라운드에서 긴 거리를 보내는 드라이버, 페어웨이에서 온 그린을 위해 주로 두 번째 사용하는 아이언, 세컨드 샷이 그린에 미치지 못했을 경우 온 그린을 위해 짧은 거리를 보내는 웨지, 그린에서 홀 인을 위해 스트로크 하는 퍼터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우드나 유틸리티 클럽을 쓰기도 하지만 주로 이 네 가지 클럽을 사용하여 경기를 한다.
필자가 골프를 치면서 느끼기에 골프클럽이 우리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버는 거리가 우선이라는 30대 혈기왕성함을 나타내고, 아이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중추적으로 올바르게 일하는 40대의 정확성을, 경륜 있는 삶으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정교함이 필요한 50대는 웨지를 가지고 어프로치에 집중하고, 사회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나이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마지막 기회를 가진 60대는 퍼터를 잘해야 된다고 본다.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으로 공자 어록 중 논어 위정 편 4장에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이라는 말이 있다(성균관 명륜당 2008.10.30.). 이를 보면 나이대별 골프클럽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과 같이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이립, 서른 살에 학문이 성립되었고(三十而立), 이는 드라이버로 골프 스윙의 기본을 확립(立)하였고,
불혹, 마흔 살에 의혹이 없었고(四十而不惑), 이는 ‘너의 아이언을 믿어라’라는 광고 문구와 같이 아이언 별로 거리에 의혹(惑)이 없었으며,
지천명,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五十而知天命), 이는 어프로치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하늘(天)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이순, 예순 살에 한번 들으면 사리를 알았다(六十而耳順). 이는 헤드업 방지를 위해 퍼팅의 결과는 귀(耳)로 들으라는 순리를 알았다.
■ 드라이버 샷은 30대를 의미
인생에 있어서 30대는 정말 청춘이다. 청춘은 낙관론으로 무장하고(페어웨이 중앙에 공이 떨어질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며(오비나 해저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한계에 도전(오직 장타가 나의 목표이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마추어 골퍼의 로망roman은 드라이버로 장타를 날리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동의할 것이다. 사실 드라이버 거리가 멀리 나가면 두 번째 샷 거리가 짧게 남아서 파 온에 상당히 유리한 경우가 많다. 장타를 치는 사람들은 두 번째 샷을 핀 가까이에 붙여서 버디를 할 확률이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물이나 사람 혹은 정보를 지각하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부분만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지각을 하는 것을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 한다. 회사에서 여러 부서가 함께 회의를 하면 각부서장은 자기가 맡은 부분이 중요하다고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는 유치원 급식 개선 뉴스보다 대학 입시전형방법 변경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30대는 아무래도 처음 골프를 시작하거나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골프 경력이 다른 나이대보다 적다 보니 드라이버에 가장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지각이 드라이버 샷과 관련된 정보가 집중적으로 인식되는 선택적 지각을 하게 된다. 어떤 드라이버 제품이 탄성이 좋은지, 장타 치는 비법이 무엇인지. 누가 얼마를 보낸다는 등에 관심이 집중된다.
아르코스 골프Arccos Golf는 2020년 2월 발간된 거리 보고서에서 2019년 연령별 아마추어 골퍼들의 2천6백만 샷의 평균 드라이버 거리가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물론 캐리carry 거리가 아니라 굴러 간roll-out 거리를 합산한 것이다(www.golfwrx.com 2020.10.16.). 10-19세: 234.2 yards/ 20-29세: 239.7 yards/ 30-39세: 233.7 yards/ 40-49세: 225.9 yards/ 50-59세: 215.4 yards/ 60-69세: 204.5 yards/ 70세 이상:190.4 yards(1 yard=0.9144m로 10야드는 약 9미터임).
이 자료에 근거하여 보면 국가별 인종별 체격 차이는 있겠으나 드라이버 거리가 30~40대는 200미터를 약간 넘고, 60대를 넘어서면 180미터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 대비 간혹 장타를 치는 상대를 만날 경우에도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2021년 3월 20일 애딘버러CC, 파 5에서 필자가 친 티샷이 도로 바운스와 내리막 행운을 타고 345미터를 나가 그린까지 125미터 남았다는 깃대 옆에 떨어짐
■ 아이언 샷은 40대를 의미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 김난도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10대 자녀와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10대teenage 같은 X세대를 엑스틴X-teen이라고 한다. 40대 엑스틴의 중심 세대인 1975년생의 경우 조직의 중간관리자로 5060 세대와 2030 세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엑스틴은 386세대로 구성된 위 세대와 조직에 유입되고 있는 새로운 세대에 끼여 있다는 의미에서 ‘낀 세대’ 혹은 ‘식빵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조직은 이들에게 감독을 맡으면서 선수로 뛰라는 '플레잉코치playing coach'가 되길 요구하고, 아래 세대는 이들을 ‘꼰대’ 취급을 한다. 국내 한 광고대행사의 조사에 의하면 ‘꼰대’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해 보는 연령은 50대가 아니라 40대라고 한다(김난도 외 9인, 트렌드코리아2022, 미래의 창 2021, pp.304-322.).
40대는 골프로 따지면 티잉그라운드와 그린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인 세컨드 샷을 해야 하는 '낀 세대' 처지이다. 세컨드샷은 정확성을 요구한다. 이 샷이 정확하지 못하면 드라이버 잘 친 30대에게 미안하고, 다음 샷이나 퍼팅을 대기하고 있는 5~60대에게 불필요한 수고를 하도록 해야 한다.
아이언으로 친 모든 세컨드 샷이 반드시 파 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궁에서도 모든 화살이 과녁 중앙의 10점 골드에 명중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잘못 쏜 7~8점의 화살에 신경 쓰지 말고 다음 쏠 화살에 집중해야 한다. 이와 같이 아이언 세컨드 샷이 결과적으로 미스가 나더라도 그 실패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한 번 잘못한 세컨드 샷이 18홀 전체의 실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수로 파 온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어도 40대는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투자분야 은어)’해야 한다. 존버 후 어프로치를 잘하면 다시 만회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 어프로치 샷은 50대를 의미
어프로치 샷은 ‘어!프로도 치기 어려운 샷’을 줄여서 하는 말이라고 나는 늘 이야기한다. 그린 주변은 방카나 해저드가 있을 확률이 많고 역결 잔디나 잔디가 제대로 자라지 않은 맨땅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공이 위치하기 쉬워 샷이 여간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보통 30~50미터 이내의 짧은 거리의 샷이지만 어려운 샷이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작은 동작의 샷이라고 순간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공 머리를 치는 토핑topping이나 볼 뒤 지면을 치는 더프duff가 일어난다. 심지어는 볼이 클럽에 비껴 맞는 생크shank도 발생할 수 있다.
보통 세 번째 치는 어프로치 샷은 젊은 사람의 힘보다는 50대의 경륜으로 조절해가며 잘 쳐야 한다. 남아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18홀 중에 가장 많이 구성되어 있는 파 4홀 기준으로 생각을 해보면 티샷과 세컨드 샷은 머리 쓸 일이 거의 없이 마음을 비우고 무심타를 날리면 된다.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 샷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머리를 비우고 채에 몸을 맡겨라’는 식의 코치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프로치 샷은 이와는 다르다. 투 온을 한다면 퍼터로서 마무리를 하지만, 투 온을 하지 못하면 세 번째 기회의 어프로치 샷에서 스코어가 결정 나기 시작한다. 세 번째 샷에서 실패를 하면 보기 혹은 더블보기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이자 저명한 언론인인 조너선 라우시Jonathan Rauch는 그의 저서 The Happiness Curve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Jonathan Rauch,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부키 2021).
“행복지수를 그래프로 그리면 10·20대에 행복했다가 40~50대에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간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 분석을 보면 놀랍게도 인생 만족도가 40대에 최저점에 도달했다가 나이 들수록, 특히 50 이후부터 반등하는 U자 모양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심리학·경제학·뇌과학을 아우르며 생애 연구와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행복 곡선은 알파벳 ‘U’ 형태라고 주장한다. 행복의 핵심 변수 중 하나가 ‘나이 듦’이며 중년을 견디고 나면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50대에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을 추구해야 할 시기인데 한 번의 실수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 아닌가? 50대는 잃을 것이 많은 나이여서 어프로치 샷을 실수하면 더욱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정교한 어프로치 샷 하나로 잘못 친 세컨드 샷을 잊고 그린 위에서 행복한 결말이 그려지기를 희망한다.
■ 퍼팅은 60대를 의미
퍼팅의 성공 여부는 홀컵에 볼이 들어가는 소리를 귀로 듣고 확인해야 헤드업을 방지하여 볼의 직진성을 유지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말은 아끼고 귀를 열어야 한다는 일반적 사실에서 퍼팅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갈수록 실수를 하게 되면 패자부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30살(드라이버 샷)에는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3번(아이언 샷, 어프로치 샷, 퍼팅) 있다. 40살(아이언 샷)에는 2번 정도 회생의 기회(어프로치 샷, 퍼팅)가 있다. 50살에는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재기의 발판(어프로치 샷)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60이 되면 인생에서 실패할 경우 새로운 기회가 부여되기는 어렵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미지가 크고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회복하기가 어려워지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운영을 할 필요가 있다. 퍼팅은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윤리와 상충되는 언행을 하게 되면 이를 만회할 시간이 없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잘 알던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고 기억되면서 서서히 세상에서 잊혀버리고 마는 원인이 된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신분석가로 활동을 한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연령대별 8단계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이론에서 65세 이상의 연령층은 마지막 8단계 노년기로 ‘자아통합감 대 절망감ego integrity vs despair’의 시기로 명명하고 있다. 노년기는 인생을 정리하고 돌아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음미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 단계를 잘 넘긴 사람은 삶의 통찰과 지혜wisdom를 얻는다. 자아통합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수용하지 못하고 절망감에 빠진다. 간혹 자녀와의 관계에서 회복할 수 없는 골이 있을 때 절망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자아통합이 가능하다.(한경혜, 서울대 인생대학 ‘세월과 마음’ 강연 내용 2017.10.23.).
건강해야 골프도 칠 수 있고 골프를 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대한노인회 발표에 의하면 노인들에게 적합한 체육활동의 특성을 "고령에 적합한 유산소 운동, 느리고 부드럽고 안전한 운동,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여유 있는 운동, 인간관계를 넓혀주는 사교적인 운동"이라고 정의한다(레저신문 2017.9.13.). 이 정의에 적합한 운동이 바로 골프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자료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혹자는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라고 하나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본헤럴드 2017.11.16.). 그러나 노년의 삶에서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내용이라 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운전수를 고용하여 우리 차를 운전하게 할 수도 있고, 직원을 고용하여 우릴 위해 돈을 벌게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병을 대신 앓도록 시킬 수는 없다You can employ someone to drive the car for you, make money for you but you cannot have someone to bear the sickness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