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독후감

후안 바스케스의 장편 소설

by 신현호

개요

세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현대 문학의 커다란 축을 이루는 남미 문학에 흥미를 느끼는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 나 또한 남미 소설을 입문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대뜸 마르케스의 소설을 집어들고 남미라는 문학 세계에 입문한 독자 중 하나이다.


나는 다소 묵직해 보이는 <백년의 고독> 대신, 마르케스의 비교적 가벼운 소설이라는 평을 받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으로 남미 소설에 입문했다. 인생과 노화, 그리고 맹렬한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다루는 이 소설은 그간 19세기의 리얼리즘과 고전 소설의 화법에만 익숙했던 내게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당시 내가 남미 소설을 처음 접하고 느낀 감정은 '소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였다.


이렇게 남미라는 배경에 큰 관심을 품게 된 나는 남미를 대표하는 걸작들인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의지와 운명> 등의 장편소설을 탐독하면서 더더욱 남미의 혼란스럽고 순수한 세계관에 빠져들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20대 초반을 대표하는 내 문학적 기호가 러시아 문학의 리얼리즘이었다면, 20대 후반의 기호는 1970년대 '붐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남미 문학와 현대 문학으로 대표되는 것 같다.


굵직한 장편소설들을 파죽지세로 독해한 이래로 내게는 '문학을 위한 문학'을 추구하는 남미 소설 계보인 보르헤스와 볼라뇨의 문학 세계로 진출하고 싶다는 야욕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아직 모더니즘 입문자 수준인 내게 메세지 전달의 수단이 아닌 문학을 위한 문학을 쓰는 작가들의 문장은 치밀했다. 내 탐구욕은 아쉽게도 열정에 비해 문학 자체에 대한 숙련도가 부족한 관계로 저지되고 말았다.


진출 실패에 따라, 일단 지금의 나에게는 독해할 수 있는 작품들을 읽으며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 남았다. 메세지를 넘어서는 작품들을 천천히 이해하자는 것을 나는 지침으로 삼고, 다시금 남미와 3세계 각국의 정체성을 찾는 소설들을 찾아다녔다. 일단 할 수 있는 모더니즘의 독해부터 더 잘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야만 앞으로 난해하면서도 아름다운 현대 문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숙고하다 내가 찾은 책이 오늘 소개할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이었다. 사실, 후안 바스케스가 어떤 작가인지 나는 알지 못했고, 믿음직스러운 남미 문학의 번역자인 송병선 교수님의 이름 하나만 믿고 이 소설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마주한 <추락하는 모든 것의 소음>은, 남미의 환상성인 열정과 정복욕을 걷어낸 역사의 맨 얼굴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니, 마침 내게 한 가지 알지 못했던 중요한 맥락을 가르쳐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간 몰랐던 작가인 후안 바스케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배경 해설, 남미의 두 얼굴

브라질의 대표적인 축제인 리우 카니발과 멕시코의 불안한 치안을 풍자하는 인터넷 밈

오늘날 독자들에게 남미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브라질의 환상적인 삼바 축제와 화려한 축구 솜씨로 대표되는 남미의 열정을 떠올리기 좋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고전적인 시선으로, 21세기 들어 외신이 남미의 어둠인 불안정한 치안과 정치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도 남미의 정치적 취약성인 반정부 게릴라, 마약 카르텔 따위가 판치는 현실이 보도되었고, 남미의 무질서한 열정이 단순히 긍정적인 방면에서만 발산되지 않는 정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선이 과장되어, 오늘날 각 커뮤니티의 네티즌은 마약 카르텔이 존재하는 멕시코를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간주한다던지, 정부보다 강력한 갱단이 남미를 지배한다고 착각하며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중앙 정부가 힘을 잃은 남미 국가는 현재의 아이티 공화국, 그리고 90년대의 메데인 카르텔이 권력을 잠식했던 콜롬비아 정도가 전부이다.


하지만, 남미 국가가 어째서 현대에 이토록 혼란스러운가를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늘날 남미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페인 제국의 속령이라는 시작과 미국의 패권 행사, 그리고 지리적 한계라는 세 가지 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남미는 이러한 삼중고에 짓눌려 쇠퇴하는 세계라는 점을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좌측부터 아즈텍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 그리고 근대 스페인 제국령 각 식민지를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 이들 없이 남미를 설명할 수 없다

본격적으로 남미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앞서, 오늘날의 남미 각국의 국민들은 잉카, 마야, 아즈텍 등의 고유한 정체성보다 스페인의 후예라는 근대적인 성격을 긍정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 스페인식 질서란 백인 우월 주의, 이교도를 향한 카톨릭 성전인 콩키스타도르, 즉, 폭력적인 개척자 정신을 근간에 둔 결과이다.


근대에 시몬 볼리바르 장군이 나폴레옹 전쟁에 정신이 팔린 스페인 제국의 속령들을 해방시켰다. 볼리바르 장군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콜롬비아 중심의 남미연방 국가를 꿈꾸었으나, 실패하여 남미 각국은 자기만의 길을 걸을 자유를 얻었다.


해방된 남미 각국은 스스로를 유럽인으로 간주하고, 지형적 한계가 뚜렷한 남미라는 땅에서 스페인식 유럽 국가를 건설하라는 이상과 현실이 유리된 상황을 직면했다. 아무리 혼혈과 종교로 단합했더라도, 잔존 원주민, 유색인종을 향한 인종차별과 남아메리카라는 불친절한 영토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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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 미국은 먼로 독트린으로 구 대륙 세력의 간섭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립주의는 20세기에 들어 미국의 중남미 예속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북아메리카에서 1830년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선언하여 '아메리카의 일은 아메리카에서 끝낸다.'고 발언했다. 먼로 독트린은19세기 당시, 신생국의 패기있는 포고 정도로 유럽 세계에 받아들여졌으나, 훗날 세계 대전을 미국이 승리로 이끌고 냉전 시대부터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자, 그 뜻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먼로 독트린은 건국 이념인 고립주의와 반대의 결과인 라틴 아메리카를 향한 적극적인 내정 간섭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전부터 미국은 팽창 시기에 멕시코를 공격해 텍사스 주를 비롯한 넓은 영토를 강탈하거나 파나마를 침공하는 둥, 적극적으로 주변국을 압박했다.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은 반공을 명분으로 카리브 국가들에 미군정을 세우거나, 쿠바의 공산화에 핵전쟁까지 고려하는 둥, 더욱 적극적이고 위협적인 패권 경쟁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어두운 전통은 전이 종식된 오늘날에도 진행중으로, 26년 1월 4일 벌어진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 사건 또한 이러한 거대한 흐름 중 하나이다.


이처럼 미국은 현대에 이념과 상관 없이 반미 정권을 무력으로 해체했다. 오늘날 미국은 반공이란 이념을 잃었으나, 치안 안정을 위한 인도적 개입 내지는 마약을 문제삼아 남아메리카에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아래에 깔린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반미 정서를 짓누르기 위해 외교나 경제재제같은 정교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군사력으로 정권을 뒤집는 것이 가까운 만큼 싸고 쉬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남미 각국은 현대에 들어서 스페인식 전통적 질서를 잃고 친미가 아니면 정권 붕괴라는 현실에 충돌했다.










이러한 현실이 찾아오면서, 오늘 소개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콜롬비아가 또한 전형적인 남미 국가의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콜롬비아는, 거대한 역사적 추락이 초래한 혼란기의 끝자락이라고 볼 수 있다.


좌측은 콜롬비아의 과열된 좌우 대립으로 암살당한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 자유당수, 우측은 콜롬비아의 전역을 주름잡은 메데인 카르텔의 마약왕 에스코바르 파블로.

시몬 볼리바르 장군의 활약으로 탄생한 콜롬비아는 독립의 기쁨도 잠시, 극단적인 정치 대립과 지형적 한계라는 악재를 극복해야만 하는 숙제를 마주했다. 그러나, 독립 전쟁으로 태어난 콜롬비아의 정치 담론은 점차 과열되어만 갔다.


폭력이 일상화된 정치는 결국 1948년 '라 비올렌시아(La Violencia)'로 이어져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 자당대표가 암살당하는 사태에 이른다. 이에 따라 자유당과 보수당의 갈등은 더 이상 담론이 아니라 내전이라는 공식적인 폭력으로 귀결되고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분란은 결국 콜롬비아 정부 자체의 기반을 악화시켰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80년대 부터 약화된 정부 대신 마약 카르텔이 종잡을 수 없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 미국의 히피 문화와 마약의 일상화라는 시대를 틈탄 메데인 카르텔의 급성장은 콜롬비아 정부의 질서를 마비시키고 일부를 대체할 지경이었다. 절정에 이른 권력을 휘두르는 메데인 카르텔은 대낮에 정부 고관들을 암살하고 정적 제거를 위해 민간인이 탄 비행기를 폭파하는 둥, 마약 유통 사업을 통해 국가의 부와 치안을 좌지우지했다.


90년대부터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에 힘입어 메데인 카르텔을 해체하고, 이어서 마약 산업을 인계받은 칼리 카르텔마저 제압하여 어느 정도 질서를 복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콜롬비아가 겪은 역사적 상처는 거대했고, 오늘날까지도 활동하는 오지 게릴라와 카르텔 잔당은 콜롬비아의 오랜 궤양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콜롬비아의 위험천만했던 현대를 둘러보고 나면, 한편으로는 세계 최악의 위험 국가에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호기심 아닌 호기심이 든다. 작가는 이러한 질문에 현실과 정치에 무관심한 콜롬비아 소시민들을 내세운다.


줄거리

마약왕의 죽음에도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총격과 소란이 벌어지는 90년대 콜롬비아, 최연소 법학교수 안토니오는 불안정한 현실에 무관심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교수인 그에게 콜롬비아의 치안 불안정은 밤에나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그는 애인 아우라와의 사랑과 당구 게임으로 일상을 보낸다.


당구장에서 만난 게임 친구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어울리는 안토니오는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친구와 조심스러운 우정을 쌓아간다.


리카르도가 개인적인 사건으로 상처를 입는 동안, 안토니오에게는 애인 아우라가 임신하여, 행복한 미래를 그리느라 바빴다. 친구라곤 어색한 안토니오밖에 없는 리카르도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했고, 안토니오는 미루고 미룬 끝에 요사이 친구가 우울했던 이유를 듣게 된다. 이유는 그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그의 장구한 사연을 캐묻기도 전에 갑작스레 오토바이를 타고 튀어나온 괴한들에게 총격을 당한다.


감상문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콜롬비아라는 국가의 균열이 개인을 잠식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은 시대적인 제약인 치안 불안정과 마약이라는 세계의 흐름에 의해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없다.


이야기 속에서 총격으로 인해 순진한 삶을 살던 과거를 재현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한 안토니오는 대신 자신이 총격을 입어야 하는 이유에 추적을 시작한다. 추적의 목적은 당연히 총격의 원인이 된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어떤 인간이었는가?' 였다.


리카르도 라베르데는 콜롬비아의 옛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명예로운 전투기 조종사의 손자로 태어났다. 그는 혈통에 따라 비행기를 조종하는 현대의 영웅으로 살아가길 소망했다.


이야기에서 콜롬비아의 거대한 추락은 각종 추락 사고로 암시된다. 이는 독립과 권력이라는 원시적인 꿈을 추구하던 콜롬비아가 완전히 달라진 사건으로 묘사되는데, 작가는 콜롬비아 내전을 직접 조명하는 대신 내전의 전조였던 에어 퍼레이드 추락 사건을 조명한다. 이 때부터 이미 추락하던 콜롬비아는 첫 번째 충돌에 부딪혔다. 그리고, 이야기에서 먼저 등장한 두 번째 추락은 바로 리카르도의 끈질긴 사랑을 끊어버린 비행기 충돌 사건이다. 이는 시대의 추락과 개인의 추락을 병렬로 대비시킨다.


또한, 현대 콜롬비아라는 오염된 토대는 현실을 고쳐보려는 미국인 자원봉사자들마저 왜곡시킨다. 리카르도 이야기의 절반을 차지하는 또 다른 주인공 일레인은 콜롬비아라는 추락하는 세상의 현실을 모른 채 인류를 향한 봉사를 쫓아 출국했다. 일레인은 봉사 과정에서 리카르도와 친분을 쌓고, 결혼과 독립이라는 어른의 삶을 천천히 쌓아간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의 사랑의 배후에는 마약 사업이라는 거대한 위협이 존재했다.


리카르도는 생계를 위해 할아버지처럼 명예로운 군대에 입대하는 대신, 마약 산업을 견인하는 데 부역해야만 했다. 당시 정상적인 국민들이 가난한 정부의 정상적인 일자리에서 일하는 것보다 마약 카르텔에 동조하는 편이 더 안정된 수입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리카르도는 아내에게 자신이 밀수범이라는 사실, 즉, 역사의 오염이 닿지 않도록 분투하나 결국 불시 검문에 사로잡히면서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이러한 진실은 엘레나(일레인의 스페인어 이름)에게 거대한 배신으로 다가온다. 이미 딸아이 마야의 존재로 콜롬비아에 발이 묶인 엘레나는 같은 미국 자원봉사자들이 돈을 쫓아 마약 밀매에 일조했다는 현실을 깨닫고, 거대한 증오만을 느낀다. 그녀와 함께 콜롬비아에 자리잡은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마약 산업에 일조하다 암살자들에게 하나씩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더러운 현실에, 일레인은 시대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딸아이를 키우는 데에만 집중한다.


리카르도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는, 콜롬비아의 현실이 각 인물의 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는 지 보여준다. 나는 한편으로 주제의식인 인간의 본성이 시대에 의해 제약된다는 지적에 매료되었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대라는 배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배경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운명과 사랑마저 결정된다면,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과연 존재하는가? 나는 이 지점에서 작가가 어떠한 해답을 내놓을 지 궁금했다.


작가는 해답 대신, 이제 제한된 선택만이 있다는 지점을 조명한다.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친교를 쌓으며, 직업을 고르는 것 모두 배경이 제약하는 한계 속에서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변하는 역동적인 배경 아래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지점에서 나는 작가가 그린 안토니오의 두 갈래로 찢어진 사랑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토니오는 분명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아우라와의 사랑을 선택한 교수로 남을 수 없다. 총격이 낳은 안토니오는 추적을 통해 리카르도의 딸 마야를 만났고, 추적의 종작지인 그녀와 분명한 사랑을 나누었다. 즉, 시대는 모든 선택을 찢어발기는 동시에, 그 자체로 새로운 관계와 운명을 조성한다.


안토니오는 그간 시대의 오염에 떠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가 될 수 있었을 뿐이다. 시대의 파도에 따라 그는 친구의 딸과 사랑을 나누었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각자의 사연, 시대가 강요한 상실을 채우기 위한 사랑을 작가가 어느 정도 조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야와 이제 같은 상처인 근본 혹은 정체성의 상실을 겪은 두 사람은 짧은 사랑으로 연대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불륜의 정당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콜롬비아가 처한 운명을 보여준다. 오늘날 카르텔 전쟁은 끝이 났다. 이는 마야와의 마지막 데이트인 폐쇄된 나폴시스 공원의 동물원 관람으로 암시된다.


그렇다면, 과연 안토니오와 콜롬비아는 이제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할까? 콜롬비아는 과거의 건국 이념으로부터 격리되었고, 이젠 마약 전쟁이라는 폭풍이 지나간 땅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멀어져버린 본질적인 정체성을 재건하는 것도, 상처를 추적하고 골몰하는 삶을 살아도 좋다. 오직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결론을 암시하는 작가의 묘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추적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안토니오의 집에 아우라가 외도를 눈치채고 떠났다는 결말이 나타난다. 이에 안토니오는 시대가 낳은 두 가지의 사랑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는 대신 고민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는 현대 콜롬비아가 서 있는 분기점을 정확히 견지하는 결말이다.


어쩌면, 안토니오는 아우라를 쫓아 모든 것을 해명하고 재건된 자신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상처의 종착역인 마야를 다시 쫓지는 않으리라. 나는 이 열린 결말에 흡족하며 책을 덮었다. 이러한 유예 상태를 이어나갈지, 과거를 쫓을 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저 주어진 본성을 덜 왜곡시킬 배경을 고를 뿐이다. 이젠 그런 선택이 조금이나마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배신이 판치는 시대에 상실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미스테리 소설이면서도, 묵직한 질문과 연약한 연대라는 결론을 논하는 알찬 작품이었다.



줄거리 - 3.7 : 미스테리 기법을 활용해 전개되는 스토리라인, 각자의 사연과 절제된 서술이 흥미롭다.

배경묘사 - 3.4 : 구체적인 배경 묘사에 천착하기보단, 당대 콜롬비아 국민들의 무관심한 성격과 낮과 밤으로 분리된 세상을 집중해서 묘사했다. 열정적인 리카르도와 엘레나의 사랑 같은 대목들의 조명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심리 묘사 - 3.4 : 외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안토니오, 인생의 사랑을 추적하길 포기하지 않는 리카르도와 대비되는 역사에 오염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무신경함의 대비의 인상이 강렬했다.

주제 의식 - 4.4 : '환경의 제약 앞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왜곡될 수 있는가?' 라는 무서운 질문에 응답하는 조심스러운 연대 의식의 묘사가 감동적이었다. 또한, 현대 콜롬비아의 문명사를 진단하는 거장의 날카로운 지성이 엿보인다.


사실, 요사이 독서 권태기에 들어, 이 독후감을 완성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다. 내 독후감을 꾸준히 찾아주는 독자들에게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6년에는 침체된 독서 활동을 조금씩 견인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다음에 남미 문학을 읽는다면, 다시 정해진 루틴에 따라 작년에 작고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을 읽거나, 아니면 남미의 진솔함을 토로하는 문학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여러모로, 이번에 읽은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남미 소설 중에서 주제의식으로는 제일 울림이 깊은 소설이었다. 올해에도 이렇게 흥미로운 작가를 여럿 발굴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