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장편 소설
개요, 우즈벡의 국내 인식
독자 여러분은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우즈벡 하면 막연히 '미인이 많은 나라' 내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오는 나라' 정도로 기억할 것이다.
그나마 원나라라는 인연이 있는 몽골도 아니고, 우즈벡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멀게 느껴지는 나라다. 이는 우즈벡이 속해있는 중앙아시아 문화권이 소련에 편입되어 냉전 체제를 유지하다 90년대에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술한 이유 때문에 우즈벡은 더더욱 익숙지 않은 나라로 다가온다.
나로써는, 우즈벡을 음식으로 처음 접한 것이 자랑 아닌 자랑이다. 외국 음식을 먹는 취미를 조금씩 발전시키다 알게 된 우즈벡 요리집 <사마르칸트>에서 샤슐릭과 플로프(원어를 살려 쁠롭이라고도 한다)을 처음 먹어보았다.
우즈벡의 요리는 기름진 만큼이나 맛있었기에, 나는 아직도 종종 우즈벡 요리집에 가서 플로프를 한 그릇씩 먹어치우곤 한다. 매번 <사마르칸트>에 갈때마다 다음엔 라그만(우즈벡식 국수 요리)을 먹어봐야지, 만티(만두)를 먹어봐야지, 전통 빵을 먹어봐야지 하면서도 정작 그리웠던 플로프와 샤슐릭을 먹고 나면 뱃속에 여유가 없어서 아쉽게 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우즈벡은 나에게 '음식이 맛있는 나라'로 추억되었는데, 문학 세계에서는 아쉽게도 접근할 수 없는 나라로 남았다.
왜냐하면, 국내에 번역된 우즈벡 소설은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는 아니여도 모든 문화권의 문학을 한 번씩은 접해보려던 나의 꿈은 아쉽게도 접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머지 국내에 번역된 중앙아시아 소설인 몽골의 <예리옌>도, 카자흐스탄의 <백년보다 긴 하루>도 딱히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계 문학을 정복한다는 나의 원대한(?) 꿈은 접은 채 한참을 지내는데, 계명대 출판부에서 우즈벡 소설, <아팠던 시간들>이 원전 발간됐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대학 출판부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도서관에 주문하진 못할 거 같고, 한 권 가지고 있어도 아쉬울 건 없을 것 같아 바로 <아팠던 시간들>을 구매했다.
책의 비주얼은 일단 돈이 아깝지 않았다. 첫 장을 펼쳤을 때부터 우즈벡 대사관에서 쓴 편지가 동봉돼 있는 점도, 섬세한 삽화가 적절한 구간에 등장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아직 1쇄본이라 그런지 오탈자나 삽화 인쇄 오류가 없진 않았다. 그와 별개로, 이야기 자체는 우즈벡 최초의 근대 문학으로서 얼마든지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출발점이었다.
작품의 배경과 소개
우즈벡의 인문 환경을 논해야 이야기의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우즈벡의 형성으로 일컬어지는 티무르 제국 시대부터 설명하겠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분할 이후, 차가타이 칸국 또한 분열과 쇠퇴에 시달렸다. 이러한 난세에 등장한 이가 튀르크인의 혈통과 징기스칸의 가계를 이은 명장 티무르로, 파죽지세로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를 정복한다.
이 당시 티무르의 정복 활동은 몽골 제국의 재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잔혹하고 막을 수 없었기에, 당대 이름을 날리던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 북부의 각국은 피바람에 쓸려나갔다.
정복 군주 티무르는 거대한 영토를 정복했고, 몽골 제국의 온전한 재현을 위해 명나라 원정을 준비한다. 그러나, 원정길에 사망하여 동방 원정의 뜻은 달성하지 못한다.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인도, 페르시아, 아나톨리아에서 노획한 막대한 부와 문화유산으로 부흥했으며, 티무르 사후에도 그의 제국은 약 1세기간 존속한다.
이어서 분열과 쇠퇴에 시달리는 티무르 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은 것은 우즈베크족으로, 샤이바니 칸이 이끄는 우즈베크인들은 티무르 제국을 정복하여 제국의 심장부를 손에 얻는다. 그리고, 사마르칸트에서 쫓겨난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는 인도 북부로 내려가 무굴 제국을 설립한다. 그가 세운 무굴 제국은 인도 아대륙의 패자로 수 세기간 군림했다.
한편, 제국 정복 이후 부하라, 코칸트, 하바로 분열된 우즈베크인들은 티무르가 남긴 유산과 광활한 농토,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한 중계 무역으로 번성한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바닷길을 중시하는 대항해시대에 이르렀기에, 그간 동서 교역의 요충지였던 실크로드의 무역 사업은 이전만한 흑자를 내놓지 못해 중앙아시아 각국은 점차 내리막길을 걷는다.
무엇보다, 근대화된 러시아 제국은 쇠퇴하는 이웃인 중앙아시아 세계를 호시탐탐 노렸다. 러시아 제국은 우즈벡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각국을 점령했으며, 러시아 제국을 대체한 소련 또한 제국의 영토인 중앙아시아 일대를 자연스레 인수했다. 비서구 문화권의 역사적 절차에 따라, 러시아 제국에게 근대를 맞이한 중앙아시아 세계는 소련이 붕괴하는 90년대까지, 총 1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러시아의 탄압과 고난을 공유한다.
압둘라 코디리가 <아팠던 시간들>을 집필한 시대는 1920년대로, 문화적 통제가 완화된 피지배 민족들의 문화 부흥 시기와 겹친다. 당시 우즈베크를 비롯한 소련의 연방 공화국 민족들은 자신의 역사와 민족성을 근대적으로 재정립하려 했다.
<아팠던 시간들> 또한 우즈베크의 역사를 근대적으로 창조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이후, 소련의 중앙집권화를 단행하는 스탈린이 집권하고 중앙아시아 민족의 문화와 학자들을 탄압하면서, 압둘라 코디리 또한 민족주의적 선동을 빌미로 소련 당국에 의해 처형되었다. 하지만, 그가 확립한 우즈베크 근대 문학과 정체성이라는 막대한 유산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팠던 시간들>은 쇠퇴 중인 코칸트 칸국을 배경으로 삼는다. 당시 코칸트는 쇠퇴 중인 여느 전근대 국가답게, 밍보시(작중에선 대감으로 번역한다)가 허수아비 칸과 유목인 친위대를 앞세워 폭정을 저지르고, 이에 총독이 반발하여 수도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둥, 기강이 무너진 모습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침략을 목전에 둔 쇠퇴의 시대에서 <아팠던 시간들>은 젊고 아름다운 연인, 오타벡과 쿠무쉬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다.
줄거리
모두에게 일등 신랑감으로 손꼽히는 젊은이 오타벡은 혈통도, 외모도, 수완도 출중한 사내이지만, 어느 정원의 실개천에서 만난 여인을 향한 상사병으로 고통을 숨긴다. 그러나, 당시는 부모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미덕이었고, 자기 의지대로 결혼할 수 있는 시대에 벡은 한숨만 내쉰다.
이를 딱하게 여긴 늙은 하인 하산 알리는 아들같은 도련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직접 소문의 주인공인 쿠무쉬 일가를 찾아 혼사를 진행한다. 벡의 신분과 명성이 드높았기에, 혼사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나, 남편이 누군지도 모르고 결혼해야할 여주인공 쿠무쉬는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시대에 울기만 한다. 쿠무쉬 또한 실개천에서 마주친 사내에게 반했으나,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신랑과 신부가 없는 혼사가 결정되고, 쿠무쉬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이후 직접적인 상견례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가 실개천에서 반한 상대임을 깨닫고 뜻밖 에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미녀 쿠무쉬를 사모하던 연적 호미드는 오타벡에게 자신의 사랑을 선점당하자, 어떻게든 벡을 파혼시켜 쿠무쉬를 차지하려 든다. 호미드는 당시 내전 중이었던 타슈켄트의 폭동과 오타벡을 연루해 고발하고, 이제 막 행복한 인생을 시작한 오타벡은 졸지에 체포되어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감상
여러모로 <아팠던 시간들>의 저자 압둘라 코디리는 푸쉬킨, 나쓰메 쏘세키나 루쉰처럼 한 나라의 인문 환경과 정체성, 역사를 조명하고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근대 문학의 개척자라고 불릴만 하다. 특히, 소설 속에서 러시아 근대문학의 영향력이 짙게 나타난다.
오타벡의 수감과 처형사건을 그린 1부는 러시아 문학의 시작인 <대위의 딸>과 스토리 라인이 매우 유사하다. 한 여인을 둔 정직한 주인공과 비겁한 악인의 경쟁, 반란이라는 배경, 자신의 애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헌신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자주적인 여주인공, 주인공이 황제(아팠던 시간들에서는 칸)에 의해 사면되어 구사일생하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는 압둘라 코디리가 그저 푸쉬킨의 아류 작가라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어진 2장 부터 근대적 화자가 이야기하는 전근대의 전통과 역사가 주인공들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오타벡의 사랑은 우즈벡이 혼란하다는 까닭으로, 혹은 전통이란 이유로 온갖 사건에 시달린다.
이러한 점에서, 소설은 '근대적'인데, 자주적인 등장인물, 확고한 악역, 쉬지 않고 이어지는 파격적인 스토리텔링 등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의 시선과 달리, 화자가 그려내는 배경은 전근대적이기에,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전근대라는 전통과 사고 방식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대비 때문에, <아팠던 시간들>은 근본적으로 비극적인 소설이다. 이러한 작가의 서술과 고색창연한 배경의 대비는 시대의 폭풍에 언제라도 둘의 사랑이 꺾여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정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1부는 쇠퇴하는 시대, 호미드와의 갈등이 큰 서사라면, 2부 부터는 이야기의 배경인 코칸트 칸국의 전통이 오타벡을 가로막는다. 2부의 악역은 사실상 오타벡의 어머니인 우즈벡 부인인데, 그녀는 전통을 어기고 멋대로 혼사를 진행한 아들에게 첩을 들여 자식의 도리인 부모가 주선하는 혼사를 완수할 것을 강권한다.
오늘날 근대 사회에서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통상적이지만, 당시는 전통과 부모의 권위가 훨씬 강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오히려 '감히 부모를 이기려 드는 자식이 없는' 줄거리가 전개된다. 결국 오타벡은 전근대 우즈베크인으로서 오늘날과 같은 파격적인 반항은 생각지도 못하고 어머니의 혼사를 따르고 만다.
첩 자이납과의 결혼식은 쿠무쉬의 실망을 사고, 마침 상황을 엿보던 끈질긴 호미드가 끼어들어 사태는 오타벡에게 더욱 불리해진다. 벡의 고통의 근원은 스토리적으로는 악당 호미드 때문이지만, 결국 시대가 전통이라는 이유로 일부다처제를 허락하고,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제약한다는 점이 부각된다.
처음에 <아팠던 시간들>의 전반부를 읽는 동안은, 소설이 디즈니 영화처럼 지나치게 이상적이기도 해서, 오늘날 읽으면 필요 이상으로 권선징악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아팠던 시간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동화적인 사랑에 머물지 않고, 격정과 폭력, 사회부조리 등 어두운 면을 확실하게 묘사한다. 또한, 당시 소련 문학 전통에 따라 인물의 심리를 조명할 때 서술 대신 상징과 행동을 조명하는 성격도 자주 보여준다.
상술했듯이 <아팠던 시간들>은 러시아 근대 문학의 강점들을 전적으로 반영한 작품이기 때문에, 2부 이후부터는 푸쉬킨 만큼이나 도스토옙스키의 흔적 또한 자주 엿보인다. 특히나, 광기와 폭력에 반응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반응은 심오하면서도 현실적이며, 가감 없는 감정의 묘사가 훌륭하다. 자이납과 쿠무쉬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여성상을 일찍이 반영했다는 점에서 압둘라 코디리의 여성 캐릭터 조형은 무엇보다도 도스토옙스키를 닮아있다.
사실 <아팠던 시간들>의 최고 장기는 역시 전근대 우즈베크의 문화를 집대성한 데에 있다. 대한민국 독자라면 이국적이게 다가오는 중앙아시아 문화권의 전통과 복잡한 이력이 친절하게 설명돼 있어서, 나처럼 별 다른 인문 지식이 깊지 않은 독자도 우즈베크의 정치적 분열이라는 복잡한 상황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포함된 삽화가 작중에서 등장하는 이국적인 소품의 정체를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대사건의 설명과 암투를 설명하는 서술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여, 배경과 전통의 설명이 쉽게 이해된다. 특히나, 당시 혼란했던 코칸트 지도층의 분열과 암투의 묘사는 소설이 어느 정도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는 대하소설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말미에서 소설의 배경 코칸트의 쇠락으로 끝나는데, 러시아의 식민적인 질서가 우즈베크 민족의 전통과 정체성의 파괴로 귀결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작가는 단순히 전근대라는 어두운 배경을 폄하하지도, 근대를 가져온 러시아 정부를 칭송하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비극적인 시대의 강요로 끝맺어질 뿐이다. 적절한 시대에 피어나지 못한 순진무구한 사랑은 폭력적인 근대와 억압적인 전근대의 전통 사이에 갇혀 무너져내린다.
나는 이러한 객관성의 견지야말로 압둘라 코디리를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꼽을 수 있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우즈베크의 풍속과 문화, 사고방식 등의 전통적인 정체성을 그려내는 동시에, 우즈베크 민족 정체성의 한계도 정확하게 지적했다. 부당한 일부다처제, 미신적인 사고방식, 전통과 정체성을 향한 집착, 대안 없이 분열된 지도계층 등이 그러한 예시이다. 이는 근대 문명과의 불합리한 경쟁에 패배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는 아시아 각국의 역사적 숙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확고한 악역으로 호미드가 꾸준히 암약하는 1~3부까지의 스토리가 몰입감이 좋았다. 다만 4부의 경우 시대적 배경과 주제의식에 따라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야 하기 때문에, 일부다처제의 부작용으로 파멸하는 전개가 안타까우면서도 다소 아쉬웠다.
민족 대표 소설이라면, 마땅히 러시아의와의 직접적인 전쟁에 의해 이야기가 끝났으면 하는 기대를 내가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 당국의 압박과 전근대를 비판하는 주제의식에 따라 이야기는 결국 첩과 쿠무쉬의 파괴적인 분열로 끝맺어지고 만다.
하지만, 우즈벡의 운명을 상징하는 주인공들의 순수한 사랑이 전통의 강요와 분열로 결국 유명무실해지고, 힘 없이 외세에 병합되는 역사를 암시한다면 이 편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말이 친 러시아적인 것도 아니다. 삶의 모든 것이었던 아내를 상실한 오타벡은 <안나 카레니나>의 브론스키처럼 갈 길을 잃어 전쟁에 투신하고, 쿠무쉬의 유산인 아들 여드거르 또한 러시아와 항쟁하다 요절하고 만다. 이러한 결말은 우즈베크 민족에게 러시아가 강요한 근대가 결코 친절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미 위협받던 민족의 자결권을 인계했을 뿐이라는 진실을 표현한다.
여러모로 간만에 국가 대표 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이야기를 읽으니 머릿속이 든든하다. 우즈베크라는 이국적인 세계를 균형잡힌 시선으로 읽어보고 싶다면, <아팠던 시간들>은 얼마든지 추천하는 작품이다.
줄거리 - 3.8 : 당대 근대 문학의 오락성을 반영하여 에피소드의 이완과 격양이 자연스럽고, 흥미롭다.
배경 묘사 - 4.0 : 우즈베크라는 인문 환경을 설화, 서한, 회상 등으로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냈다. 작가의 방대한 정보 탐색으로 이루어진 작중 배경 마길란과 타슈켄트는 아름다우면서도 견고하다.
심리 묘사 - 3.4: 상징을 적절히 활용했으며, 집착, 격정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리얼리즘 작품으로서도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3.6 : 우즈베크 문학의 아버지라고 비견해도 아깝지 않은 훌륭한 시작. 우즈베크의 정체성과 근대성을 아름다운 비극으로 그려낸 수작.
전반적으로 훌륭한 이야기였고, 중앙아시아의 문학을 접해볼 수 있어서 기뼜다. 중앙아시아 문학의 일부를 점령하였으므로, 이제 집착은 내려두고 편한 마음으로 다른 이슬람권의 문학을 접해보려 한다.
다음에 읽을 이슬람권 소설은 역시 카멜 다우드인데, 알제리 작가라는 이력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재해석하는 소설인 <뫼르소, 살인사건>, 혹은 알제리의 어두운 시대를 다룬 <후리>를 읽어보고 싶다.
사소한 꿈이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대학 출판부나 각종 군소 전집에서 이국적인 소설을 꾸준히 내 주었으면 좋겠다. 나 같이 책으로라도 외국의 인문 환경을 접하고 싶은 독자들도 아예 없진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