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장편소설
개요
국내의 모 독서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갤주'라고 칭송받는 커뮤니티의 대표 작가가 있다. 그는 바로 미시마 유키오로, 뻣뻣한 동작, 비극에 도취된 듯한 부담스러운 시선처리가 담긴 주옥같은 사진들과 충격적인 기행으로 쟁쟁한 경쟁자들을 재치고 갤주 자리에 등극했다.
나 또한 하나의 밈으로써 작가 미시마 유키오를 접했다. 미시마 유키오를 처음 알게 됐을 때만 해도 그렇게 관심 있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대표 작품인 <금각사>에 호기심이 동해 읽어보았다.
복잡한 미문, 유려한 은유, 이해가 필요한 장광설을 이해할 인내심은 지금보다도 더 없었던 그 시절의 나로써는 <금각사>는 역시 어려운 이야기였다. 드문드문 소설을 읽어 내려가다 번뜩이는 감각적 묘사에 감탄했으나, 그 이상의 이해는 없었다.
이건 정말로 <금각사>가 흥미롭지 않은 소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책을 소모하는 방식이 성급하고 문장을 음미하는 인내심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미시마 유키오의 유작인 <풍요의 바다> 4부작이 번역됨에 따라,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시금 작가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이 기회에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세계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까 싶어, 나도 도서관에서 <봄눈>을 빌려 읽기로 결정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생애와 스타일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해외 소설은 일본의 소설이다. 국내 독자들은 일본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면 보통 나쓰메 쏘세키, 다자이 오사무,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를 떠올린다. <상실의 시대>나, <인간실격>은 문학에 흥미가 있다면 한 번 쯤은 읽어봤을 법한 유명한 소설이다.
유명하진 않더라도 자신만의 영역이 확고한 아베 코보, 엔도 슈사쿠, 오에 겐자부로 등의 거장들 또한, 국내 독자들에서 문학적 치적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뚜렷한 문학적 성취와 범세계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 문학계가 고까운 눈길로 바라보던 작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시마 유키오이다.
수많은 기인이 산재한 문학가들의 인생에서도, 미시마 유키오만큼 독보적인 기행을 선보인 작가는 얼마 없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미시마 유키오가 천황제를 복고한다는 극우 사상가라는 불편한 이력에 더욱 무게를 두어, 정작 미시마가 벌인 인질극과 할복 사건은 오히려 덜 조명받는 경향도 있었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유작 <풍요의 바다> 4부작을 탈고한 이후 국민들에게 자기 뜻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사병 집단인 방패회를 움직여 인질극을 강행했다. 이 사건은 '미시마 사건'으로 불리는데, 독서 커뮤니티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광기어린 '갤주'로 남은 까닭 또한 이 사건 하나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 11월 25일, 탐미주의 거장 미시마 유키오는 자위대를 선동하여 쿠데타로 극우 정권을 설립하고자 했다. 이에 시민들이 자신의 뜻에 반발하자, 자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미시마 유키오는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쩌다가 탐미주의 소설의 천재는 극단적인 사상가가 되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을까?
미시마 유키오, 본명 히라오카 키미타케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엘리트로 자라났다. 천성적으로 몸이 약했던 키미타케는 어린 시절 가족들의 지대한 관심과 과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학창시절을 동창들과의 불화와 부적응, 문학의 꿈을 키우는 것으로 보낸 키미타케는 뛰어난 지성을 발휘해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해 탄탄대로를 걸어나가는 듯 싶었다.
일본 제국이 패망하고, 공무원으로 취직한 청년 키미타케는 집필 활동에도 집중해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사제 관계를 맺으며 일종의 투잡 생활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과로로 원래 좋지 않았던 키미타케의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작가 생활에 돌입했다.
<가면의 고백>으로 성공적으로 문단에 데뷔한 미시마 유키오는 지대한 인기를 누리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가꾸기 시작한다. <금각사>의 탈고와 함께 멋진 몸을 완성하자, 그간 소심하게만 보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성격은 적극적으로 변했다. 작품활동 또한 절정을 맞아 미시마는 작가로서도, 사상가로써도 전성기를 맞이한 것으로 보였다.
단순히 성격만 변한 것이 아니라, 미시마는 정치 활동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미시마는 우익 정치 활동에 몸을 담아 훗날 할복 사건의 주역이 될 민병대인 방패회를 조직했고, 복고적인 무사도와 천황 중심의 정치 이념을 주장했다. 그의 정치 활동은 당시 일본을 폭력으로 주름잡던 극좌 사회 운동 집단인 전공투와 대면하여 담화를 펼치는 둥, 이전의 문약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행보가 절정에 이른 전공투와의 담화 이후, 다음 해인 1970년에 미시마 유키오는 위법까지 각오한 '미시마 사건'을 일으켜 자결했다. 아직까지도 미시마 유키오가 웨이트 트레이닝 이후로 약 15년간 이어진 심경의 변화가 정확히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일개 독자에 불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유작 <풍요의 바다>를 통해 드러나는 비합리적인 미학과 비극적인 윤회 사상으로 심리를 추측할 뿐이다.
줄거리
미시마 유키오의 유작인 <풍요의 바다>는 관찰자 주인공인 '혼다'가 평생동안 자기 곁을 맴도는 비극적인 인물들과의 얽히는 이야기이다.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봄눈>의 비극적 주인공은 혼다를 유일한 친구로 둔 후작가 도련님 '기요아키'의 이야기이다.
부유한 데다가 아름다운 기요아키에게는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토코가 있었다. 사토코는 매번 기요아키와의 사랑을 꿈꾸지만, 아직 젊고 심사가 뒤틀린 기요아키는 소꿉친구와의 혼사를 매번 물먹이면서 자신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때를 쫓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억눌린 사랑이 무르익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았다.
결국 기요아키의 모독적인 편지를 두고 냉전을 치루는 두 사람을 본 아야쿠라 일가는 사토코를 황실의 하루노리 왕자와의 혼사에 주선한다. 결혼이 확정되며 천황 일가의 척허 소식을 접한 기요아키는 이미 황실의 몸이 된 사토코를 뒤늦게 유혹하려 든다. 사토코는 평생의 애인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감상문
여러모로 <봄눈>은 감각적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귀족적이고 아름다운 배경들, 매혹적이고 섬세한 상황 묘사가 아름다움을 향한 작가의 집착을 잘 보여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왜 비극 속에서만 극단적인 미가 완성될 수 있는지는 납득이 안 된다. 작가가 추구하는 비합리적 비극은 더욱 짜릿할 뿐, 특별히 더 아름답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봄눈>은 이전에 읽었던 작품인 <금각사>처럼 관념적이기보단, 쉴틈 없는 줄거리와 매혹적인 감각적 묘사로 자신의 사상을 드러냈다. 젊고 아름다운 남녀가 파멸적인 사랑을 행하는 이야기로서 <봄눈>은 무엇보다 미시마 유키오의 세계관이 녹아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지만 심사가 뒤틀린 기요아키의 덧없는 젊음, 생활력이 강한 미녀 사토코의 광기어린 젊은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서는 대단히 인상이 강렬했다.
비극을 추구하는 젊은 기요아키의 행보는 처음 읽었을 때는 영 비호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스스로 추구한 사랑 놀이에 몰두하면서 점차 균형을 잃어가는 묘사는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야기 내내 기요아키는 인정하지 않았을 뿐, 누구보다 사토코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기요아키의 미성숙함과 실속 없는 현실 감각을 잘 조명해주었다.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열애가 유지되는 까닭도 순전히 주변 사람들을 매혹시키기 때문이라는 점이 암시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이는 아름다움의 기능과 한계를 정확하게 짚는 대목이었던 것 같다. 아름다움이 주변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구원해주지는 않았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기요아키는 순수한 미만을 쫓다가 파멸하는 인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사토코와의 사랑은 뱃놀이나 귀족 의례처럼 미를 탐하는 방식 중 하나였으나, 금지된 사랑을 탐하는 일은 대단히 위협적이고 책임을 요구했다. 때문에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기요아키는 태생적인 결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멸하고 만다.
또한 의외로 미시마 유키오의 작가적 기량을 옅볼 수 있었던 장면이 많았다. 감각적 묘사뿐 아니라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긴박한 스토리텔링, 매력적인 인물들이 인상 깊었다. 기요아키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조력자 혼다, 향수병에 시달리며 애인과의 사랑을 고대하는 시암의 왕자 피타나디드, 생활력 있으면서도 열정적인 사토코 모두 캐릭터성이 확고했다.
특히나, 시녀장 다데시나는 잡무에 능하면서도 유능함으로 두 사람의 매혹적인 열애를 돕는 조력자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다데시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스메르쟈코프처럼 음흉하고 계산적인 처세술을 드러내는 등, 상당히 흥미로운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실패가 확정된 비극적인 사랑이란 소재 자체가 고혹적이었고, <봄눈>은 확실히 미시마 유키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가의 완성된 작품 세계는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의 미학을 바라보는 내 의견을 말하자면, 불가능한 이상을 논하는 이야기로써 <봄눈>은 퇴폐적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퇴폐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 자체가 다소 고루한 일이라곤 생각하나, 미시마 유키오가 추구하는 절대적인 미는 반드시 영웅적인 비극 아래에서만 전개된다. 이 점은 순수하게 비극적 도취를 선호하는 작가의 기호라고 생각하는데, 미의 극한이 파멸일 이유는 없다.
요컨대, 미를 계속 쫓을 거면 살아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죽음마저 넘어서는 미학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비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미학의 목적이 미의 순수한 이해와 구현보다는 영웅적 순교를 갈망하는 자아도취로 점점 귀결돼 가고 있기에 비판하는 것이다.
비합리적 순교를 향한 귀족적인 매혹을 드러내는 것도 미시마 유키오다운 사상이라고 생각하기에, 대단히 자신다운 방식이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근근이 읽을 <풍요의 바다> 4부작 또한 나의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가로서의 공로는 인정받아 마땅하나, 그가 열망하는 비극이나 순교를 향한 꿈은 정치 노선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고 건강하지 않았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여러모로 미시마 유키오는 읽을수록 복고적인 작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이념 때문이 아니라, 추구하는 미가 이미 태평양 전쟁으로 시들해진 비극과 영웅주의인 것과, 이야기 속에서 매번 죽음을 염두한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고전적인 일본 귀족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도 현대 일문학의 전통인 관념적인 성향과 불교적 세계관의 이해가 도드라진 점 또한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대와 복고 사이에 서 있는 미시마의 작품 세계는 확실히 일문학의 그 누구보다 독보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줄거리 - 3.9 : 합리성 대신 미를 추구하는 주인공이 펼치는 쉴 틈 없는 에피소드,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로맨스가 인상적이다. 또한, 각 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이 도드라진다.
배경 묘사 - 4.2 : 탐미주의 거장이라는 명색이 아깝지 않은 서술적 기교, 소품과 등장인물의 배치가 인상적이라 미장센이 강렬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3.7 : 작가의 복잡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특별히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금각사>보다도 흥미진진하고, 직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시마 유키오 소설 중에서는 자신의 세계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친절한 면도 없지 않았다.
<봄눈>을 통해 스스로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싫어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한동안 그의 소설은 찾지 않을 듯 싶다. 사상이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상상하는 습관이 부족한 내게 미시마는 읽을 때마다 다소 피로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내 기호와 태생적인 문제지, 작가의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대신,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문학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들을 찾을까 싶다. 여러모로 미시마와 동시대에 활동한 작가이지만, 이념과 행동이 반대되는 작가인지라, 둘의 차이를 음미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