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주 독후감상문

에밀 졸라의 장편 소설

by 신현호

개요, 에밀 졸라와 나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지론대로, 문학이란 충격, 혹은 감동을 전달하여 독자의 세계관에 변혁을 일궈내야 한다. 충격을 추구하는 문학 탐구는 일개 유희를 넘어서 정신적 성장의 지양분으로 작용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상술한 이유로 나 또한 카프카처럼 충격적이고 불편한 소설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비슷한 작가로는 인간 심리의 부조리와 광기를 그리는 도스토옙스키, 삶의 이유를 묻는 카뮈 같은 작가들이 있다. 그리고, 오늘 논할 에밀 졸라 또한, 충격적인 시대상을 폭로하는 작가로 간주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졸라의 스타일을 특별히 선호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졸라의 사회적 부조리, 악,욕망, 어리석음을 재현하는 솜씨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나, 그의 이야기는 필요 이상으로 고발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래서 졸라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만큼 부조리한 배경에 화가 치밀기도 한다.


졸라가 일생 내내 집필한 '루공마카르 총서'를 나는 <나나>로 입문했다. <나나>는 인간의 욕망과 천함, 육체적 갈망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나나>가 마음에 들기만 하는 소설이었느냐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적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작가가 소설이란 세계에서 객관적인 부조리의 보고만 이행할 뿐, 개인적인 사상이나 주제의식이 돋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얼리즘 작가로서는 마치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이 빠진 톨스토이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러한 감상 때문에, 나는 졸라의 소설을 고평가하면서도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해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읽을 서양 고전이 없으면 프랑스 소설을 찾는 습관에 따라 번역 소설 코너를 둘러보는데, 신간인 에밀 졸라의 <패주>가 눈에 띄었다. 취향은 아닐지언정 잘 쓴 소설이 읽고 싶어서 나는 <패주>를 별 기대없이 무작정 꺼내들었다.


졸라의 작품이 그렇게까지 흥미롭지 않았다고 여기던 취향과는 별개로, <패주>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처럼 거대하고 압도적인 역사를 다루는 '위대한 소설'이었다.


특히나, 근대 프랑스 몰락의 시작인 보불전쟁을 배경으로 역사의 전환기를 에밀 졸라답게 적나라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화풍으로 그려냈다.


작품의 배경, 보불전쟁과 프랑스의 흥망성쇠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인 나폴레옹 시대와, 6주만에 독일군에 점령된 프랑스. 불과 140년만에 변화한 유럽 패권의 판도를 보여준다.

현대 프랑스의 국내 인식은 나쁘다. 이러한 인식의 원인인 '자신만의 자유 평등 박애'를 추구하는 식민주의적 행보, 2차 대전의 어처구니 없는 졸전, 현대 파리 시민들의 불친절, 오만함이 자아낸 이미지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러다 보니, 나폴레옹의 근대 프랑스와 나치에게 농락당한 현대 프랑스는 거의 다른 국가처럼 취급받으며 한 쪽은 찬사를, 다른 한 쪽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프랑스가 2차 대전 당시 졸전의 신화(?)를 새로 쓰기 전, 프랑스 몰락의 전초전이자 또 다른 실패의 역사인 '보불전쟁'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역사 커뮤니티에서 보불전쟁은 유난히 논의되지 않은 '잊혀진 전쟁'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보불전쟁의 파장은 유럽의 파워밸런스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중세와 근대 초기 내내 유럽의 강호였던 프랑스가 근대화의 후발주자인 프로이센에게 참패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전까지 프랑스가 통제하던 유럽의 육상 패권은 프로이센에게 천천히 이양되기 시작했다.


흔한 '역덕후'라면 무릇 한 국가의 국력이 절정에 오른 전성기에만 큰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연 근대 프랑스의 역사가 어떻게 쇠락했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몰락을 논할 때 대부분의 역사 애호가들은 프랑스 몰락의 끝인 2차 대전의 충격적인 패배를 논하지, 보불전쟁부터 시작된 유럽의 판도 분산과 프랑스의 점진적인 쇠퇴는 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프랑스 전성기와 독일 통일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르네상스 절대왕정의 대표주자 루이 14세의 부르봉 왕조와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

19세기 초, 왕이 군림하는 르네상스의 질서보다, 국민이 지배하는 근대의 체계적 질서가 더욱 적극적이고 강력하다는 사실은 나폴레옹이 무력으로 익히 증명했다.


나폴레옹 전쟁은 전 유럽의 합작 하에 제압되었으나, 여전히 유럽 국가들은 프랑스의 독보적인 국력을 의식했다. 파리가 근대까지 유럽의 문화 수도를 차지하고,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공용어 삼았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19세기 중반까지도 프랑스는 강력한 제국주의 열강으로서 영국과 대치했다.

800년간 존속되온 신성로마제국, 르네상스 시대동안 번성한 합스부르크 왕조,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 합스부르크와 프로이센은 각각 르네상스 시대와 근현대 독일어권을 제패했다.

한편, 독일 문화권은 신성로마제국으로 대표되는 후진적 봉건제의 온상으로 취급받았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독일 문화권의 대외 활동은 대부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주도했고, 프로이센은 독일어 문화권의 동쪽 변경이나 다름 없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명한 결혼 정책으로 막대한 영토를 상속받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강력한 합스부르크 또한 독일의 본진이라고 볼 수 있는 신성 로마 제국을 온전히 병합할 수는 없었다.


동쪽 변경 프로이센의 근대화를 일구어낸 프리드리히 2세와 독일 통일을 주도하는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합스부르크가 전성기를 지나 현상 유지에 집중하는 동안, 근대화를 이루어낸 프로이센은 합스부르크를 밀어내고 독일어권의 새 강대국으로 등장한다. 프로이센은 생존을 위한 철혈 정책과 근대화된 체제를 무기삼아 신성로마제국 영토 통일의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역사의 전면에 통일된 독일이 등장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프랑스는 자신과 체급이 동등한 통일 독일이라는 적수와 공존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렇게 두 열강 간 발발한 사건이 현대 독일과 프랑스의 악연의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보불전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옛 영광을 잊지 못한 안일한 프랑스는 체계화된 프로이센군의 진격 앞에서 철저히 패배했다. 심지어 이번 패배는 그간 유럽의 골목대장이던 프랑스의 역사에서 최초로 단일 국가에게 파리가 함락당한 처절한 패전이었다.


포로로 사로잡힌 나폴레옹 3세와 프랑스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통일을 선포하는 프로이센 정부

프로이센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통일을 선포했고, 참패한 프랑스는 협상으로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를 할양하여 식민지 신세를 면했다. 나폴레옹 3세가 이끌던 프랑스는 과거의 프랑스가 아니었다. 과거의 영광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해졌다.


그간 맛본 적 없는 참패와 생존의 위협에 프랑스인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1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전 유럽을 호령하던 프랑스가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다는 말인가? 이 당시 프랑스인들이 겪은 세계관 붕괴를 엮어낸 작품이 바로 에밀 졸라의 '패주'이다.


줄거리

프랑스군 7군단은 승리를 확신하며 진군한다. 그러나, 보급은 엉망이고, 지휘부는 명령이 통일되지 않으며, 병사들은 반항적이다.


이번 전쟁에 참전한 두 하사, 장 마카르와 모리스는 각기 출신과 참전 사유가 다르다. 장은 이전에 이탈리아 원정에 동원되어본 적이 있어 전쟁이라면 학을 떼는 무식한 농부 출신 참전용사이지만, 국가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재입대했다.


반면, 모리스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인류 역사의 진보를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역사적 견해를 가질 만큼 배운 인물이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경험 없는 모리스는 자신이 무지렁이 선임하사와 같은 신분이라는 사실에 불만이 많아 매번 장을 무시한다. 그는 군율을 무시하고 자신의 매부를 불러 병영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둥, 여러모로 무너진 군 기강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정작 모리스의 매부인 바이스는 요사이 프로이센의 군사적 숙련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며, 앞으로의 전황을 걱정한다. 그러나, 프랑스 장교들은 국경 민간인의 걱정에 코웃음치며, 우리는 이전에도 프로이센을 꺾었다면서, 그보다 훨씬 크고 강했던 합스부르크도 프랑스군의 전설 앞에서 줄행랑을 쳤는데, 무엇이 두렵느냐고 반문하며 승리를 확신한다.


하지만, 장 또한 영 좋지 않은 보급 상태와 해이한 기강, 상부의 명령 불일치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현지인 바이스의 우려대로, 프랑스군의 선봉이 프로이센군에게 대패했다는 소식에 7군단과 모리스는 경색된다. 명예를 쫓아 입대한 모리스에게는 진정한 전쟁이, 어떠한 불굴의 의지로도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감상

<패주>의 줄거리는 크게 부조리한 명령 앞에서 무력한 개인의 모습을 그리는 1부, 본격적인 프로이센군과의 전쟁을 묘사하는 2부, 마지막으로 전쟁의 패배와 내전으로 엉망이 된 파리를 그리는 3부로 나뉘어져 있다. 패주는 전쟁 소설로서 전쟁의 허무도, 영광스러운 승리도 아닌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어리석음과 절망, 그리고 쇄신을 성찰한다.


제목인 <패주에> 걸맞게, 1부 내내 프랑스군은 의견 통일이 안 되는 참모부의 명령으로 전선을 종횡무진한다. 그러나, 이는 적의 진격에 따른 대응이 아니라,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듯한 집합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프랑스군이 집합을 위해서 끝없이 행군해 탈진하고, 굶주리고 자멸해가는 동안, 프로이센군은 결국 목전까지 치달았다.

1부 내내 주인공인 7군단과 106연대는 선봉이 격파돼 후퇴하고, 또 후퇴한다. 이러한 후퇴 속에서 병사들은 지쳐가고, 자신들이 몸담은 전쟁이 이전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신화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전쟁을 관망중인 파리 정부는 패배의 소식에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고압적인 태도로 국가 원수 나폴레옹 3세를 전선으로 쫓아낸다. 승리하지 못하는 프랑스는 유지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당대 프랑스인들의 감정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작가는 처절한 현실과 영광스러운 역사의 불일치에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프랑스 국민들의 감정 모순을 꼬집는다.


개인적으로, 1부는 내내 부조리에 시달리는 군대를 그렸기 때문에 특별히 흥미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리얼리즘의 핵심 중 하나인 굶주림, 피로, 좌절 등의 육체적 한계의 묘사가 인상깊었다. 그리고, 굶주리자 무너지는 군의 기강과 배가 다시 차자 애국심과 이성을 되찾는 모습 등, 전쟁이 '의지'로만 수행될 수 없다는 현실을 철저히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는, 나폴레옹 시대 당시 승패를 단정짓던 병사들의 제식 수준과 총검을 앞세운 정력적인 전투 의지, 즉, 정신력이 더 이상 전쟁의 판도를 결정지을 수 없는 냉담한 현실을 반영한다. 2부에서 펼쳐질 처절한 항전이 증명하듯, 더 이상 민간인과 군인이 구분될 수 없는 총력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어진 2부에서 패퇴한 프랑스 군대는 모리스의 고향인 스당에 주저앉아 결사항전을 준비한다. 더 이상 굶주리는 것보다 싸우다 죽는 편이 나았기 때문에, 프랑스 병사 개개인은 용맹하게 정신력을 앞세워 투쟁한다. 그러나, 이미 시대는 고폭탄과 기관총, 철도가 지배하는 시대였고, 장병들의 불굴의 용기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은 점차 궤멸에 가까워진다.


2부를 읽는 동안 상당히 놀라웠던 점은, 고전 전쟁 소설의 성격 중 하나인 전투 전체를 묘사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어기고 전투에 처한 장병 개개인이 겪는 전장의 혼돈과 잔혹함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것이었다. 특히, 프랑스군의 광신적인 용맹, 마구 죽어가는 아군, 민간인 학살 등을 검열 없이 묘사해, 전쟁의 현장감은 압도적이었다.


2부의 하이라이트는 106연대가 결국 후퇴하며 가렌숲에서 학살당하는 장면이었다. 달아나는 장과 모리스의 시점으로 바라본 학살 장면은 다소 카프카나 도스토옙스키처럼 연극적인 배경, 악몽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잔혹하게 훼손되는 신체, 마비된 이성, 국가가 주도하는 어리석은 아집의 현실이 철저히 드러난다. 또한, 도살장으로 묘사되는 야전 의무실이 보급선이 마비돼 마취제도 없이 절단 수술을 진행하는 배경을 통해, 실질적인 궤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결국 나폴레옹 3세는 궤멸을 앞둔 현실에 직접 프로이센군과 협상한다. 그러나, 이미 나폴레옹 3세의 지지도는 땅에 떨어졌고, 국가 지도자인 나폴레옹 3세의 타협에도 불구하고 파리 정부는 패전에 불복한다. 이유는 프랑스는 패배해선 안 됐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선에서 겪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선민의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과 연관 없는 젊은이들을 희생시킬 각오가 돼 있었다. 이러한 무능력한 정부의 이기심과 전선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는 병사들의 광신이 대비되어 당시 시대상의 인지부조화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이 났다.


분전 끝에 항복하여 포로가 된 7군단 병사들은 모든 체계를 잃고, 각자도생을 위해 인맥을 이용한 탈영과 배신마저 일삼는다. 또한, 이 지점에 이르면 소설은 단순히 프랑스의 시대적 어리석음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 전쟁의 성격인 무뚝뚝함을 논하기 시작한다.


사실, 프로이센군이 끈질긴 프랑스군을 학살하는 이유도 즐거워서가 아니다. 프랑스 정부도, 프로이센군이 싫어서, 혹은 어떠한 정치적 숙청 의도가 있어서 자국 젊은이들을 사지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국가와 민족의 장기적인 이익이란 까닭으로 모든 악과 어리석은 폭력이 정당화된다. 미래는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한 마디로, 전쟁의 수행은 누구도 즐기지 않기에 냉담하다는 지점을 작가는 암시하기 시작한다. 적군인 프로이센 또한 프랑스군과 마찬가지로 그냥 명령받았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전투를 끝내도록 무덤덤하게 포격과 학살을 자행하는 것이지, 특별히 프랑스에 악감정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악의는 개인의 사적인 감정과 관계를 오염시키기 시작한다.


2부 말미에 이르면, 작가가 묘사하는 전쟁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특히, 모리스의 사촌인 오노레의 배신당한 사랑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을 암시한다.


복무 도중 아내 실빈의 외도와 출산 소식을 접한 오노레는 아내와의 재결합을 꿈꾸다가 전사하고, 전쟁 이전에 하룻밤을 동침했던 독일인 골리아트자신의 아들까지 가진 과부 실빈을 차지하려 든다.

그러나 프로이센군의 손에 남편을 잃은 실빈은 골리아트를 적대하고, 점령지를 통제 중인 프로이센 군부를 무기로 삼은 골리아트를 제거하기 위해 프랑스 저항군에게 암살을 의뢰한다.


여전히 애욕에 불타는 골리아트는 함정에 빠진다. 그는 프랑스 의용군에게 사로잡혀 조리돌림 끝에 돼지 잡는 칼로 비참하게 암살당하는데, 이러한 묘사들에 이르면 소설은 단순히 프랑스군의 불굴의 의지를 찬미하는 지점을 넘어, 프로이센군 또한 같은 전쟁을 수행하는 고통을 받는 대상으로 묘사한다.


이전에 의용군으로 항쟁한 바이스를 살해한 병사 또한 개인적으로는 바이스의 아내인 앙리에트에게 미안해하다가 병사하는 둥, 현대의 전쟁이란 모두에게 즐거운 사업이 아니라는 현실이 그려진다.


장과 모리스 또한 전쟁을 거치며 의형제 관계로 발전하나, 장이 총상을 입어 스당에 남고, 모리스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우마를 견뎌내면서 수도 방어전에 투신한다. 프랑스군은 마찬가지로 불굴의 의지를 앞세워 수도를 사수하나, 패배는 확정된 수순이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전쟁이 목전에 치닫기 시작하자 현실을 이해해, 고집을 꺾고 항복을 고려한다.


그러나, 비굴한 현실에 불복하는 코민테른이 파리를 장악하고, 결사항전을 주장한다. 전쟁의 추태에 질린 모리스는 조국의 저력에 실망하여, 국가에 반항하는 코민테른에 자원한다. 그리고, 부상에서 회생한 장은 간호사로 일하는 모리스의 누이 앙리에트와 함께 항복의 공인에 따라 이제 코민테른이 판치는 파리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통일성이라곤 이전의 프랑스 정부만도 못한 코민테른은 프로이센군의 묵인 속에서 프랑스 정규군에게 소탕당한다. 전투 과정에서 장은 의도치 않게 코민테른 의용군 하나를 총검으로 치명상을 입히는데, 그가 찌른 자는 안타깝게도 의형제 모리스였다. 이러한 대목은 사적인 감정 없이 일시적인 적대감으로만 진행되는 전쟁이 무엇을 앗아갈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장은 형제를 살리기 위해서 잿더미가 되어버린 파리를 벗어나려 애쓰나, 결국 모리스는 자신과 같은 반동 분자들이 불타고 유능한 자들이 세상을 복구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의견을 고수하다 죽고 만다. 한 때 자신을 구원한 앙리에트와의 사랑을 꿈꾸던 장은 운명의 장난으로 졸지에 동생의 원수로 헤어지고 만다.


다만, 이러한 엔딩은 비극적이여도, 모리스의 꿈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바였다. 다름이 아니라, 그간 오만하고 특권적인 위치에 익숙했던 프랑스에게는 참패가 필요했다. 이러한 패배와 불로서 프랑스는 다시 태어날 것이고, 다시 태어난 프랑스는 이전보다 자신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터였다. 미약한 희망을 꿈꾸면서 프랑스와 장은 처참한 패배를 감내한다.


작품 외적인 이야기이지만, 보불전쟁의 패배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파리가 함락당하면서 자신들의 지위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힘겹게 학습한 프랑스 정부는 이어진 1차 대전에서 숙적 독일을 막아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최후의 전쟁인 2차 세계대전에서는 어처구니 없이 무너져버렸지만, 2차 대전의 패배와 식민주의의 청산을 통해 프랑스는 오늘날의 그나마 가장 덜 어리석고 가장 많이 성찰하는 프랑스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나는 패주가 단순히 나폴레옹 3세 시기 프랑스의 어리석음을 그리는 작품이 아니라, 프랑스의 저력인 재기와 불굴의 정신을 암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은 여전히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생각을 바꿀 수는 있다. 작가인 졸라는 조국 프랑스의 저력은 시대를 독주하는 패권적 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는 의욕에 있다고 미약하게나마 말하고 있다.


졸라의 암시대로, 이후 펼쳐진 역사 속에서 프랑스는 패배하고, 쇠퇴하고, 유럽의 주인에서 일개 지역 강국으로 오그라든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고, 그 안에서 나름의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 훗날 몰락할 유럽 전체에 주어진 미래였다. 졸라는 이러햔 유럽의 쇠락을 조국의 패퇴로 미리 보여준 셈이었다.


이는 여전히 스스로가 세계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오늘날 유럽과 제국의 후예들에게 필요한 조언이었다. 유럽과 제국이 주도하는 질서는 끝났고, 각 국가들은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역할인 세계의 일부로서의 삶을 받아들일 때가 도래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몰락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적응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이전의 프랑스처럼 오만 속에서 자멸할 뿐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패주>는 그러한 특권의식의 붕괴를 의미하는 작품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줄거리 : 3.5 - 거대한 서사를 쉴 틈 없이 전개하면서도, 일상 에피소드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훌륭한 완급조절을 이루어냈다.

심리 묘사 : 3.4 - 인물간의 애욕, 증오, 공포, 격양 등의 일시적인 감정이 객관적으로 묘사된다. 또한, 혼란스럽지 않은 일관된 진술 톤이 훌륭하게 유지된다.

배경 묘사 : 4.0 - 1부의 알자스 지방을 빙빙 도는 상황은 흥미롭지 않지만, 확고한 배경, 현장감 넘치는 전장의 상황, 점차 파괴되어 가는 스당과 굶주림 등의 묘사가 특출나다.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다운 표현력이었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3.7 - 에밀 졸라 특유의 파국을 묘사하는 드라마로서는 가장 성숙하고 진중한 작품. <나나>보다 견고하고, 사회상의 객관적인 반영을 넘어서 다시 태어나야만 했던 프랑스의 숙명을 형상화했다.

<전쟁과 평화>가 많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는데, 여러모로 졸라의 소설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현장감과 메세지, 그리고 다소 연극적인 배경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극한 상황을 그리는 졸라의 현실성이 마음에 들었기에, 다음에는 아마도 사이코패스 쾌락 살인마의 심리를 그리는 <인간 짐승>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사실, 이미 <나나>로 돈이나 욕망, 간계의 천함은 이해했고, <패주>에서 역사라는 거대 담론도 읽어보았으므로, 이제 인간 심리의 밑바닥에 천착하는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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