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국가유공자의 '공'
창신동 어느 골목길을 따라 굽이진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국가 유공자의 집'이 나온다. 시대에 맞지 않게 낡은 기와집에 눈길이 가 자세히 쳐다보면, 갈색 나무 대문에 칠이 벗겨진 흐린 글씨의 '국가 유공자의 집'이라는 회색 명패가 붙어 있다. 어두운 밤에는 깜빡깜빡 거리는 가로등에 겨우 읽힌 명패는 누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정도로 명암이 희미했다.
푸른 기와 주변 곳곳엔 얇은 거미줄이 처져 있고 집 옆엔 슬레이트 벽으로 보수가 돼있다. 성긴 전깃줄과 국가유공자의 집 처마에서 벗어나 그 너머로 시야를 옮기면 몇 년 전 신축으로 지어진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네모반듯하게 지어진 깔끔한 아파트 풍경과 대비되어 국가 유공자의 집이 한껏 더 초라해 보인다.
국가유공자의 집은 비흡연자의 사각지대다. 흡연 금지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있는 주변 역사와 아파트 단지와 달리 이곳만큼은 주변에 담배꽁초가 한가득이다. 장대비가 오는 날이면, 저 위에서부터 쓸려 내려온 장맛비가 몰고 온 온갖 쓰레기들이 이곳에 모여 고인다.
이 집에는 정말 국가 유공자가 살고 있을까. 아님 그의 후손이 살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후손 역시도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나버린 걸까.
창신동을 벗어나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4호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환승구역에서 어느 70대 노인이 있다. 정갈한 검은 정장을 입은 그의 왼쪽 가슴엔 빨간 뱃지, 머리엔 문양이 새겨진 하얀 모자를 썼다. 지하철 기둥 벽에 기대앉아 돗자리를 펼치고는 색색의 허리띠를 십 여개 펼쳐 놓고는 가만히 물건을 판다. 순국선열, 애국지사, 참전유공자 여러 국가 유공자들 중 한 사람으로 보이는 이 노인은 어쩌면 창신동 '국가 유공자의 집'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노인을 애써 무시하고 지하철을 탔다.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 읽다 국가보훈처에서 새로운 명패달기 사업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 분위기를 조성하고 ... 국가 유공자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얼른 화면을 밑으로 내렸다. 관련 기사르 2017년 화재 사건이 하나 떴다. '2017년 12월 휴대용 가스버너로 매서운 추위를 견디던 월남전 참전 국가 유공자가 화재로 참변을 당했다. 그의 집에는 건강보험료 독촉고지서, 라면봉지, 그을린 부탄가스통...' 핸드폰 화면을 그고 주머니 속에 넣었다. 눈을 질끈 감아보았다.
국가 유공자의 '공'의 결과는 빛 좋은 개살구 '명패' 한 장이다. 명패를 다는 일이 국가보훈처에게는 명예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허리띠 한 개를 팔기 위해 나와 있는 저 국가유공자에게 명해 한 장보다 지폐 한 장이 더 간절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국가의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진급을 하거나 그의 공이 추대되어 죽음 이후에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떠나지 못해 남아 있는 또 다른 누군가는 허름한 '국가 유공자의 집'에 남아 허리띠를 팔며 지긋한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야 한다.
'공'이란 글씨는 얄궂게도 그 글자를 뒤집어보면 '운'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누군가 나라를 위해 공들여온 희생이 운 좋으면 공, 운 나쁘면 외면받는 세상이다. 창신동에 사는 국가유공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 운 나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