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부머 세대
인생은 쉽지 않다. 이 말을 처음 깨달은 것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흐릿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베이비부머 맏형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풍요가 오기 전 마지막 허기를 몸으로 통과하는 일이었다.
밥 한 끼의 무게를 알기도 전에 경쟁의 무게를 먼저 배웠다. 앞서 뛰지 않으면 뒤처졌고, 뒤처지면 벼랑이었다. 어린 시절은 가난이 등을 떠밀었고, 청년기는 생존이 목을 조였으며, 중년은 책임이 어깨를 눌렀다. 숨 고를 틈도 없이 세상은 언제나 다른 얼굴의 시련을 보내왔다.
칠십 줄에 만난 코비드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온기가 병이 되고, 만남이 경계가 되는 시대. 문명이라는 성벽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허둥대다 무너졌다. 그 혼란을 간신히 건너오니 이번에는 전쟁의 불길이다. 이란이라는 낯선 지명이 뉴스 자막을 채우고, 국제유가가 오르고, 마음의 평온마저 흔들린다. 역사는 언제나 저 먼 곳에서 일어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밥상 위에, 통장 안에, 자식 걱정 속에 실시간으로 들이닥친다.
그러나 우리 세대에게 전대미문(前代未聞)이라는 말은 이미 익숙한 수식어다. 전쟁의 폐허에서 태어나 산업화의 먼지를 마셨고, 외환위기의 한파를 건너 팬데믹을 통과해 지금은 지정학적 충돌을 목도하고 있다. 세상은 늘 끝장날 듯 흔들렸으나, 기어이 다음 날 아침은 왔다. 인간은 약하지만 끈질기다. 우리 세대는 그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의 기억으로 안다.
내 삶에 평탄한 길은 없었다. 여기까지 온 것은 대단해서가 아니라, 물러설 곳이 없어 버텼기 때문이다. 굶주림을 아는 사람은 풍요를 과신하지 않는다. 경쟁을 뚫고 온 사람은 안온함을 믿지 않는다. 세상이 흔들릴 때마다 불안하면서도,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체념 같은 힘이 어느 순간 고개를 든다. 또 견뎌야지. 별수 있나. 비관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건너온 방식이다.
인생은 결코 쉬워지지 않는다. 다만 견디는 법에 익숙해질 뿐이다. 그 익숙함이 때로는 체념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것을 체념이라 부르지 않는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조금씩 다듬어진 단단함,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균형감각, 그것이 우리가 몸으로 익힌 삶의 기술이다. 거대한 역사를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가족을 살피고, 하루를 품위 있게 건너는 일은 여전히 내 몫이다.
인생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단단함은 시작된다. 우리는 쉬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아직 인간을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