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은 단순한 데서 온다.

동반자

by 김희곤

저녁 무렵, 불을 끈 거실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하루의 소음이 앙금처럼 천천히 가라앉는다. 대단한 성취는 없었다. 서로의 일과를 묻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텔레비전을 잠시 보다가 끄는 평범한 시간뿐이다. 그런데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안도한다. 오늘 하루도 아내가 돌아왔다는 사실, 바깥세상을 부지런히 헤쳐 온 그가 여전히 내 앞에 앉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나를 붙든다. 그 순간 알게 된다. 기쁨은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한때 나는 사랑이 서로의 장점을 확인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내의 성실함과 단단함, 흔들리지 않는 태도에 기대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래 함께 살아보니 다르게 보인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능력이 아니라 자리라는 것을. 하루 종일 봉사며 약국 알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건네는 짧은 한마디가,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 나를 다시 세운다는 것을.


세상은 끊임없이 쓸모를 묻는다. 얼마나 성취했는지,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얼마나 더 올라섰는지를 계산한다. 나이가 들면 그 물음은 더욱 서늘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아내는 다른 것을 묻는다. 내가 무사히 하루를 잘 보냈는지, 마음이 괜찮은지, 오늘은 조금 덜 무료했는지를. 그 물음 하나가 세상이 지운 내 자리를 다시 채워준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나는 쉽게 지치고, 아내는 때로 말없이 속으로 삭인다. 나는 고집을 부리고, 아내는 지나치게 배려하다가 스스로를 뒤로 미룬다. 젊은 날에는 서로를 고치려 했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안다. 사랑은 서로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빈 공간을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의 허술함을 아내가 알고, 아내의 그림자를 내가 아는 것. 그 앎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혼자였다면 상처로만 남았을 기억도 아내와 나누면 조금 다른 모양이 된다. 우리는 서로의 모서리를 깎아낼 수 없다. 다만 그 날카로운 부분을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손을 얹는다. 칠십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결핍은 여전히 있고, 몸도 예전 같지 않으며, 세월이 남긴 생채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함께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면 고립은 옅어진다. 지울 수 없는 삶의 하중을 둘이 나누어 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부부로 살아온 방식 아닐까.


나는 여전히 말을 고르며 아내에게 다가간다. 혹시 상처가 되지 않을지, 혹시 내 진심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지 망설인다.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정확하게 이해받고 싶다는 바람과 닿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언어는 늘 진심보다 조금 모자라거나 조금 넘친다는 것을. 그래도 그 서툼이 오랜 세월을 함께 건너온 증거라는 것을.


행복은 우리 집 거실에 있다. 나른한 저녁의 안부 속에 있다. 아내가 묻는다. “오늘 잘 지냈어요?” 나는 대답한다. “당신이 오니까 이제 다 됐지.” 그 평범한 질문과 대답이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세상이 불확실해도, 이 대화가 반복되는 한 나는 쉽게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삶의 기쁨은 더 많이 갖는 데 있지 않았다. 칠순 아내가 여전히 봉사를 다니고, 약국 알바 일을 하며, 바깥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내 앞에 앉는다는 것. 그 반복이 내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든다. 아내가 여전히 내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아내의 하루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기쁨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가장 눈부신 장면은 큰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아내와 마주 앉아 있는 이 저녁이다. 일흔 중반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이 부러워할 무언가가 아니라, 곁에 있어도 괜찮은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내라는 사실이, 오늘 하루도 충분히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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