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심연, 불안의 정치사

고대 무(巫)에서 현대 도사까지, 통치자는 왜 점에 기댔는가?

by 김희곤


인류의 정치사는 이성과 합리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불안과 징크스의 역사이기도 하다. 왕권이 절대적이던 시대에도 통치자의 곁에는 늘 무당과 점술가가 있었다. 전쟁을 앞두고는 반드시 점을 쳤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기 전에는 길흉을 물었다. 이들은 천시받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신분과 적잖은 영향력을 지녔다.


고대의 ’무(巫)’는 단순한 무속인이 아니었다. 신석기 시대 공동체의 빅맨(big man)적 권위에서 분화한 존재였다. 그 기능은 시대가 흐르며 세분화되었다. 제의를 주관하는 축(祝), 기록을 담당하는 사(史), 치료를 맡는 의(医), 개인과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정(貞), 문서를 정리하는 작책(作冊), 그리고 행정을 담당하는 왕(王)으로 나뉘었다. 종교·정치·의료·기록이 한 몸에서 갈라져 나온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문직이라 부르는 영역의 기원이 바로 그 안에 있다.


내 스승은 《춘추》를 읽다 보면 점괘가 지나치게 정확하여 후세 사관이 사건 이후에 꿰맞춘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고대 정치에서 점과 기록은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해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정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인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다루는 사람이다. 선거의 결과, 권력의 향방, 민심의 변동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비합리적 의존은 깊어진다. 과거 여야를 막론하고 조상의 묘를 이장하거나 특정 인물을 가까이 두었다가 구설에 오른 사례가 반복되어 왔다. 최근에도 권력 주변에 이른바 ‘도사’가 등장했다가 사법 처리로 이어진 일이 있었다. 권력은 이성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불안의 심연 위에 서 있다.


정치사의 이면에는 점술과 관련된 일화가 적지 않다. 5·16을 앞두고 김종필은 책사 백운학을 찾아가 거사 계획을 숨긴 채 신수를 봐 달라고 했다고 한다. 백운학은 이를 간파하고 “성공한다”고 말하면서도 4월이 아닌 5월에 실행하라고 조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이 일화는 혁명조차 길일을 따졌음을 보여 준다. 역모는 발각되면 목숨이 날아가는 중대사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국정의 고비마다 도사를 찾았다는 증언이 있다. 천태종과 구인사를 창건한 상월 조사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월남 파병 문제로 고심하던 시기에 그의 조언을 듣고 결단을 굳혔다는 이야기는, 중대한 국가 전략 결정의 뒤에도 인간적 불안이 자리했음을 말해 준다.


10·26 사건의 주역 김재규 또한 점술을 신봉했다는 전언이 있다. 그가 받은 시운이 ’풍표낙엽 차복전파(風標落葉 車覆全破)’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단풍잎이 떨어질 무렵 차가 뒤집혀 완전히 파괴된다는 뜻이다. 그는 운전병에게 차를 조심하라며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상징적 아이러니로 귀결되었다. ’차(車)’는 차지철이 되었고, ’전파(全破)’는 전두환에게 권력이 넘어간 것으로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사건은 실제로 낙엽 지는 늦가을에 발생했다. 점괘는 사후적으로 해석될 때 가장 정확해 보이는 법이다.


경제 권력도 예외는 아니다. 대기업 총수들이 부모의 장지를 명당에 모시려 애쓰고, 정치인들이 고비마다 자문을 구하며, 산악인들이 산신제를 지내고, IT 기업조차 공장 신축식에 고사를 지내는 모습은 일종의 집단 심리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보험과도 같은 행위다. 함양의 한 도사가 박태준 전 포철 회장에게 “지붕에 올라갈 사람인데 사다리가 없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통령이 될 자질은 있으나 조직력과 권모술수가 부족하다는 풀이였다. 실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은 때로 점괘보다 더 구체적이다.


문제는 미신 자체가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예측 불가능성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고수레를 하고, 길일을 택하고, 징크스를 만든다. 그러나 믿음이 의사결정을 대신하는 순간, 책임은 흐려진다. 정치는 점괘가 아니라 제도와 판단의 영역이어야 한다.


미래가 불안하다고 해서 운명에 기댈 수는 없다. 역사는 점이 아니라 선택이 만든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결국 인간이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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