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氏春秋》 〈孟夏紀〉 「尊師」
君子之學也,說義必稱師以論道,聽從必盡力以光明。聽從不盡力,命之曰背;說義不稱師,命之曰叛;背叛之人,賢主弗內之於朝,君子不與交友。故教也者,義之大者也;學也者,知之盛者也。義之大者,莫大於利人,利人莫大於教。知之盛者,莫大於成身,成身莫大於學。身成則爲人子弗使而孝矣,爲人臣弗命而忠矣,爲人君弗強而平矣,有大勢可以為天下正矣。
“군자가 배우는 법은, 의(義)를 논할 때 반드시 스승을 언급하며 도를 말하고, 가르침을 따를 때는 온 힘을 다해 그 뜻을 밝히는 것이다. 따르면서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을 ‘배(背)’라 하고, 의를 말하면서 스승을 밝히지 않는 것을 ‘반(叛)’이라 한다. 현명한 군주는 이런 이를 조정에 들이지 않고, 군자는 그를 벗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르침이란 의의 큰 것이요, 배움이란 지혜의 성함이다. 의의 큰 것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 중 가르침보다 큰 것이 없다. 지혜의 성함은 몸을 이루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몸을 이루는 것 중 배움보다 큰 것이 없다. 몸이 이루어지면 자식으로서 시키지 않아도 효하고, 신하로서 명하지 않아도 충하며, 군주로서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정치가 평정된다. 큰 기세가 형성되면 천하를 바로 세울 수 있다.”
-《呂氏春秋》 〈孟夏紀〉 「尊師」
우리는 ‘배반’을 너무 쉽게 쓴다. 정치인의 변절이나 친구의 약속 위반에도 이 단어를 가져다 붙인다. 그러나 이 말의 처음 뜻은 사뭇 다르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고, 체제의 결함이 아닌 배움의 결핍이었다.
이 글을 마주하며 잠시 멈췄다. 배반이 이토록 소박한 자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배(背)’는 실행의 불성실이며, ‘반(叛)’은 근원에 대한 부정이다. 결국 배반은 거창한 모반이 아니라, 배움을 대하는 태도의 균열에서 시작된다.
스승을 일컫는 것은 단순한 예우가 아니다. 내 사상의 뿌리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내 생각’이라 포장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고대의 지성은 배움이 계보 위에 있음을 알았다. 스승을 부정하는 순간 도(道)의 흐름은 끊긴다. 그래서 그것을 ‘반(叛)’이라 했다.
또한,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삶으로 옮기지 않는 태도를 ‘배(背)’라 했다. 형식은 취하되 실천은 비워두는 상태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이런 배(背)를 저지르는가. 말은 번지르르하나 행동이 따르지 않는 습관, 배반은 이미 우리 안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이 글은 가르침(敎)과 배움(學)의 끝을 말한다. 배움을 통해 몸을 이루면(成身)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효와 충이 발현된다. 이는 법과 처벌 이전에 인격의 완성을 뜻한다. 배반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인격적 실패다. 도덕적 질서에서 스스로 이탈하는 행위인 것이다.
오늘날의 배반은 대개 이해관계의 이동을 뜻한다. 하지만 본래의 뜻은 이익이 아닌 의(義)에 있었다. 남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배움을 등지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듣고도 힘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는가?
나는 말하면서 근원을 숨긴 적이 없는가!
배반은 멀리 있지 않다. 배움에 성실하지 않을 때, 이미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