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자기 생각을 밝히는 일은 공론장의 순기능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면서 논리는 더 단단해지고, 빈틈이 드러나면 함께 고쳐 나가는 과정, 그것이 민주적 토론의 본령이다. 나는 그 점을 믿는다. 그래서 글을 쓰고, 댓글을 읽고, 때로는 반박을 한다.
그런데 요즘 댓글 창을 열면 토론은 보이지 않고 욕설이 먼저 튀어나온다. 주장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공격이 출발점이다. 논점은 어느새 사라지고, ‘너는 왜 그 모양이냐’는 말만 남는다. 이 지점에서 나는 늘 멈칫한다.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파괴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쉽게 욕으로 먼저 들어갈까?
첫째, 욕은 쉽고 논리는 어렵다. 상대의 글을 끝까지 읽고 핵심을 파악한 뒤 반증을 제시하는 데는 시간이 든다. 에너지가 든다. 그러나 욕은 1초면 족하다. 감정은 즉각적이고, 사고는 수고를 요구한다. SNS는 긴 사고보다 빠른 반응을 보상하는 구조다. 그러니 사고 대신 감정이 앞선다.
둘째, 욕은 낙인이다.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라고 말하면 토론이 열린다. 그러나 “당신은 저급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토론은 닫힌다. 욕설은 설득의 언어가 아니라 배제의 언어다. 상대를 대화의 주체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순간부터 공론장은 전장이 된다.
셋째, 욕은 집단 신호다. 특히 정치적 이슈에서는 상대를 공격하는 말이 곧 자기 편을 향한 충성 표시가 된다. 말이 거칠수록 박수가 더 크게 붙는다. 그 박수가 다시 더 거친 말을 낳는다. 개인은 사라지고 진영만 남는다.
익명 계정의 공격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익명성이 사람을 무책임하게 만드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실명으로, 학력과 경력을 당당히 걸어 둔 사람들이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당혹감은 더 커진다. 우리는 흔히 학력과 교양을 연결 짓는다. 그러나 교육이 사고 능력을 키울 수는 있어도, 감정의 절제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적 능력과 인격적 성숙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결국 문제는 개인의 수준만이 아니라 환경의 구조다. SNS는 복잡한 생각을 길게 풀어내는 공간이 아니라, 강한 감정을 빠르게 던지는 공간으로 굳어졌다. 알고리즘은 차분함보다 분노를 증폭한다. 우리는 토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각자의 집단 정체성을 전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욕설은 순간의 통쾌함을 줄지 몰라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논리는 느리지만 기록으로 남는다.
공론장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여전히 논리로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욕을 받아도 욕으로 답하지 않아야 한다.
토론은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욕은 상대를 지워버리는 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