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선의가 공해가 되는 순간

아침 안부

by 김희곤


중·장년층 사이에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나 감동적인 그림에 명언 한 줄을 곁들인 이미지는 이제 하나의 정서적 교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텍스트로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 어색한 세대에게, 그것은 짧고 안전하며 무해한 언어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도 오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된다.


그러나 수신자의 뇌는 그것을 ‘무해한 것’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뇌는 모든 알림을 잠재적 중요 신호로 간주한다. 실제로 중요한 내용인지 아닌지는, 열어보기 전까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열고 나서 “아, 또 풍경 사진이네”라고 느끼더라도, 그 판단 자체가 이미 에너지를 소비한 이후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면, 미세한 피로가 조용히 쌓인다.


발신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단 한 번의 전송이다. 하지만 수신자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지인 열 명, 스무 명, 혹은 오십 명이 각자 ‘한 번씩’ 보낸다면, 수신자의 하루는 그 메시지들로 채워진다. 선의의 총합이 과부하가 되는 구조다.


관계의 밀도와 접촉의 빈도가 어긋날 때도 문제가 생긴다. 매일 깊은 대화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님에도, 매일 인사가 도착한다면 그것은 친밀함이 아니라 일방적인 점유처럼 느껴진다. 관계가 만들어낸 빈도가 아니라, 습관이 만들어낸 빈도이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은 이 미묘한 차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서서히 거부감을 갖게 된다.


통제감의 문제도 있다. 인간은 자신이 요청하지 않은 자극이 반복적으로 들어올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원할 때 연락하고,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조용히 지낼 수 있다는 감각, 그 통제감이 조금씩 침식된다. 거절하기도 애매하고, 받아들이기도 부담스러운 그 자리에서 관계는 오히려 멀어진다.


거기에 현실적인 불편함도 더해진다. 고화질 풍경 사진이나 그림 파일 한 장은 수 메가바이트에 달한다. 매일 쌓이는 파일을 지우는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 역시 반복되는 노동이다. 저장 공간을 확인하고, 선택하고, 삭제하는 그 작은 행위가 매일 누군가의 시간을 가져간다.


좋은 마음으로 보낸 아름다운 이미지 하나가, 받는 사람에게는 치워야 할 무언가가 되는 역설. 선의는 빈도를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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