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霜時降,癘疫不興
눈과 서리가 제때 내리면 역병은 일어나지 않는다
— 한유 「송두종사서(送竇從事序)」의 한 문장을 읽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남긴 산문 가운데에는 짧지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 있다.
「雪霜時降,癘疫不興」(눈과 서리가 제때 내리면 역병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한유가 어떤 관리의 부임을 전송하며 쓴 「송두종사서(送竇從事序)」에 나온다. 전송문(餞送文)이라는 장르는 단순한 작별 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에게 당부를 전하고, 그가 가게 될 지역의 상황을 짚어 주며, 정치(政治)와 사회(社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함께 담는 글이다. 한유의 이 글 역시 그런 성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해당 문장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한유는 남쪽 지방의 풍토(風土)와 사회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는 남쪽 지역이 예로부터 중원(中原)과 풍속(風俗)이 달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나라의 정치가 그 지역에 미치면서 민속(民俗)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풍기(風氣) 또한 달라졌다고 서술한다. 그 변화의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유는 바로 이 문장을 제시한다.
눈과 서리가 제때 내리면, 역병(疫病)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시(時)라는 글자는 단순히 “때때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시기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계절의 질서가 어긋나지 않고 자연의 변화가 제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여역(癘疫)은 유행성 전염병을 가리키는 말이고, 흥(興)은 일어나거나 퍼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문장은 자연의 계절 질서(季節秩序)가 안정되면 역병이 유행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이루게 된다.
이 표현은 두 개의 짧은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雪霜時降(설상시강)— 눈과 서리가 제때 내리면
癘疫不興(여역불흥)— 역병이 일어나지 않는다
네 글자와 네 글자가 서로 대응하는 전형적인 대구(對句) 형식이다. 앞 구절은 자연 현상을 말하고, 뒤 구절은 인간 사회의 건강 상태를 말한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짧은 구조 속에 압축한 것으로, 한유 산문 특유의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文體)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문장은 글의 전체 맥락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한유는 먼저 “민속이 이미 변했고 풍기도 그에 따라 달라졌다”고 말한 뒤, 그 변화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곧바로 이 문장을 내세운다.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면 이러하다. 정치와 교화(敎化)가 지역에 미치면 민속이 변하고, 민속이 변하면 풍기가 달라지며, 풍기가 달라지면 계절 질서가 안정되고, 그 안정 위에서 역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 현상과 사회 질서를 이처럼 하나의 연쇄로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은 중국 고전 문헌(古典文獻)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유 구조이다. 정치가 바르게 이루어지면 사회가 안정되고, 그 안정은 자연 질서의 조화(調和)와도 이어진다고 보는 관점으로, 한유는 이 전통적인 인식의 틀을 빌려 남쪽 지방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풍기(風氣)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단순한 기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지역의 공기, 환경, 생활 조건, 나아가 사람들의 몸 상태까지 아우르는 넓은 개념이다. 한유가 민속이 변하면 풍기도 달라진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인간의 생활 방식과 사회 질서가 자연 환경의 인식과도 깊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결국 「雪霜時降,癘疫不興」(눈과 서리가 제때 내리면 역병이 일어나지 않는다)이라는 여덟 글자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 사회의 안정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인식을 압축해 보여 주는 문장이며, 동시에 남쪽 지방으로 떠나는 관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축원(祝願)이기도 하다. 계절이 제때 돌아오고 역병이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땅, 그곳에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짧은 구절 속에 고요히 담겨 있다.
한유의 글이 오랜 세월을 넘어 읽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간결한 문장 속에 자연과 정치와 인간의 삶이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