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영월에 첫눈이 내리던 날, 부사 신광수는 관아 뒤뜰 매화나무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아직 꽃이 필 때가 아니건만 눈은 가지마다 희게 내려앉아, 마치 오지 않은 봄의 그림자를 먼저 걸어 둔 듯했다. 그는 소맷자락에 쌓인 눈발을 털며 낮게 중얼거렸다.
“꽃은 때를 기다리는데, 사람은 왜 제때를 놓치고서야 제 마음을 아는가.”
누구를 향한 말인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늦은 나이에 얻은 벼슬이었다. 한양에서는 시인으로 이름이 있었고, 조정에서는 은근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영월은 한양과 달랐다. 산은 높고 강은 깊었고, 백성의 삶은 궁핍했다. 관아 마루에는 송사 꾼들의 젖은 짚신 냄새가 오래 남아 있었고, 새벽이면 나루터 쪽에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올라왔다. 신광수는 부임한 뒤로 군량을 정리하고, 묵은 폐단을 바로잡고, 아전들의 손버릇을 다잡았다. 저녁이면 시를 짓고, 새벽이면 강가를 거닐었다. 백성들은 말했다.
“이번 부사는 글만 하는 분이 아니야.”
그 말이 그의 귀에도 들어갔다. 신광수는 들은 체하지 않았으나, 마음 한편은 은근히 높아졌다. 자신이 늦게 얻은 벼슬에서조차 끝내 사람들 위에 설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경춘은 관아에 딸린 기생이었다. 고을에서 이름이 높았다. 얼굴이 빼어나다는 말은 흔했으나, 노인들은 오히려 다른 식으로 말했다.
“저 애는 웃어도 웃는 얼굴이 아니다.”
젊은 선비들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 술잔을 내려놓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더 깊은 외로움에 잠겼다. 거문고 소리는 맑았으나 그 맑은 끝에는 가느다란 금이 숨어 있었다. 무너질 듯하면서도 끝내 끊어지지 않는 떨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