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

멍거와 버핏

by 김희곤

멍거(Charlie Munger)와 버핏(Warren Buffett)이 거듭 강조한 ’역량의 원(circle of competence)’은 많이 아는 사람이 되라는 주문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어디까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어디서부터는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냉정하게 구획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버핏은 1996년 주주서한에서 “원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경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다. 1999년에는 자신들의 강점이 바로 그 원 안에 있는지, 바깥 경계로 다가가는지를 알아차리는 데 있다고 밝혔다. 지식의 팽창보다 인식의 한계 설정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공자의 말이 정확히 호응한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참된 앎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대개 무엇을 아는가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큰 오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숨길 때 발생한다. 투자에서는 그것이 치명적인 손실이 되고, 학문에서는 공허한 현학이 되며, 삶에서는 판단의 오만으로 드러난다. 공자가 말한 지(知)는 정보의 총량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정확도다.


멍거가 강조한 태도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2020년 데일리저널 미팅에서 “내 역량의 끝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자기에게 ‘too tough’ 너무 어려운 일인지 분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무지를 합리화하는 변명이 아니라, 무지를 관리하는 규율이다.


이해가 닿지 않는 영역에서 억지로 전문가인 척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허영이다. 반대로, 내게 너무 어려운 문제를 과감히 내려놓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절제다. 그리고 그 절제가 장기적으로는 더 큰 성과를 만든다.


멍거식 판단에는 사실상 세 개의 바구니가 있다. ‘예’, ‘아니오’, 그리고 ‘너무 어려움’. 많은 이들이 이 세 번째 바구니를 소극성이나 겁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가장 값비싼 실수를 막는 안전장치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Poor Charlie’s Almanack)이 정리하듯, 멍거는 복잡한 기술 분야나 구조를 꿰뚫지 못하는 영역을 주저 없이 그 세 번째 바구니로 보냈다. 모든 문제에 의견을 낼 필요는 없다. 모든 기회에 올라탈 필요도 없다. 선택의 지혜는 종종 진입보다 포기에 있다.


공자와 멍거가 시대를 넘어 만나는 자리는 결국 같다.


지혜란 더 많이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디서 말을 멈춰야 하는지 아는 능력이다. 진짜로 강한 사람은 아는 영역 안에서는 단호하지만, 모르는 영역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큰 판단의 질을 가르는 것은 지식의 총량이 아니라 무지의 경계선을 얼마나 정직하게 그어 놓았는가다.


“무엇을 아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모르는가”를 아는 일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만이, 끝내 자기 삶의 중요한 결정을 함부로 망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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