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子產)·안영(晏嬰)·숙향(叔向)
자산(子產)·안영(晏嬰)·숙향(叔向), 난세(亂世) 정치의 세 얼굴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예(禮)의 권위가 흔들리고, 제후와 대부의 힘이 뒤엉키며, 옛 질서가 더 이상 저절로 작동하지 않던 시대였다. 공자(孔子)는 바로 그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추상으로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을 평가했다. 다만 자산(子產)·안영(晏嬰)·숙향(叔向)을 하나로 묶어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후대적 해석의 틀일 뿐, 공자가 직접 ‘세 현인’이라고 범주화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은 그 점을 분명히 인정한 위에서, 공자가 높이 본 정치적 품격을 세 인물에게서 읽어 보려는 시도이다.
먼저 자산(子產)은 인(仁)이 행정의 언어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공자는 그를 두고 “군자지도사언(君子之道四焉)“이라 하며, 그 네 가지를 행기야공(其行己也恭), 사상야경(其事上也敬), 양민야혜(其養民也惠), 사민야의(其使民也義)라고 정리했다. 몸가짐의 공손함, 윗사람을 섬기는 공경, 백성을 기르는 은혜, 백성을 부리는 의로움이 한 사람에게 함께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仁)이 단순한 온정이나 감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자기 절제와 공적 책임, 그리고 백성에 대한 실질적 배려가 제도와 행정 속에 스며든 상태를 뜻한다. 자산(子產)은 바로 그 점에서 공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산(子產)의 정치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칭찬만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가장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정(鄭)나라가 형서(刑書)를 주조하자, 숙향(叔向)은 서신을 보내 강하게 비판했다. 백성이 법조문을 알게 되면 윗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투는 마음을 품어 문서와 조문에 기대려 하며, 끝내 소송과 뇌물이 늘어난다고 본 것이다. 그의 핵심 논지는 분명했다. 예치(禮治)의 사회는 살아 있는 규범과 관계로 다스려야지, 성문법(成文法)을 앞세우는 순간 백성은 예(禮)를 버리고 조문 다툼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보수적 훈계가 아니라, 예치(禮治) 질서가 해체될 때 법치(法治)가 어떤 부작용을 낳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우려였다.
자산(子產)의 답변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이 비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교불재(僑不才), 불능급자손(不能及子孫), 오이구세야(吾以救世也)“라고 했다. 나는 재주가 모자라 자손 대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지금의 세상을 구하려 할 뿐이라는 뜻이다. 이 문장은 법치(法治)에 대한 승리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한 제도는 불가능하다는 자각, 후세까지 보장할 만한 만능의 해법은 없다는 체념, 그럼에도 당대의 무너지는 질서를 그냥 둘 수는 없다는 행정가의 책임이 함께 들어 있다. 자산(子產)은 이상을 몰라서 성문법을 택한 것이 아니라, 이상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현실을 정면으로 감당했다. 그의 인(仁)은 바로 이 냉혹한 현실 감각과 결합되어 있었다.
안영(晏嬰), 곧 안평중(晏平仲)은 자산(子產)과는 다른 결로 빛난다. 공자는 “안평중 선여인교(晏平仲善與人交), 구이경지(久而敬之)“라고 평했다. 이 구절은 해석에 이견이 있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안영(晏嬰)의 인간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벼워지지 않았다. 친해질수록 예가 무너지고, 오래 알수록 서로 함부로 대하게 되는 것이 흔한 일인데, 안영(晏嬰)을 둘러싼 관계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오래도록 상대를 공경했다고 읽든, 사람들이 오래도록 그를 공경했다고 읽든, 핵심은 같다. 그의 인격은 관계를 압모(狎侮)와 무례로 떨어뜨리지 않았고, 시간 속에서도 경(敬)을 보존하거나 경(敬)을 불러일으켰다. 공자가 높이 본 것은 바로 그 지속성이다. 덕(德)은 첫인상보다 오래된 관계에서 드러난다. 안영(晏嬰)은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다.
숙향(叔向)은 직(直)의 사람이다. 《좌전(左傳)》은 형후(邢侯)와 옹자(雍子)의 송사에서 숙향(叔向)이 동생 숙어(叔魚)에게까지 책임을 물어 법에 따라 처리한 일을 전한다. 공자는 이를 듣고 “숙향(叔向), 고지유직야(古之遺直也)“라고 했다. 이어 “치국제형(治國制刑), 불은어친(不隱於親)“이라 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형벌을 정할 때 친족이라고 해서 숨기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직(直)은 거친 성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사로운 정을 공적 판단 위에 올려놓지 않는 능력이다. 혈연은 인간적으로는 끊기 어려운 인연이지만, 공적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판결을 흐리는 것도 바로 그 혈연이다. 숙향(叔向)은 그 유혹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직(直)은 냉혹함이 아니라 공의(公義)의 형식이 된다.
이렇게 보면 자산(子產)·안영(晏嬰)·숙향(叔向)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난세(亂世)의 정치적 품격을 보여 준다. 자산(子產)은 인(仁)을 현실 행정 속에 번역한 인물이고, 안영(晏嬰)은 관계 속에서 경(敬)과 예(禮)가 시간의 마모를 어떻게 견디는지를 보여 준 인물이며, 숙향(叔向)은 직(直)과 의(義)가 혈연과 이해관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이다. 물론 이것이 공자의 정치론 전체를 다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관중(管仲) 같은 인물에게서도 또 다른 차원의 공공적 성취를 보았다. 그러므로 이 셋을 ‘전부’라고 말하면 과장이고, ‘한 축’이라고 말해야 정확하다.
결국 공자가 높이 본 것은 화려한 권모술수도, 추상적 도덕론도 아니었다. 그는 무너지는 시대에 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정치의 핵심을 보았다. 사람을 살리는 인(仁),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예(禮)와 경(敬), 사사로움에 휘지 않는 직(直)과 의(義). 자산(子產)·안영(晏嬰)·숙향(叔向)은 그 덕목들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살아낸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춘추(春秋)의 옛 신하가 아니라, 혼란할수록 정치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기준으로 지금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