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

사랑은 나이를 뛰어 넘는다.

by 김희곤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 1805~ 1854)은 조선 후기 평안남도 성천 출신의 여류시인으로, 황진이와 이매창과 함께 조선 3대 시기(詩妓)로 꼽히는 인물이다. 16세에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고, 19세에 77세 노년의 선비 김이양(金履陽)과 인연을 맺어 그의 소실이 되어 기생 생활을 청산했다. 이후 시와 거문고로 여생을 보내며 <부용집> 또는 <운초시>에 300여 편의 한시를 남겼다.


김이양이 죽은 후에 기생의 몸으로 어렵게 수절하다가 그의 묘 옆에 묻히고 싶어 이곳까지 찾아와 죽었지만 끝내 그 옆에는 묻히지 못하고 같은 산자락인 이곳에 누웠다는 애틋한 사연이 전한다.


「대황강노인(待黃岡老人)」


前江夜雨漲虛沙

萬里同情一帆斜

遙想故園春已到

空懷無賴坐天涯


앞 강에는 밤비가 내려 빈 모래벌이 불어나고,

만리 물길 위로 외로운 돛배 하나 비스듬히 떠간다.

멀리 고향을 생각하니 그곳엔 벌써 봄이 닿았을 터인데,

나는 부질없는 그리움만 품은 채 하늘 끝 같은 타향에 앉아 있다.


이 시의 핵심은 연애담보다 먼저 타향의식과 상실감이다.


첫 구의 밤비와 모래벌은 흔들리고 잠기는 내면 상태를 바깥 풍경으로 옮겨 놓는다.


둘째 구의 기운 돛배는 단순한 배가 아니라, 어디론가 떠밀려 가는 시적 자아의 그림자처럼 읽힌다.


셋째·넷째 구는 고향에는 이미 봄이 왔으리라 상상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천애에 앉아 헛된 회포만 품는 대비를 만든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운초를 단순한 비련의 여인으로 소비하게 하지 않고, 정서와 풍경을 압축해 배치할 줄 아는 뛰어난 한시 작가로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