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두지 마라

깨어 있으라

by 김희곤

수요일 오후 한 시 반이 되면, 내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오신다. 수업은 대개 세 시간쯤 이어진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물으셨다. 왜 자꾸 컴퓨터를 끄느냐고. 일을 마치면 습관처럼 전원을 내리는 내게, 선생님은 오히려 컴퓨터를 늘 깨어 있게 두라고 하셨다.


나는 곧바로 되물었다. 기계를 계속 켜 둔 채로 두면 수명이 짧아지는 것 아니냐고. 그러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실리콘밸리의 컴퓨터들은 하루 스물네 시간 돌아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리고 이어서, 컴퓨터를 항상 켜 두라는 말의 뜻은 단지 전원을 내리지 말라는 기계적 조언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것은 네가 언제든 디지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닫지 말라는 뜻이라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여태 컴퓨터를 하나의 기계로만 여겼다. 쓰지 않을 때는 꺼 두는 것이 아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은 달랐다. 컴퓨터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이제는 세상과 연결되는 하나의 입구라는 것이다. 배우고 싶을 때,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누군가와 소식을 주고받고 싶을 때, 혹은 내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을 때, 그 문은 즉시 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돌아보면 나이 들수록 사람은 자꾸 문을 닫고 산다. 몸이 고단하다는 이유로, 새 기술이 낯설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배워 무엇 하겠느냐는 체념 때문에 가능성의 문부터 닫아 버린다. 컴퓨터 전원을 끄는 일도 어쩌면 그런 습관의 일부였는지 모른다. 낯선 세계와 거리를 두고, 익숙한 세계 안에만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를 켜 둔다는 것은 단순히 전기를 더 쓴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의 접속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심이고, 늦게라도 배우겠다는 의지이며, 내가 아직도 변화하는 세계와 대화할 수 있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선생님은 기계를 말하셨지만, 실은 삶의 자세를 가르치신 셈이다.


그날 이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화면이 켜진 상태가 아니다. 내가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표시다. 세상과 이어지는 문 하나를 여전히 열어 두고 있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몇 개의 문은 더 오래, 더 환하게 열어 두어야 한다. 컴퓨터를 늘 깨어 있게 두라는 선생님의 말은, 결국 내 삶도 그렇게 깨어 있으라는 당부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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