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늘 누군가를 부르는가?

가정의 주인

by 김희곤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생전에 쥐만 나타나면 어머니를 찾으셨다. 전쟁터에서 총알을 피하던 영웅도 부엌 구석 생쥐 한 마리 앞에서는 목청부터 높아졌다.


“여보! 여보! 빨리 좀 와 봐!”


나라 지킨 영웅이 생쥐 앞에서는 다급한 민간인이 되었다.


직업군인이셨던 장인은 더하셨다. 어느 날 밤, 수상한 인기척에 벌떡 일어난 장인이 장모님께 속삭였다.


“당신이 나가서 좀 봐.”


그날 이후 장인은 전역 후에도 집안에서 끝내 장군이 되지 못하셨다. 명절마다 재소환되는 이 일화 끝에 장모님은 승전가처럼 덧붙이신다.


“나라 지킨 양반이 집은 나보고 지키라더라.”


해병대 나온 아들도 다르지 않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녀석이 귀신은커녕 방 안에 나방 한 마리 날아들자 표정이 무너졌다.


“엄마! 엄마! 빨리!”


귀신 잡는 해병이 나방 앞에서 혼부터 빠졌다. 해병대 정신도 계절 곤충 앞에서는 잠시 유보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남들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나는 유리병 뚜껑이 안 열리면 조용히 아내를 부른다. 처음에는 체면치레로 고무장갑도 끼고 병을 탁탁 쳐 보지만, 결국 작은 목소리로 항복한다.


“여보, 이것 좀…”


아내는 무심하게 병을 받아 들고 툭 연다. 그럴 때면 깊은 물음이 밀려온다. 이 집에서 진짜 강한 존재는 누구인가?


남자들은 선택적으로 용감하다. 전쟁은 치러도 쥐는 못 잡고, 도둑은 무서워도 체면은 챙긴다. 가장인 척해도 유리병 뚜껑 하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집안의 평화는 남자의 허세가 아니라 여자의 실력으로 유지된다. 남자는 큰소리로 세상을 논하다가도 쥐, 나방, 병뚜껑 앞에서는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


“여보.”

“엄마.”

그 한마디에 남자의 진실이 다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