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싸움

개도 싸움의 금도를 안다.

by 김희곤

개싸움 / 권기호


투전꾼의 개싸움을 본 일이 있다

한 쪽이 비명 질러 꼬리 감으면

승부가 끝나는 내기였다

도사견은 도사견끼리 상대 시키지만

서로 다른 종들끼리 싸움 붙이기도 한다

급소 찾아 사력 다해 눈도 찢어지기도 하는데

절대로 상대의 생식 급소는 물지 않는다

고통 속 그것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건들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개들이 지닌 어떤 규범 같은 것을 보고 심한 혼란에 사로 잡혔다


이건 개싸움이 아니다

개싸움은 개싸움다워야 한다(개판 되어야 한다)

개싸움에 무슨 룰이 있고 생명 존엄의 틀이 있단 말인가

나는 느닷없는 배신감에 얼굴이 붉어왔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중동 전쟁 국면에서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소와 전력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란은 이에 맞서 이스라엘의 발전소와 미군기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지역 시설을 보복 표적으로 거론했다. 담수화 시설까지 위협 대상으로 입에 올린 정황도 실제로 보도되었으나, 뒤이어 이란 혁명수비대 성명은 그 대목에서 한발 물러서 “전기를 치면 전기로 갚겠다”는 식으로 수위를 조정했다. 그러나 바로 그 “입에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문명의 수치를 드러낸다. 


권기호의 시가 섬뜩한 것은, 짐승의 폭력 속에서 오히려 마지막 금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개들은 서로 피를 보고 눈을 찢어도, 끝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남겨 둔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국가는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상대의 숨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명유지장치를 계산한다. 전기, 송전망, 정유시설, 담수화 시설, 항만, 통신망. 이 목록은 군사 목표의 목록이기 전에 민간인의 생존 목록이다. 특히 걸프 국가들에서 담수화 시설은 단지 산업설비가 아니라 식수 그 자체에 가깝다. 이런 시설을 전쟁의 언어로 올리는 순간, 전장은 군대와 군대 사이가 아니라 사람의 목구멍과 병원의 생명선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이 싸움은 개싸움보다 더 잔인하다. 개는 싸워도 상대 종족의 번식과 생존의 근본을 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전쟁이 시작되면 적의 병사보다 먼저 적의 도시를 말리고, 병원을 멈추고, 아이가 마실 물을 끊을 생각부터 한다. 이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다.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꾸민 비겁함이다. 상대 군대를 꺾는 것이 아니라 상대 사회 전체를 인질로 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 우스운 것은 이런 위협이 윤리의 경계 안에서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유가와 금융시장의 눈치를 보며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 에너지 시설 타격 위협을 일단 미루었다. 그러나 유예가 곧 절제는 아니다. 오늘은 미루고 내일은 다시 꺼내 드는 카드라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라 생존 인프라를 협상용 칼자루로 쥐는 습관일 뿐이다. 


개도 싸움의 금도를 안다. 그런데 인간은 국가이성과 안보라는 거창한 말을 앞세워, 물과 전기를 먼저 겨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개싸움보다 더 야만적인 것이 아니라, 개싸움보다도 못한 것이다. 짐승에게도 남아 있는 최후의 선을, 인간만이 너무 쉽게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전력과 식수를 위협의 언어로 올리는 순간, 그 싸움은 이미 승패 이전에 패배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