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새로운 산책로를 찾아서

하남 스타필드 산책이야기 (미사리의 추억)

by 구현

폭염이 이어지며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무릎이 더 쑤셨다. 저녁을 먹고 나가봤지만, 열기를 머금은 습도는 불쾌지수만 높여 왕숙천 가는 길에 결국 포기할 정도였다.


거실 창문으로 왕숙천을 내다보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우리 하남 스타필드에 산책하러 갈까? 지하 매장에서 살 것도 있는데 어때."


산책은 하늘을 보며 자연에서 하는 거지,라는 고정관념에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 쾌적하고 넓은 쇼핑몰 환경은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을 테고, 시장도 볼 겸 흔쾌히 차키를 들고 나섰다.


평일인데도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에 절로 기분이 풀렸다. 나란 사람은 사실, 이런 쇼핑몰에서는 그리 좋은 객은 아닐 것이다. 내 평생 최고의 충동구매이자 과소비가 있다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권을 산 것일 거다.


아내의 말대로 더위 걱정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람들과 강아지를 피해 가며 가볍게 걸었다. 하지만 이내 텁텁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역시 자연의 공기와 비교하는 건 무리지'라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온몸에 땀이 배어들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무릎에 약간의 신호가 왔다. 나는 그 원인을 직감했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마음껏 내딛고 걸어야 하는데, 미끈한 바닥은 영 그렇지 못했다. 보폭을 줄이고 가볍게 걷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내는 걱정스럽게 내 무릎에 손을 올렸다.


여기 미사리 부근은 나의 군 복무 시절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나는 도하부대에서 공병으로 복무했는데, 88 서울 올림픽 전후 혹한기 훈련 때 이 미사리 강변에서 얼음을 깨며 부교를 놓았던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그때의 혹독한 추억이 이 화려한 쇼핑몰과 겹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폭염이 선사한 뜻밖의 경험이었다. 때로는 이런 도심 속 휴식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 저녁거리를 아내와 같이 쇼핑해서 더욱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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